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통신 산업의 ‘맏형’ KT의 수장이 5년 만에 불명예 퇴진을 앞뒀다. 화무십일홍. 이석채 KT 회장을 보며 떠오르는 말이다.
이석채 회장의 경력은 화려하다. 그를 표현하는 단어 중 ‘엘리트’만큼 잘 어울리는 것이 없다. 경복고,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이 회장은 행정고시 7회 출신으로 김영삼 정부 시절이던 지난 1996년 제2대 정보통신부 장관을 맡았다. 이후 청와대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까지. 그야말로 전형적인 엘리트 관료다.
‘카리스마’ 역시 이 회장을 수식하는 단어다.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고 임직원들을 이끌어가는 모습에서 추진력 있는 리더의 모습을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난 2009년 KT에 입성한 후 취임 엿새 만에 KTF와의 통합 발표, 애플 아이폰의 국내 도입 결정 등이 이러한 인식을 뒷받침했다. 평가는 엇갈리지만 취임한 바로 그해 12월 31일자로 5천992명이라는 통신업계 사상 최대 규모 명예퇴직을 단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한때 통신업계 호사가들의 입에서는 “이석채 회장의 영향력이 방통위원장보다 세다”는 다소 과장 섞인 찬사(?)까지 나왔을 정도다.
분위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변했다. 일단 내부 평가부터 엇갈리기 시작했다. KT를 채운 사람들이 이 회장이 외부에서 데리고 온 면면으로 채워지면서 불협화음이 커지기 시작했다. 이들이 고액 연봉을 받으면서 직원들의 박탈감도 커졌다. 기존 KT 직원들을 뜻하는 ‘원래 KT’, 외부에서 온 ‘올레 KT’라는 자조 섞인 우스갯소리가 현실이 됐다.
통신사 본연의 경쟁력이 빛나야 할 시장 경쟁에서도 뒤쳐졌다. 유선이야 한국통신 시절부터의 네트워크 자산 덕에 독보적인 시장지배적 사업자라지만 무선분야 성적은 참담하다. 3G ‘쇼’ 시절 초반의 상승세를 잇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LTE 들어서는 3위 사업자 LG유플러스의 추월을 걱정하는 신세가 됐다. ‘KT’라는 자부심을 오랫동안 가슴에 품은 임직원들로서는 기가 찰 노릇이다.
당장의 성적표야 BC카드, KT스카이라이프, KT렌탈 등 비통신 자회사 실적으로 메운다지만, 통신분야 실적 낙하를 막는 것은 역부족이다. 이는 지난 1일 발표한 3분기 실적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주가 역시 이 회장 취임 당시인 지난 2009년 1월 최고가 5만1천700원이 2012년 한 때 2만7천550원까지 떨어지는 등 반토막이 났다. 4일 오전 11시 현재 KT의 주가는 3만4천700원이다.
노사 갈등의 골도 갈수록 깊어졌다. 올해 들어서만 벌써 8명의 KT 임직원이 자살했다. 제2노조를 필두로 내외부에서 “KT=죽음의 기업”이라고 외치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이제 주주총회에서 “이석채 퇴진하라” 구호를 듣는 것은 연례행사가 됐다.
급기야 지난해부터는 사퇴설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MB맨’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이 회장인 만큼,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자리를 내줘야할 것이란 전망이었다. 기한이 한 달씩 미뤄지는 사퇴설, 청와대 외압설, 와병설 등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졌다.
결국 검찰이 지난달 22일 KT와 이석채 회장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지난 2월과 10월 참여연대가 업무상 배임 혐의로 이 회장을 고발한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업계 안팎에서는 이를 이 회장에 대한 사퇴압박으로 해석하고 있다. 5년 전 정치권의 사퇴 압박에 밀린 남중수 KT 전 사장과 유사한 상황이라는 얘기다.
결국 배임, 비자금 조성 등 검찰의 전방위 적인 압박에 이 회장은 결국 두 손을 들었다. 압수수색에도 불구하고 강행했던 아프리카 르완다 출장, 현지에서도 억울함을 호소하던 그가 귀국 후 하루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한 대목이다. 그렇다고 검찰 수사가 끝난 것은 아니다. 검찰은 이 회장의 측근 임원들을 소환 조사 하는 등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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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채 회장의 퇴진 일자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이사회에서 이 회장의 퇴진일자가 정해지고 나면 2주 이내 CEO추천위원회를 구성, 신임 CEO를 의결하게 된다. 업계 안팎에서는 벌써부터 이 회장의 후임 하마평이 무성하다. ‘KT 회장’이라는 왕좌에 누가 앉을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크다.
이 회장은 “이사회에서 후임 CEO가 결정될 때까지 중요한 과제를 처리하고 후임이 개선된 환경에서 KT를 이끌 수 있도록 회사 발전에 필요한 조치를 마무리하겠다”고 말했다. 불과 5년 만에 엘리트 관료에서 사퇴까지. 향후 이 회장의 행보와 KT의 미래에 이목이 집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