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폴 버린 제일모직, 전자소재 태풍의 눈

일반입력 :2013/09/23 17:16    수정: 2013/09/24 09:50

이재운 기자

제일모직이 패션사업부문을 완전히 떼어냈다. 삼성에버랜드에 이를 양도한 제일모직은 이제 ‘빈폴’을 떠나보내고 ‘100% 전자소재 기업’으로 변모하게 됐다. 소재 산업 육성을 외쳐 온 삼성그룹과 제일모직의 향후 행보에 전자·화학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23일 제일모직이 패션사업부문을 양도하고 그 자금으로 전자소재 부문을 강화하기로 하면서, 관계자들은 물론 관련 업계도 향후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 근래 들어 전자소재 부문을 강화하며 점차 사업 비중을 조정해나가던 차원을 넘어 온전히 전자소재에만 집중하게 됐기 때문이다.

그 동안 삼성그룹은 소재산업 육성 의지를 여러 차례 천명해왔다. 그 배경에는 그룹의 핵심 축인 전자 산업의 경쟁력 강화가 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에서부터 TV, 냉장고 등 백색가전, PC와 노트북은 물론 갤럭시S4 등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IT 기기 전반에 걸쳐 탄탄한 포트폴리오를 자랑해왔다.

여기에 소니와의 합작투자를 이끌어내며 키운 디스플레이 사업과 코닝과의 합작을 통한 유리 제품 사업까지 전자 관련 부품 산업 다방면에서 강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성공에 비해 기초가 되는 소재 사업 분야는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소재 산업 육성에 힘쓰겠다”는 발언을 여러 차례 남긴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제일모직은 이 임무를 맡기에 가장 적당한 계열사였다. 지난 1954년 설립된 이래 섬유 사업을 계속해 온 제일모직은 이후 케미칼과 패션으로 그 영역을 넓혀나갔다. 섬유 산업은 패션으로도 연관이 되지만, 화학 소재와도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듀폰 등 세계적인 화학 업체들도 나이론 등 섬유 소재로 유명해진 역사를 갖고 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제일모직이 전자소재를 취급하는 것은 그리 특이한 일이 아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최신 IT 하드웨어 기술, 특히 디스플레이 분야의 근간이 되는 주요 소재를 만드는 곳은 머크, 다우케미칼, 바스프 등 화학 소재 기업으로 유명한 업체들이다.

제일모직은 그 동안 대중을 상대하는 B2C 사업의 특성상 ‘빈폴’과 ‘갤럭시’ 등 의류 브랜드로 주로 기억됐지만, 실제 사업 비중에서 패션은 그리 절대적인 존재는 아니었다. 패션사업은 이미 사양 산업으로 언급될 정도로 성장 가능성이 크지 않은 분야여서 지난 1994년 전자소재 사업 진출 당시부터 언젠가 패션 사업이 따로 분리될 것이라는 추측이 제기돼왔다.

제일모직의 사업 분야는 크게 3대 축으로 나뉜다. 분리, 양도가 결정된 패션사업부를 비롯해 케미칼과 전자소재부문 등이다. 이 중 케미칼은 스티렌계 수지,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건자재 등을 생산하고 있다. 건자재로 생산 중인 인조대리석을 지난주 열린 ‘런던 100% 디자인 전시회’에 출품하는 등 해외 시장 진출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전자소재는 ‘스타렘(Starem)’이라는 브랜드를 통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에 필요한 소재를 공급해왔다. 반도체에서는 주로 패터닝(SOH, SOD)이나 패키징(EMC)에 관련된 소재를, 디스플레이에서는 필름소재(편광필름, MAS, ACF)와 공정소재(CR, BM, OC, PDP Paste, OLED 소재) 등을 취급한다.

지난 2분기 제일모직의 매출 1조6천117억원 중 케미칼은 45.4%(7천311억원), 전자소재는 26.9%(4천342억원), 패션은 27.7%(4천464억원)을 기록해 케미칼과 전자소재를 합친 소재 부문 비율이 70%를 넘어섰다.

그런 의미에서 제일모직의 패션사업 분리는 회사 차원에서는 오히려 체질 개선과 이미지 쇄신을 통해 한 발짝 더 도약할 수 있는 계기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미 전부터 전자소재를 강화하고 있었고 그쪽으로 투자를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일모직) 회사 차원에서는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며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제일모직 입장에서는 전자소재 부문에 대한 욕심이 클 수 밖에 없다. 이미 기존 화학·건자재업 계열사를 보유한 LG, SK, 한화, 두산, 금호 등 다른 대기업들도 기존 사업 분야의 시장 정체를 우려, 전자소재 분야에 신규 진출하거나 기존 사업 강화에 주력하는 등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상황이다.

제일모직은 인수 협상에서 앞서 있던 두산을 대신해 지난달 독일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관련 유명 소재 업체인 독일의 노바LED를 1천731억원에 인수하며 OLED 분야 경쟁력을 강화하는 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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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모직은 패션부문 양도 대금으로 받을 1조500억원 중 2천억원 가량을 이 인수작업에 투입할 것이라고 증권사 애널리스트들과의 간담회에서 밝혔다. 또 연말에 수원의 그룹 전자소재단지에 일부를 투자하고, 내년 분리막 사업에 나머지 금액을 투자하겠다고 덧붙였다. 케미칼 부분에선 엔지니어링 플라스틱과 수처리 멤브레인 등에 투자가 이뤄질 예정이다. 사명 변경은 오랜 시간을 두고 진행하되, '소재'를 주요 키워드로 삼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지난 16일 창립 59주년을 맞아 박종우 제일모직 사장(소재사업총괄)은 창립기념사를 통해 '강한 체질의 글로벌 기업'을 목표로 제시했다. 패션부문 양도 결정이 제일모직을 박 사장이 밝힌 목표처럼 ‘강한 글로벌 기업’으로 만들고, 나아가 순항하고 있는 삼성그룹의 전자 사업 경쟁력 강화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 그룹 내부는 물론 시장전체가 이를 주시하고 있다. 이날 제일모직 주식 종가는 전일 대비 3.26% 오른 9만5천원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