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원가 공개하면 통신비 인하될까?

미래부 확정감사 앞두고 찬반 논란 치열

일반입력 :2013/10/29 15:05    수정: 2013/10/29 17:04

정윤희 기자

통신비 원가 공개를 둘러싼 논쟁이 점입가경이다. 오는 31일 미래창조과학부 확정감사를 앞두고 공개를 요구하는 진영과 비공개 진영이 더욱 첨예하게 맞섰다. 통신비 원가 공개로 가계통신비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는 정치권, 소비자단체 등의 주장과, 이에 맞서 '원가 공개가 곧 통신비 인하'라는 주장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한 관련 업계는 소비자의 통신 사용 패턴 및 시장 상황을 두루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통신비 원가 공개 논란은 지난 14일 미래부 국정감사장의 화약고로 떠올랐다. 통신요금, 단말기 제조원가를 공개하라는 요구가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야당 의원들의 지속적인 통신비 원가 자료 제출 요구와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이라 공개할 수 없다는 정부 입장이 부딪쳤다.

결국 최문기 미래부 장관은 밤늦게까지 빗발치는 야당 의원들의 압박에 “소송을 취하할 용의가 있다”며 “취하를 하게 되면 (통신비 원가) 자료를 공개하겠다”는 발언을 내놨다.

후폭풍은 거셌다. 이동통신3사는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으며 미래부 내부에서도 이견이 나오는 등 혼란이 극심한 상태다. 이통3사는 국회의원들과 여론을 의식해 대놓고 말하지는 못하지만 “사기업의 영업기밀을 공개하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원가정보는 마케팅, 투자전략 뿐만 아니라 원가 구조, 수익성 정보 등 기업의 고유 경쟁력 정보가 포함된 집약보고서로 경쟁이 존재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라며 “경쟁이 치열한 통신시장에서 원가를 공개하라는 요구는 모든 사업자들을 합병해 국유화하라는 것과 다를 것 없다”고 반발했다.

일각에서는 항소심 재판 자체가 미래부, 통신사, 참여연대가 모두 항소한 상황으로 미래부가 취하한다고 해서 바로 자료를 공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또 통신요금은 2G, 3G, LTE 등 통신방식 뿐만 아니라 음성, 데이터, 문자 등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아 어디까지를 원가로 볼 것인가에 대한 이견도 많다는 설명이다.

오는 31일 미래부 확정감사에서는 다시 한 번 통신비 원가 공개를 둘러싼 불꽃이 튈 전망이다. 정태철 SK텔레콤 CR전략실 전무, 구현모 KT T&C운영총괄 전무, 원종규 LG유플러스 모바일사업부 전무가 증인으로 채택됐다.

■ 원가 공개하면 통신비 인하?...스마트폰 이용행태 고려해야

공개를 요구하는 측에서는 통신비 원가를 공개해야 요금인하를 통한 가계통신비 부담을 완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참여연대는 “국민들의 과도한 통신비 부담을 감안했을 때 통신요금 원가 공개가 통신비 인하로 이어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11년 가구당 평균 가계지출 3천69만원 중 통신비가 7%를 차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보다 3~4배에 달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 최근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결과 지난해 3분기(7~9월) 가구당 월평균 통신비 지출액은 15만5천252원에 달해, 전년 동기 대비 12% 늘어났다고 강조했다.

유승희 의원은 “전국민적 관심사가 통신비 인하인 상황에서 원가를 알아야 적절한 수준의 인하 요구를 할 수 있다고 본다”고 힘을 실었으며, 강동원 의원은 “단말기 제조 원가를 공개해 거품을 완전히 걷어내야 한다”고 꼬집었다.

반면 통신업계에서는 이 같은 주장에 부정적인 반응이다. OECD가 지난 7월 발표한 ‘커뮤니케이션 아웃룩’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계통신비 부담이 높은 이유가 비싼 요금 때문이 아닌 많은 음성, 데이터 사용량과 비싼 스마트폰에 기인한다는 설명이다.

통신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우리나라 통신가입자 10명중 6.7명은 비싼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데이터사용량은 글로벌 평균보다 4.5배나 많다”며 “정작 원인은 다른데 있는데 통신요금 원가를 들여다본들 얼마나 통신비 부담을 줄일 수 있겠나”고 반문했다.

국내 통신요금이 비싸다는 전제 자체도 잘못됐다는 주장을 내놨다. 지난 6월 일본 총무성이 발표한 7개 도시 요금비교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가장 싼 것으로 나타났으며, OECD가 올해 발표한 34개국 비교에서는 중상위권으로 나타났다는 지적이다. 또 메릴린치가 발표한 와이어리스 매트릭스에 따르면 1위 사업자 SK텔레콤의 현금기준 영업이익률(EBITA 마진)은 29%로 OECD 회원국 28개국 중 26위에 불과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통신요금 원가 공개 논란은 통신비 증가에 따른 잘못된 원인 분석과 마치 원가만 공개되면 통신비 인하가 가능하다는 잘못된 인식에서 출발한 것”이라며 “포퓰리즘적 정치 논쟁으로 자칫 시장 경제의 근간을 흔들고 국가 경쟁력을 크게 훼손시킬까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기업 영업비밀 공개, 해외는?

그렇다면 해외에서는 어떨까. 일단 현재 우리나라를 포함해 해외 어떤 나라에서도 민간기업의 통신 원가를 공개한 사례는 없다. 통신업계에서는 “요금인가를 위해 영업기밀을 정부에 제출하는 것 자체도 해외에서는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특이한 경우”라고 반발하고 있다.

백남육 삼성전자 한국총괄 부사장 역시 국정감사 당시 “해외에서는 원가 공개와 관련된 제안 등을 받은 적이 없다”며 “단말기 원가 공개는 경쟁이 굉장히 치열한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경쟁 업체에 빌미를 줄 수 있다”고 항변했다.

통신업계는 국회가 공개를 요구한 자료가 민간기업이 관련 법령에 따라 강제로 제출한 자료라는 점을 강조했다. 비슷한 경우 일본법원은 법에 따라 강제 제출된 영업비밀의 경우 ‘비밀유지에 대한 신뢰’ 보호를 위해 비공개토록 판결했고, 미국법원도 강제 제출 자료 중 공개될 경우 자료 제출 자체를 꺼리게 되는 정보도 비공개 대상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지난 2011년 10월 일본 최고재판소는 ‘중부경제산업국장에 대해 에너지사용법에 따라 신일본제철주식회사가 제출한 정기보고서(연료, 전기 등 사용량 포함)에 대한 정보공개청구 사건’에서 “본건 정보는 경쟁상의 지위 및 그 외 정당한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는지에 따라 판단돼야 한다”며 공개 불가 판결을 내렸다.

미국 법원 역시 국립공원보호협회가 연방내무부를 상대로 국립공원 관리업무의 허가를 받은 민간기업에 관한 정보보관자료를 요구한데 대해 공개 거부 결정을 내렸다. “강제 자료 제출의 경우 사업자가 제대로 된 정보를 정부에 제공하지 않고 선별제공하게 되는 위축효과(정부의 정보획득능력 손상)가 발생할 경우 비공개 사유에 해당한다”는 판단이다.

■국내 통신비 원가 공개, 진행 상황은…

국내의 통신비 원가 공개 논란의 발단은 지난 2011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참여연대가 통신요금이 비싸다며 옛 방송통신위원회(현 미래부)를 상대로 원가관련 자료 공개를 청구했으나, 방통위는 총괄원가자료만 공개하고 세부 자료는 공개 거부했다. 참여연대는 같은 해 7월 방통위를 상대로 정보공개거부처분취소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참여연대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는 지난해 9월 6일 영업보고서 일부 공개, 방통위 약관 심의자료 및 사업자 약관서류 전부 공개 등을 골자로 하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공개 대상 자료는 이동통신 원가 관련 영업보고서 자료(대차대조표, 손익계산서, 영업통계, 역무별 영업외 손익명세서, 영업통계명세서), 요금인하 관련 방통위 전체회의 보고자료 8건, 통신요금 태스크포스(TF) 보고서 초안 및 국회 보고자료, TF 공무원 명단 및 민간전문가 소속기관명(KISDI, KDI, ETRI, 소보원 등)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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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방통위는 지난해 9월 이용약관 인가, 신고서류 공개(영업보고서 제외) 처분에 대해 항소했으며, 이통3사는 이용약관 인가, 신고 서류 및 영업보고서 공개 처분 전부에 대해 항소했다. 원고인 참여연대 역시 법원이 ‘영업비밀’이라고 적시한 부분과 통신요금 TF회의록 각하 처분 등에 불복, 영업보고서(전체서식)의 공개가 필요하다고 항소했다.

통신업계에 따르면 항소 이후 1년 이상의 기간 동안 양측이 요구한 입증 절차 및 변론이 대부분 진행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연내 항소심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