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채 KT회장이 결국 사퇴 의사를 밝혔다. 비자금 조성 및 배임 혐의, 정치 외압설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두 차례의 압수수색 등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에 심리적 압박을 받았다.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중도하차한 비정상적인 과정이다.
문제는 이러한 비정상적인 과정이 낯설지 않다는 것이다. 전임 남중수 KT 사장의 사퇴 과정이 오버랩된다. 남 전 사장 역시 검찰에 의해 배임수재 혐의로 조사를 받았고 구속돼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 회장은 박근혜 정부가 집권한 2013년 11월에 사의를 표명했다. 남중수 사장은 이명박 정부가 집권한 2008년 11월에 사퇴했다. 기막힌 우연의 일치일까. 이러한 우연 때문에라도 정부의 인사권이 KT에 미치고 있다는 루머가 현실처럼 와닿는다. KT는 지난 2002년 민영화됐지만 여전히 정권의 '낙하산 인사'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곧 선임될 차기 KT 최고경영자(CEO)는 이러한 굴레를 벗어 던질 수 있는 '덕목'을 최우선적으로 갖춰야 한다. 정치권 인사가 개입된 인물이 선임된다면 다음 정권이 시작될 2018년에도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다. 그리고 KT는 지금과 같은 위기상황 속에 빠질 것이다.
KT의 CEO 자리는 결코 만만치 않은 자리다. 정치적 외압에도 의연해야 하고, 이동통신 시장의 치열한 경쟁에서 생존 전략을 찾아내야 한다. 민영기업이지만 국가 통신망을 갖추고 있어 '보편적 서비스'에 대한 책임도 남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공성과 통신 비전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또한 3만2천여명의 임직원과 그 식구들을 책임져야 한다. 조직이 행복해 지기 위해 노동조합과도 긴밀한 협력을 통해 혁신적인 인물을 뽑아야 한다. 이 모든 것을 다 짊어지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슈퍼맨'이 필요할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과정은 신속해야 한다. 이 회장의 사의 표명으로 내부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경영진 또한 적지 않은 물갈이가 예상된다. 설상가상 KT는 지속적인 유선통신 매출 감소와 최근 번호이동 가입자 감소로 실적이 곤두박질 치고 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광대역LTE 서비스 활성화에 매진해야 할 때에 흔들리고 있다. 자칫 총체적인 사기 저하가 우려된다. 조직의 안정화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다.
물론 급하다는 핑계를 대고 정재계 인맥이 넓은 인사나, 조직 장악력만 뛰어나다거나, 통신분야 전문성만 갖춘 인사를 슬쩍 끼워맞추는 식으로 마무리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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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이석채 회장을 포함해 작금의 경영문제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빠져야 한다. 어떤 식으로든 '끈'을 연결하려 하면 안된다. 슈퍼맨 같은 후임 CEO가 선임될 수 있게 길을 비켜줘야 한다.
이른바 '주인없는 회사' KT가 필요로 하는 CEO는 그 구성원들을 진짜 주인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투명성과 공정성이 반드시 보장돼야 함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