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채 회장의 사표가 수리됐다. 지난 3일 사의를 표명한 지 10여일 만이다. KT는 후임 최고경영자(CEO)가 결정될 때까지 표현명 T&C부문 사장의 직무대행체제로 전환된다.
KT는 12일 오후 2시 서초 올레캠퍼스에서 이사회를 열고 이 회장의 사표를 수리, 표현명 사장 직무대행으로 하는 비상경영 체제 돌입을 선언했다. KT 이사회는 “산적한 경영 현안 처리 필요성 및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임을 고려, (이 회장의) 사임 의사를 수용키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이사회에 참석했던 이석채 회장은 약 40여분 만에 사표를 제출하고 올레캠퍼스를 떠났다.
이 회장은 “이사님들과 임직원 여러분, 노조위원장님과 노동조합, KT를 아끼고 사랑해주신 고객과 주주 여러분께 정말 고마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며 “KT 임직원과 함께 일할 수 있었던 것을 제 인생의 축복으로 생각하고 끝까지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현재 이 회장은 배임혐의 및 비자금 조성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검찰은 지난달 22일, 지난 1일에 이어 이사회 하루 전인 11일까지 총 3차례에 걸쳐 KT 본사 및 계열사, 임직원 자택 등을 압수수색했다. KT 임원들의 소환조사 역시 진행 중이다.
■내주 CEO추천위 구성…새 회장 선임 돌입
이 회장의 사임에 따라 KT는 후임 CEO 선임 절차에 착수하게 됐다. KT 정관에 따르면 전임 CEO의 퇴임일자가 정해지면 2주 이내 CEO 추천위원회를 구성케 돼있다. KT는 내주 초 이사회를 열고 CEO 추천위원회를 꾸릴 계획이다.
CEO 추천위원회는 사내이사 1명, 사외이사 7명 전원으로 구성된다. 사외이사는 김응한 변호사, 박병원 은행연합회장, 차상균 서울대 전기컴퓨터공학부 교수, 성극제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이현락 세종대 석좌교수, 이춘호 EBS 이사장, 송도균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등이다.
표현명 사장이 CEO직무대행을 맡게 됨에 따라 CEO추천위원회에 합류하는 사내이사는 김일영 코퍼레이트센터장이 맡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CEO추천위원장은 KT 회장에 입후보 할 수 없다는 정관에 따라 후임 후보 중 하나로 거론됐던 표 사장으로서는 회장직 도전 가능성이 남아있게 된 셈이다.
신임 CEO 후보는 CEO추천위원회 재적위원의 과반수(위원장 제외) 찬성으로 결정된다. 이후 주주총회에서 최종 선임 여부가 확정되는 식이다. KT는 경영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연내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CEO 선임을 마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석채 수렴청정 체제?…검찰 수사 관건
이 회장의 퇴임에 따라 KT 내부에서는 검찰 조사가 조속히 마무리되고 경영이 정상화되길 기대하는 분위기다. 표현명 사장이 CEO 직무대행을 하게 되면서 좀 더 젊은 시각과 빠른 판단력으로 경영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다.
다만 일각에서는 비판적 시각도 있다. 표 사장이 그동안 눈에 띄는 업무적 성과를 보여주지 못한데다, 오히려 LTE 경쟁에 뒤쳐진 데 대한 책임이 있다는 의견이다. KT는 올해 들어서만 약 52만명의 고객이 이탈한 것으로 집계됐다.
정관에 따라 CEO직무대행은 사내이사 두 명(표현명, 김일영 사장) 중 한 명이 맡게 된다. 업계에 따르면 KT 임직원들은 차기 CEO로 낙하산 인사가 아닌 내부 인재 등용을 원하는 분위기다. 표현명 사장은 경력만 놓고 보면 한국통신(옛 KT) 시절 입사해 KTF를 거쳐 15년 이상 KT에 근무해온 ‘KT맨’으로 적임자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표 사장의 이력이다. 표 사장은 이석채 회장의 경복고등학교 후배로 그동안 이 회장의 최측근 중 한 명으로 꼽혀왔다. 표현명 대행체제를 놓고 업계 일각에서 ‘이석채 수렴청정’ 체제 아니냐는 시선을 보내는 이유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일각에서는 표 사장의 직무대행 체제야 말로 이석채 회장이 원하는 대로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며 “현 KT 이사회가 ‘이석채의 사람들’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만큼 표현명 직무대행→회장 후보 선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황이 이러한 예상대로 흘러갈 것인지 여부는 미지수다. 가장 큰 변수는 검찰 조사다. 검찰은 조만간 이석채 회장뿐만 아니라 김일영 사장, 표현명 사장 등을 각각 피의자,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조사할 방침이다.
김일영 사장의 경우 이미 출국금지 조치까지 내려진 상태다. 김 사장은 지난 6일밤 아프리카 우간다로 출장을 가려다 출국심사대를 통과하지 못하고 그대로 돌아왔다. 검찰 내부에서는 이석채 회장을 전격 구속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앞서 참여연대는 지난 2월 말 이석채 KT 회장을 스마트애드몰사업, OIC랭귀지비주얼 사업, 사이버MBA 사업과 관련,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발했다. 이어 지난 10일에는 참여연대, 전국언론노조 등이, 이 회장이 KT 사옥 39곳을 매각하면서 감정가의 75% 정도에 해당하는 금액만 받고 매각해 회사와 투자자에 손해를 끼쳤다며 추가 고발했다.
여기에 미래창조과학부가 무궁화 위성 2, 3호 불법 매각과 관련해 이석채 회장을 고발한 건 역시 걸림돌이다. 미래부는 KT 대표자인 이 회장을 전기통신사업법 위반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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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내부에서는 위성 매각과 관련, 전기통신사업법뿐만 아니라 물자법 위반을 적용해 징역 5년까지 구형할 가능성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이 회장의 후임으로는 이상훈 KT 전 사장, 방석호 전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원장, 김동수 전 정보통신부 차관, 형태근 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 이기태 삼성전자 전 부회장, 황창규 삼성전자 전 사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