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통신 장비 시장과 화웨이 딜레마

전문가 칼럼입력 :2013/11/06 12:49    수정: 2013/11/08 13:29

박종일
박종일

LG유플러스가 중국 화웨이 이동통신 장비를 도입하는 것에 따른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우려의 방향은 크게 3가지다.

첫째, 미국과 유럽에서 제기된 통신 도감청에 대한 것. 둘째 국내 통신장비 기업에 대한 피해, 마지막으로 통신 하드웨어 산업의 주도권 상실이다.

이 때문에 지난달 31일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화웨이 진출에 따른 파장을 묻는 질문에 ‘국내 통신장비 기업의 타격은 피할 수 없다’는 답변을 내놨다. 그러나 장비를 도입하는 LG유플러스를 막을 명분과 제도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화웨이는 어떤 회사인가?

화웨이는 아직까지 국내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그저 통신 산업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중국의 삼성전자’, ‘무서운 잠재적 경쟁자’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관심의 방향도 주로 스마트폰과 같은 디바이스에 맞춰져 있다. 

화웨이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LG전자, ZTE(중국)와 3위권을 형성하고 있다. 1, 2위인 삼성전자와 애플에 아직은 경쟁 상대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이번에 국내에 상륙하는 통신장비 시장에서 화웨이는 에릭슨(21.5%)에 이어 16.5%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며 전세계 2위를 차지하고 있는 명실상부한 강자 중의 강자이다. 삼성전자조차 이 시장 점유율이 2.3%에 그친다.  그것도  대부분은 국내 시장에서 발생하고 있을만큼 국내 통신장비 기업의 경쟁력은 높지 않다.

LG유플러스는 왜 화웨이를 선택했는가?

LG유플러스의 선택은 결론적으로 최선일 것이다. 이동통신사들은 치열한 마케팅 비용과 높은 CAPEX(투자비)로 인해 성장이 정체에 빠진지 오래다. 특히 LG유플러스는 2.6GHz 주파수를 할당 받았지만 전세계적으로 해당 주파수의 서비스 지역이 많지 않아 불확실한 네트워크 투자라는 걱정도 있었을 것이다.

비용과 불확실성이라는 어려움에 빠진 LG유플러스에게 화웨이의 ‘1+1(기존 장비 교체 + 신규 장비 신설)’ 조건은 도저히 뿌리칠 수 없는 제안이었을 것이다. ‘도저히 뿌리칠 수 없는 제안’이라는 표현은 실제로 LG유플러스 담당자가 직접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유럽에서 불거진 도감청 이슈에 대해 LG유플러스는 ‘허위 정보를 유포시키는 자는 법적인 처벌을 받을 수 있다’며 정면돌파를 선언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야생성을 키워온 LG유플러스에게 ‘화웨이’는 분명 생존 가능성을 높여주는 존재라는 것에 필자 역시 이견은 없다.

국내 통신장비 시장은?

그동안 화웨이에게 국내 통신시장 진출은 그리 녹록치 않은 시도였다. 국내 통신3사(SKT, KT, LGU+)가 투자하는 규모는 2012년 1조 5천949억원 수준이다. 올해는 다소 줄어든 1조 1천468억원 규모로 예상된다. 이 중 유선망 시설인 전송, 교환, 가입자 장비는 5천42억원 수준이다. 무선망 구간에 있는 RRH, 중계기, 펨토셀 등이 일으키는 시장 규모는 6천426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결코 작은 시장은 아니다. 그렇다고 세간의 이슈를 불러 일으킬 만큼 큰 시장도 아니다. 더구나 기존 한국 시장에서 에릭슨, 삼성전자, 시스코, NSN(노키아솔루션앤네트워크)이 강세를 보였음을 감안하면  화웨이가 노리는 국내 시장은 전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낮을 것이다. 그렇다면 화웨이는 무엇을 노리는걸까?

화웨이가 바라는 것은 ‘한국의 시장’이 아닌 ‘한국의 경험’일 것

단언하면, 규모가 작은 국내 시장에서 화웨이가 바라는 것은 ‘LTE 선진국’인 한국이라는 레퍼런스일 것이다. 한국은 전세계 최초의 LTE 전국망 국가다. 통신3사가 모두 전국망을 구축한 사례는 앞으로도 전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기록일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디바이스와 서비스가 활성화됐고, 급상승하는 데이터 트래픽 처리에 대해 한국만큼 좋은 테스트베드는 없을 것이다. 시스코, NSN 등 주요 글로벌 기업들 역시 한국의 데이터 트래픽 추세를 살펴보며, 몇 년 후 전세계에서 나타날 현상에 대한 분석과 대응을 하고 있을 정도이다.

도감청 문제나 ‘차이나 디스카운트’를 겪는 화웨이에게 있어 한국 시장은 유럽과 북미 등 선진국을 대상으로 차세대 LTE 장비 수출을 위한 교두보로서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통신사업자인 LG유플러스의 적극적인 협력도 화웨이에게 새로운 경험과 기술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일 것이다.

생존의 기로에 선 한국의 통신장비 기업, 손 놓고 있을 것인가?

한국 통신장비 시장은 대기업으로는 삼성전자가 유일하다. 그 옛날 1986년 전전자교환장비인 TDX-1을 국산화하였고 이후 통신장비 시장에는 삼성전자 외에 LG, 현대, 대우 등의 대기업이 뛰어들었으나 지금은 삼성전자 외에 자취를 찾아볼 수 없다.

대신, RRH나 중계기 등의 소규모 장비 기업들은 한국의 빠른 통신 시장 변화에 발맞춰 지속적으로 발전해왔다. 주요 기업으로는 쏠리드, 기산텔레콤, 에프알텍, 다산네트웍스 등을 꼽을 수 있다. 중국 화웨이의 진출은 이들 기업에게는 생존이 달린 문제가 될 것이다.

이를 의식한 듯 LG유플러스와 화웨이는 R&D센터 구축 등 적극적인 협력 의지를 보이고 있으나, 아직은 선언적인 구호에 그치고 있다. 화웨이는 선심이라도 쓰듯 해외진출 시 국내 중소기업과의 동반 진출 의향도 보였다. 그러나 ‘통신 장비 주도권’ 상실에 대한 우려는 지울수 없다.

 

국내 제4이동통신 서비스 신청 업체의 기술 방식은 LTE-TDD(시분할 LTE 방식)로 승인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LTE-TDD 방식은 중국이 전세계적으로 가장 앞서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때문에 LG유플러스의 화웨이 장비 도입으로 자칫 차세대 이동통신 기술마저 중국에 종속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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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기업 중 시가총액 1위는 삼성전자이고, 대부분의 성장 동력은 휴대폰 사업에서 발생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한국 경제가 성장한 배경에는 1994년 CDMA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며 자국 기술을 육성한 것도 한몫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당시 GSM 방식을 도입했다면 노키아나 에릭슨, 알카텔 등의 선도 기업에 가려 한국 통신 시장은 이만큼 성장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번 화웨이의 한국 진출은 그저 저렴한 통신장비를 도입한 것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관련 정부기관과 기업들의 고민이 지금보다 더 깊어져야 할 것이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박종일 IT컬럼니스트

커넥팅랩 대표.
통신사와 증권사를 거치며 이동통신 요금기획, 컨버전스 사업기획 등을 담당했다. 국내 주요 기업의 IT 실무진들과 함께 모바일 포럼 커넥팅랩(www.connectinglab.net)을 구성하여 정기적인 세미나와 지식 전파 활동을 펼치고 있다. 최근 '모바일 트렌드 2014'를 출간하였으며 저서로는 'LTE 신세계', '스마트패드 생존전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