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애플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상대측 스마트폰과 태블릿 제품의 수입금지를 신청한 결과는 애플의 판정승이다. 삼성전자가 애플을 상대로 법정싸움을 벌여온 무기를 빼앗긴 셈이라 양사 특허 합의시 불리할 가능성이 점쳐지는 가운데, 상용특허 강화로 국면전환에 나설지 주목된다.
8일(현지시각)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8월초 애플 상용특허 침해에 따른 삼성전자 제품 수입금지 판결을 수용했다. 이는 당사자들에게 앞서 지난 6월초 삼성전자 표준특허를 침해한 애플 제품 수입금지 처분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과 상반된 결과를 가져온다.
행정적으로는 오는 9일부터 삼성전자 제품에 대한 수입 금지가 발효된다. 그러나 실제로 제품에 대한 수입 금지가 집행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더 걸릴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수용 결정 이후 삼성전자가 ITC 판결에 항소할 뜻을 밝혔기 때문이다. 이 경우 수입금지 집행이 미뤄진다.
올바른 국제특허법률사무소 정용재 대표변리사는 ITC 수입금지 판결에 대해 연방항소법원에 항소할 경우 수입금지 집행을 유예시킬 수 있다며 이를 위한 법률적 절차도 복잡하지 않기 때문에 삼성전자가 ITC 판결 이후 항소할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고 언급했다.
사실 수입금지 대상 제품이었던 애플의 아이폰4, 아이패드2 그리고 삼성전자의 갤럭시S, 갤럭시S2, 갤럭시넥서스, 갤럭시탭10.1 등은 거의 유통되지 않고 있는 구형 모델들이다. 삼성전자가 항소를 통해 자사 제품에 대한 수입금지나 애플의 특허침해 여부에 더 유리한 판결을 받더라도 실익은 작다.
■큰 피해 없어…'시간-명분 싸움'
업계는 삼성전자가 애플과 법정공방을 지속하는 한편 장외 협상을 통해 일종의 특허전쟁 '출구전략'을 찾는 투트랙 전략을 사용할 것이라 예상한다. 양사에겐 단순히 재판에서 이기는 것보다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향후 시장 경쟁에서도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미국 ITC에서 애플과 삼성전자가 서로 상대의 특허를 침해한 것으로 판결됐지만 수입금지 처분을 대통령이 뒤집어준 애플의 잘못보다 그대로 수용해버린 삼성전자의 잘못이 더 큰 것처럼 비친다. 이는 양측 협상시 애플에 유리한 요소다. 이에 삼성전자는 반드시 항소해야만 할 입장에 처했다.
삼성전자가 지난 6월 애플의 특허침해 판결을 확정받은데 이어 8월 애플의 수입금지 처분까지 이끌어냈을 경우 굳이 가능성을 생각지 않아도 됐을 법한 상황이지만, 이제 회사는 항소를 통해 '상호특허계약에 활용할 협상카드 추가 확보'와 이를 위한 '시간 벌기'에 나섰다고 볼 수 있다.
향후 삼성전자는 제품 수입금지 자체보다 그 판결과 집행에 따라 애플과의 상호특허 계약을 체결하는 시점에 상대를 압박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 이를테면 지난 6월 ITC가 삼성전자 특허 4건 중 통신표준특허 1건만 애플에 침해당했다고 인정한 판결을 더 유리하게 만드는 것이다.
■상용특허로 국면 전환 시도할 듯
이미 삼성전자는 지난 7월 연방항소법원에 ITC 판결에서 인정받지 못한 특허 3건(표준특허 1건과 상용특허 2건)에 대한 권리를 재심 청구한 상태다. 상위 법원인 연방항소법원이 ITC의 최종 판결을 파기 환송시키면 ITC는 기존 판결을 번복할 수 있게 된다.
즉 삼성전자 역시 애플과의 소송 전략을 표준특허 중심에서 상용특허 위주로 전환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이는 오바마 정부가 ITC의 수입금지 판결에 대한 거부권 행사 여부로 표준특허권자의 권리 행사를 제한하고 상용특허권자의 입지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낸 데 따른 대응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의 이런 대응은 ITC뿐아니라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이어온 법정싸움을 통해서도 실현될 전망이다. 지난달 7일 특허전문블로그 포스페이턴츠는 특허소송에서 삼성전자가 애플에 침해당했다고 주장하는 특허 5건가운데 단 2건만 표준특허고 나머지 3건은 상용특허로 비중이 역전됐다고 지적했다.
양사는 미국과 별개로 한국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도 지난해 3월6일부터 특허침해소송을 벌여 왔다. 삼성전자의 일방제소로 열린 재판은 아이폰4S와 아이패드2 등 제품의 삼성전자 상용특허 침해여부를 가리는 과정이었다. 지난달 26일 양측 대리인이 최종변론을 진행, 선고는 오는 12월12일 나온다.
■'애플과 합의' 멀었나
양사는 ITC에 서로 제품수입 금지 신청 전에 2011년 4월 미국 캘리포니아북부 지방법원을 통해 맞소송을 제기했다. 애플은 상용특허를, 삼성전자는 필수특허를 상대측에 침해당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8월 애플이 1심 승소해 삼성전자가 10억5천만달러 배상을 떠안고 양측 모두 불복, 항소 중이다.
이들의 항소심 재판은 아직 열리지 않았다. 대신 삼성전자의 10억5천만달러 배상금 규모를 늘리거나 줄일 수 있는 재산정 심리가 오는 11월12일 열린다. 애플은 배상 판결을 이끌어낸 자사 특허의 유효성 시비를 막자고, 삼성전자는 시비를 가리자고 하는 서면 제출을 앞다퉈 '장외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당장 삼성전자가 특허 협상 테이블에서 유리하게 꺼내들만한 카드가 마땅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삼성전자에게는 본격적인 소송 일정이 진행되지 않도록 유도하면서 그 이전에 최대한 유리한 조건으로 애플과 상호 특허 사용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매듭짓는 게 적절하다.
복수의 특허전문가들은 기업간의 특허 소송이 상대 기업으로부터 자사 권리를 지키는 목적으로 시작되지만 결국 그 실현 방식은 어떤 제품의 침해 요소를 배제시키거나 그 유통을 아예 막기보다 특허의 가격산정과 상호 사용권 인정 등 상대와의 협상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한다.
■표준특허 제한, 삼성전자도 도움
한편 표준특허권을 제한하려는 오바마 정부 입장과 그에 따른 삼성전자의 상용특허 전환 전략은 향후 표준특허 공세로 삼성전자를 압박중인 에릭슨과 특허괴물로 알려진 인터디지털 등 업체와의 소송에도 약이 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통신기술 표준특허를 대량 보유한 에릭슨과 지난 2001년과 2007년 특허라이선스 계약을 맺었지만 이후 2년 이상 합의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에릭슨은 지난해 말 미국 텍사스 법원과 ITC에 삼성전자를 제소했고 삼성전자도 맞소송에 나서 지난달 심리 기일이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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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괴물 인터디지털은 올초 삼성전자, 노키아, 화웨이, ZTE 등의 휴대폰이 자사 특허를 침해했다며 ITC에 수입 금지를 신청했다. 삼성전자 제품 중에는 갤럭시노트, 갤럭시노트10.1, 아티브S 등이 거명됐다. 역시 구형 제품이지만 ITC가 수입금지 판결시 향후 특허사용권을 주장할 명분으로 쓸 셈이다.
마이클 프로먼 USTR 대표는 표준특허 침해로 제품 수입을 금지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언급했다. 인터디지털처럼 표준특허 침해 제품 수입금지로 삼성전자를 비롯한 많은 IT기업들을 공격해온 회사는 오바마 정부의 이런 태도로 종전에 누렸던 특허 협상 주도권을 상당 부분 상실했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