스마트폰을 쓰다가 가장 당혹스러운 것은 바로 배터리가 5% 아래로 떨어졌을 때다.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외근이 길어지고 전화통화나 모바일 메신저 이용이 잦아지면 배터리 줄어드는 속도가 한층 탄력을 받는다. 배터리 분리가 가능한 스마트폰이라면 미리 충전해 둔 배터리로 교체하면 되지만 아이폰5s나 넥서스5처럼 일체형이라면 그마저도 힘들다.
외부 활동이 많다면 보조 배터리를 들고 다니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무게가 150g에서 200g으로 스마트폰보다 더 무거운 제품을 매일같이 챙기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배터리 표시가 5% 미만으로 빨갛게 물든 상황에서 전화 한 통화만, 메일 한 통만, 문자 한 번만 보낼 수 있을 만큼만 충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케이블만 꽂아서 충전 “비밀은⋯”
kt cs가 지난 10일 출시한 스마트폰 충전용 케이블 ‘빨대’는 이런 긴급한 문제를 임시로 해결할 수 있는 제품이다. 스마트폰 두 대를 연결하면 마치 수혈하듯이 충전이 이뤄진다. 무거운 충전기나 보조배터리를 항상 가지고 다닐 필요도 없다. 필요한 건 손으로 들어도 무게를 느끼기조차 힘든 작은 케이블 하나 뿐이다.용도는 충전이지만 구성품은 단 하나, 30cm가 채 안되는 짧은 케이블이 전부다.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이나 주변기기를 연결하는 데 흔히 쓰이는 마이크로USB 단자를 양 끝에 달았고 배터리를 공급하는 쪽과 나눠받는 쪽을 구분할 수 있도록 화살표를 그려 놓았다. 화살표 부분에는 작은 LED를 달아 케이블에 전원이 들어오면 자동으로 불이 들어오게 만들었다.
이런 케이블로 충전이 정말 가능한걸까? 제조사를 통해 알아본 빨대의 원리는 이렇다.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에는 USB 액세서리나 주변기기를 연결해서 쓸 수 있는 OTG(온더고) 기능이 내장되어 있다. 그런데 이 OTG 기능을 쓰기 위해 스마트폰에 연결해야 하는 케이블에는 해당 USB 액세서리나 주변기기가 정상작동하도록 일정한 전류를 공급해 주는 기능도 내장되어 있다. 빨대는 이 기능에 눈을 돌렸다. USB 액세서리 대신 다른 스마트폰에 전류를 공급해 충전하게 만든 것이다.
■절반 이상을 다른 곳에 흘렸다?
다시 말해 OTG 기능이 내장된 스마트폰이라면 빨대를 연결해 배터리 용량을 빨아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OTG 기능이 없는 스마트폰은 배터리 용량을 줄 수 없고 받기만 할 수 있다. 케이블을 연결했을 때 LED에 불이 들어온다면 일단 전력을 나눠주는 데는 지장이 없다고 판단해도 좋다는 것. 아이폰5s나 아이패드 에어처럼 5핀 마이크로 케이블 대신 8핀 라이트닝 케이블을 쓰는 애플 제품도 충전이 가능하다고 한다.정말 충전이 가능한지 반신반의하며 확인에 들어갔다. 먼저 구글 레퍼런스 스마트폰, 넥서스5와 넥서스4를 연결해 충전을 시도했다. 두 제품 모두 유심칩을 꽂아 전화, 문자 등 수신이 가능한 상태에서 와이파이를 켜 놓아 실제 사용 환경과 비슷하게 구성했다.
빨대를 두 스마트폰에 연결하자 케이블 양 끝의 LED에 불이 들어오며 충전이 시작됐다. 충전을 시작할 때 남은 배터리 용량은 넥서스5가 87%,넥서스4가 13%였다. 30분이 지나자 넥서스5의 배터리 잔량은 67%로 줄어든 반면 넥서스4는 25%로 늘어났다. 두 시간이 지난 뒤 다시 확인해 보니 넥서스5의 배터리는 2%로 줄었고, 넥서스4는 56%까지 채워졌다.
간단히 충전 효율도 계산해 봤다. 넥서스5의 배터리 용량은 2,300mAh, 넥서스4의 배터리 용량은 2,100mAh다. 85%(약 1,955mAh)를 써서 43%(약 903mAh)를 채웠으니 효율은 46.1%(903÷1955×100)다. 충전에는 성공했지만 빨대에 구멍이라도 난 것인지 절반 이상을 도중에 흘린 것이다. 물론 정밀한 계측장비를 쓴 것이 아니라 배터리 용량을 이용해 간단히 계산한 것이기 때문에 다소 오차는 있을 수 있다.
■태블릿으로 충전해도 “효율은 절반”
배터리 용량이 보다 넉넉한 안드로이드 태블릿과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연결해도 비슷한 효율을 얻을 수 있을지 확인해봤다. 마찬가지로 OTG 기능을 지원하는 삼성전자 갤럭시노트 프로(와이파이 버전)와 조금 전 실험으로 빈사상태(?)에 빠진 넥서스5를 충전했다. 넥서스5는 전화, 문자 등 수신이 가능한 상태로, 갤럭시노트 프로는 와이파이만 켰다.충전 시작 전 확인한 배터리 용량은 갤럭시노트 프로가 56%, 넥서스5가 2%였다. 빨대를 연결하니 LED에 불이 켜지며 정상적으로 충전이 시작됐다. 30분이 지난 뒤 두 기기의 배터리 용량은 갤럭시노트 프로가 50%, 넥서스5가 16%였다. 한 시간 뒤에는 갤럭시노트 프로가 46%, 넥서스5가 28%로 나타났다. 네 시간이 지난 뒤 확인한 용량은 갤럭시노트 프로가 13%, 넥서스5가 86%까지 늘었다.
마찬가지로 배터리 용량을 다시 확인해 봤다. 갤럭시노트 프로의 배터리 용량은 9,500mAh이며 43%(4,085mAh)를 써서 넥서스5를 84%(1,932mAh)까지 채웠다. 효율은 약 47.3%로 스마트폰끼리 충전할 때와 크게 차이가 없다.
■아이폰・아이패드 에어로 ‘충전 불가능’
갤럭시노트 프로를 다시 충전한 후 이번에는 아이폰5s를 충전해 보았다. 아이폰5s 역시 유심칩을 꽂아 통신이 가능한 상태고 와이파이를 켠 상태다. 5핀 마이크로 단자를 8핀 라이트닝 단자로 변환해 주는 커넥터를 연결한 다음 충전에 들어갔다.충전 시작 전 갤럭시노트 프로의 배터리 용량은 71%, 아이폰5s는 81%였다. 30분이 지난 뒤 확인해 보니 갤럭시노트 프로는 65%로 줄었고 아이폰5s는 95%로 늘어났다. 효율을 계산해 보니 6%(약 570mAh)를 써서 12%(약 187.2mAh)를 충전해 약 32.9%다. 안드로이드 기기를 충전할 때보다 오히려 효율이 더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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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아이패드 에어로 안드로이드 기기를 충전할 수 있는지 확인해 봤다. 아이패드 에어에 5핀-8핀 변환 커넥터를 연결했지만 ‘케이블이나 액세서리가 인증되지 않았다’는 경고문이 나타나고 충전은 불가능했다. 반대로 갤럭시노트 프로와 아이패드 에어를 같은 방법으로 연결했지만 갤럭시노트 프로는 아이패드 에어를 카메라 장치로 인식했고 아이패드 에어는 충전되지 않았다. 아이폰5s에 빨대를 연결할 경우 불은 들어오지만 반대편에 연결된 기기에 전원은 공급되지 않는다.
정리하자면 빨대는 주위 사람들에게 짧은 시간동안 급하게 쓸 수 있을 만큼 배터리 용량을 수혈받는 데는 적합하다. 부피를 크게 차지하지 않고 무겁지도 않으니 가방 한 구석에 미리 넣어 놓으면 급할 때 요긴하게 쓸 수 있다. 특히 안드로이드에 시장 점유율이 크게 밀려 충전 케이블 찾기 어려운 아이폰 이용자라면 라이트닝 변환 커넥터와 함께 챙겨둘 만하다. 하지만 오래 충전할 때에는 오히려 보조배터리나 전원 어댑터보다 더 효율이 떨어진다. 뿐만 아니라 선뜻 스마트폰 배터리를 나눠준 상대방까지 곤란하게 만들 수 있다. 정말로 ‘빨대’를 꽂으려 들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