뺏고 뺏긴다. 어제 가입자를 빼앗겼다면 오늘은 보조금 투입 규모를 늘려야 한다. 정부의 서슬이 시퍼렇지만 상대방이 지르면 따라갈 수밖에 없다. 당장 가입자 수를 늘리기 위해서는 ‘일단 지르고 보는’거다.
자연히 기형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정부의 보조금 규제로 영업정지를 당했는데 오히려 이동통신사의 주가는 올라간다. 마케팅 투입이 줄어드는 만큼 수익성에는 긍정적이라는 평가 때문이다. 이통사는 영업정지 기간을 전쟁을 위한 ‘실탄’을 모으는 준비기간으로 활용하는가 하면, 경쟁사의 영업정지를 틈타 대거 보조금을 투입해 가입자를 끌어오기도 한다.
‘호갱(호구+고객)’이 양산되는 휴대폰 유통구조가 기형적이라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누구 하나 나서서 이를 바꾸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발의된 것이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단통법)이다. 해당 법안은 ▲보조금 공시 ▲부당한 이용자 차별 금지 ▲보조금 or 요금할인 선택 가능 ▲제조사 장려금의 조사대상 포함을 핵심으로 한다. 현재 이동통신 3사 모두 기본적으로 해당 법안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이 법이 통과됐을 경우 이통시장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정말로 이통사들의 보조금 치킨게임은 자취를 감출 수 있을 것인가. 이동통신업계에서는 서비스 경쟁이 활성화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하고, 반대로 경쟁 활성화 억제로 소비자 피해가 예상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마케팅 비용 감소…통신비 착시현상 제거 가능
우선 보조금이 공시되면 휴대폰 가격이 예측 가능해진다. 보조금이 집중 투입됐을 때 휴대폰을 샀다가 가격이 오르면 이를 되파는 ‘폰테크족’이나 보조금이 많이 실린 곳을 찾아 지방 원정까지도 불사하는 ‘보조금 원정대’는 없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통사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마케팅 비용이 감소하게 된다. 매출의 25~30%에 달하는 마케팅 비용 규모에 따라서 실적이 요동치는 경우가 많은 만큼, 기업가치 측면에서는 수익성의 예측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SK텔레콤은 지난해 총 마케팅 비용으로 3조4천740억원을 투입했다. 올해 3분기까지 투입한 마케팅 비용도 2조587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KT는 총 2조5천597억원을 썼다. 올해는 3분기까지 1조9천254억원을 마케팅 비용에 쏟아 부었다.
LG유플러스는 지난해 총 1조7천544억원의 마케팅비를 지출했다. 올해 3분기까지 지출액도 벌써 1조3천590억원에 달한다.
HMC투자증권 황성진 애널리스트는 보고서를 통해 “법안 통과시 통신사와 알뜰폰 업체는 보조금 경쟁 축소로 인해 장기적으로 마케팅비가 감소할 것”이라며 “통신사 차원의 보조금 지급이 아닌 일선 대리점단에서 지급하는 스팟성 보조금이 줄어들고 장기적으로는 단말기 출고가 자체가 낮아지는 효과가 발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통신요금과 단말기 가격을 분리, 가계통신비가 너무 비싸다는 착시현상을 없앨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단통법이 통과되면 소비자는 단말기 보조금을 받거나, 그만큼의 요금할인을 받는 것 중에 선택 가능하다.
황 애널리스트는 “분리 요금제가 시행될 경우 소비자가 직접적인 통신비 부담(요금할인이 포함된 실요금제)과 단말기 비용(할부원가)을 분리해 인식함으로써 실제 통신비가 너무 비싸다는 착시현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쟁 초점, 보조금에서 서비스로
단통법이 통과되면 이통사들 사이에 저가요금제 출시 등 서비스 경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음성적으로 고가 요금제와 연계되던 것이 줄어들어 불필요한 통신 과소비를 줄일 수 것이란 관측이다.
장대호 방통위 시장조사과장은 “단적인 예로 지난 7월 보조금 규제 이후의 추세를 살펴보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요금제 이용률이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며 “보조금 규제가 이통사들 간의 요금 경쟁을 자극하는데 효과가 있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실 LTE로 넘어오면서 네트워크에서도 3사간 차이를 부각시키기 쉽지 않아졌다. LTE, LTE-A, 광대역 LTE까지 모두 시기상의 차이만 있을 뿐 궁극적으로는 모두가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여기에 현재 이통3사 요금제는 구간 구성에서부터 가격수준까지 대부분 비슷비슷하다. 한 통신사가 음성무제한 요금제를 내놓으면 나머지 두 통신사가 약속이나 한 듯 유사한 요금제를 내놓는 식이다.
이트레이드증권 김준섭 애널리스트는 보고서를 통해 “이통사의 경쟁논리가 보조금 위주의 마케티어에서 상품 위주의 요금제 경쟁으로 변화해 갈 것”이라며 “단통법은 향후 상품 위주의 요금제 경쟁을 가속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단말기 보조금이 주로 타사 고객을 유인하면서 가입자당 평균매출(ARPU)과 가입자수를 늘리는데 집중했다면, (법안 통과로) 각 통신사는 자기 고객의 ARPU를 더욱 높이는데 주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용구 통신소비자협동조합 상임이사는 “보조금은 구매 당시에는 싸게 산 듯 보일지라도 고가 요금제 선택을 유도해 결국 소비자에게 부담이 돌아오게 돼있다”며 “현재의 이통3사 요금제는 그만그만한 수준인데다 거품이 심해 다양한 경쟁구조가 도입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경쟁 활성화 억제하면...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그러나 보조금 안정화를 이유로 시장을 규제할 경우 기존 이동통신 시장 점유율이 고착화되고, 경쟁 억제로 이용자 피해를 불러 올 수 있다는 반론도 나온다.
이통사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분분하다. 특히 LG유플러스의 경우 시장점유율이 고착화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비쳤다. 보조금 투입과 관련한 운신의 폭이 좁아질 경우 결국 1위 사업자만 웃는 일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유필계 LG유플러스 부사장은 지난 5일 열린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 토론회에서 “법안이 크게 보면 시장 경쟁을 제한하는 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며 “시행 과정에서 현재의 이통시장 점유율을 5:3:2로 고착화되지 않도록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 “경쟁 활성화는 궁극적으로 이용자를 위한 것”이라며 “이용자 보호를 너무 강조해서 경쟁을 억제하다 보면 결국은 이용자에게도 피해가 가게 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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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미래부 측은 이통사들이 요금제나 특화 서비스 등을 개발해 경쟁하기 보다는 보조금을 이용한 가격 정책에 기대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한다. 보조금 투입으로 일시적인 변화는 있을 수 있지만 그동안 점유율 자체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홍진배 미래부 통신이용제도과장은 “지금까지 십 수 년 동안 보조금을 써왔지만 시장점유율이 변하지는 않았다”며 “오히려 보조금 경쟁으로만 붙을 경우 재원적으로 훨씬 더 우수한 선발사업자에 비해 후발사업자가 불리한 상황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