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소프트(MS)가 스마트폰 사업에서 협력해온 제조업체 노키아를 54억4천만유로에 통째로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제지공장에서 출발해 10년간의 전성기 휴대폰 사업까지 이끌다 최근 쇠락의 길을 걸어 온 핀란드 제국 노키아의 시대가 마침내 막을 내렸다.
3일(현지시각) MS가 밝힌 것처럼 노키아를 인수하겠다는 얘기는 양사가 스마트폰 파트너로 마주한 지난 2년간 IT업계에 공공연히 회자됐다.
스테판 엘롭 노키아 최고경영자(CEO)가 설립 145년만에 맞아들인 외국인 임원이자 MS 출신이라는 점부터, 윈도폰 사업 협력 1년만에 다른 제조 파트너를 제쳐놓고 별도의 자금지원과 단말기 및 콘텐츠 파트너십 강화를 발표하는 것까지 의심을 이어가기에 충분했다.
노키아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발전산업, 제조업, 전자업체 등으로 적극적인 변화를 추구하며 한때는 혁신과 도전의 아이콘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하지만 세계적 성공을 거둔 휴대폰 사업에 자만하면서 정체되기 시작했다.
회사는 애플 아이폰을 필두로 완전히 뒤바뀐 소비자용 제품 시장의 흐름을 뒤늦게 깨달아 대응에 나섰지만 역부족에 그쳤다. 결국 그 마지막을 MS와 급히 손잡은 플랫폼 전략의 실패로 기록하게 됐다.
■제지업체에서 글로벌 휴대폰 혁신의 아이콘으로
노키아는 지난 1865년 핀란드 남서부 지방에 펄프공장을 갖추고 종이를 만들어 팔기 시작한 회사다. 창립자 프레드릭 이데스탐은 그 후 3년만에 인근에 2번째 공장을 세웠고, 1902년 회사는 전기 생산 업종으로 사업체제를 전환하는 대변신을 꾀했다.
노키아는 1차 세계대전을 치르는 동안 도산 위기에 처했다. 망하기 직전 당시 근교의 '피니시러버웍스'라는 고무장화, 호스, 타이어 제조업체에 전력공급업체로 인수돼 살아남을 수 있었다.
몇년 뒤 노키아를 포함한 고무제품 제조사는 소비에트연방에 전화 및 전기선을 수출하는 업체 '피니시케이블웍스'에 인수됐다. 이후 1922년 노키아, 이를 인수한 고무업체와 케이블업체, 3곳이 합병해 전자업체로 재탄생했다.
3사의 공식 합병 시점은 1967년이다. 이후 사업부문은 고무, 케이블, 임업, 전자, 발전, 5개 영역을 아우른다. 회사는 1960년대부터 핀란드 군용 무선 전화기를 만들고 1982년 '모비라세네터'라는 최초의 카폰을 선보였다.
1987년엔 무게 0.7kg짜리 최초의 휴대용 전화기를 선보였다. 공식 명칭은 '모비라시티맨'이었지만, 소련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사용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알려진 뒤로는 '고르바'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해졌다.
1992년 노키아는 최초의 GSM표준 디지털휴대폰 '노키아1011'을 내놨다. 이후 고무제품, 케이블, 소비자가전 부문 사업을 매각하면서 휴대폰 사업에 주력하겠다고 선언했다.
1994년 이후 10년간 노키아의 역사는 휴대폰 출시와 상품 히트 실적으로 요약된다. 1994년 노키아2100시리즈가 2천만대 팔렸고 1997년 노키아6110이 3억5천만대 판매됐다.
회사는 1995년 한국 시장에도 진출해 국내 서비스 기반에 맞춘 CDMA용 휴대폰을 팔기도 했다. 하지만 미미한 실적에 그치자 GSM표준 기기에 전념하기로 하며 곧 국내 시장에서 철수하게 된다.
회사는 1998년 휴대폰 제조사 1위 타이틀을 얻기 시작한 이후, 부흥기를 맞은 인터넷 기술에 대응한 제품들도 선보였다. 1999년 나온 노키아7110은 이메일을 포함한 웹기능을 처음 지원했고 2001년 등장한 노키아7650은 내장 카메라를 처음 탑재했으며 2002년 노키아3650은 동영상 촬영까지 가능했다.
2005년 노키아는 세계 이동통신 가입자가 20억명을 넘어섰으며, 자사가 10억번째 휴대폰 판매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2007년에는 자사가 세계에서 5번째로 가치있는 브랜드로 인정받았다고 알렸다.
■승리에 도취해 한순간에 몰락
2007년은 애플 아이폰이 처음 등장한 해이기도 하다. 아이폰은 윈도모바일과 블랙베리 중심이었던 비즈니스 및 산업용 스마트폰 시장 영역을 일반 소비자 쪽으로 확 키운 공신으로 평가된다.
노키아는 2008년 세계 휴대폰 시장 점유율 39%대를 기록하며 최전성기를 누린 뒤 북미, 남미, 유럽, 아태지역에서 판매 부진을 겪고 중국 시장의 성과로 벌충하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2009년 이후 삼성전자, LG전자, 미국 모토로라, 일본 소니, 중국 HTC와 화웨이 등이 구글 안드로이드를 통해 확산 추세인 스마트폰 트렌드에 대응하기 시작하며 시장 재편에 속도를 더했다.
노키아는 2011년까지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면서도 스마트폰과 태블릿 등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모바일 시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됐다. 그해 5월말 2분기 실적 발표를 앞둔 회사는 처음 적자 위기를 맞기 시작했는데, 회사 주가는 이미 4년 전보다 반의 반토막난 상황이었다.
그해 노키아는 MS와 협력해 명예회복에 나선 상태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지원받은 10억달러 자금이나 미숙했던 윈도폰 플랫폼은 노키아를 되살리는 데 큰 변수가 아니었음이 드러났다.
노키아는 이듬해인 2012년 6월, 1년간 직원 1만명 감원 계획과 국외 3개공장 폐쇄 소식을 알렸다. 그해말 세계 휴대폰 점유율 1위 타이틀은 삼성전자 차지가 됐다.
관련기사
- '마지막 승부수' MS, 노키아 7.8조에 삼켜2013.09.03
- MS, 노키아 휴대폰사업 7조원에 인수2013.09.03
- 아! 노키아...또 1만명 감원2013.09.03
- 아, 노키아! 중국에도 뭇매 이젠 적자 걱정2013.09.03
노키아가 이후 분기별 휴대폰 시장 점유율이 하락세를 이어오면서, 매출과 영업이익의 부진은 더이상 새롭지 않은 소식이 됐다. 그나마 수량으로만 세계 2위 휴대폰 공급업체 타이틀을 얼마나 지켜낼 수 있을지도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결국 회사는 스마트폰 비중이 피처폰을 넘어선 지난 2분기 휴대폰 판매량으로 1년전 8천300만대보다 떨어진 6천100만대를 기록, 1위 삼성전자와의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3위 애플에게도 추격당하는 신세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