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석동은 가난한 대학가다. 대학가라고 하면 으레 떠올릴 법한 반짝이는 네온사인도 별로 없고 그 흔한 스타벅스도 없다. 뉴타운 건설로 가장 몸살을 앓고 있는 강(이)남의 동네이기도 하다. 흑석동 골목길 벽면에 붙어있는 하숙/원룸 매매 정보는 전세난을 보도하는 뉴스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그림이 됐다.
페이스북 페이지 ‘흑석동의 모든 것(이하 흑모것)’은 이런 흑석동에 대해 이야기하는 온라인 공간이다. 5천명이 넘는 사람이 이 공간에서 흑석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흑석동 인구 3만명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숫자다.
이 페이지 운영자 차승학㉗씨는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이다. 그는 처음 입학했을 때만 해도 흑석동이 상상했던 대학가의 이미지와 거리가 멀어 실망했다. 하지만 해외에 여행을 다녀온 뒤로 생각이 바뀌었다.
“여행 중 도시와 사람들 관찰을 즐기다 보니 지역, 공간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어요. 흑석동에 돌아왔을 때는, 입학했을때 ‘구려’보였던 흑석동이 아닌 여러가지가 혼합된 매력적인 흑석동이 보였죠. 흑석동에 보존돼 있는 골목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이런 생각으로 그는 지난해 2학기가 시작하는 9월 1일부터 하루에 하나씩 콘텐츠를 만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하루도 거르지 않았으니 벌써 콘텐츠가 300개에 달한다. 기자와 만나기 전 2시간 전에도 “지금 이 시간, 흑석동 중앙대 캠퍼스 곳곳에서는 축제가 열리고 있습니닷! 여러 볼거리와 맛있는 먹거리까지 3일 내내 축제가 계속 된다고 하니 흑석커분들 이번 주중엔 중대 캠퍼스로 출동!”이라는 글을 올렸다. 얼마 전에는 중앙대와 흑석동에 관해 만든 영상을 올렸다가 학교 입학처로부터 사용하고 싶다는 문의도 받았다.
콘텐츠 범주는 말 그대로 흑석동에 대한 모든 것이다. 그는 “흑모것은 대학가가 있는 지역 커뮤니티가 출발이기 때문에 중앙대생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는 최대한 배제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실제 이 공간서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들은 중앙대생 뿐만 아니다. 작년 말 송년회를 하자고 제안한 뒤 <흑석커 수다떨다>라는 제목으로 오프라인 ‘번개’를 열었더니 모인 사람들의 절반이 흑석동에서 태어나서 자랐거나 일하는 사람들, 인접한 숭실대학교 학생들이었다. “공통의 요소라고는 흑석동이라는 지역 말고는 아무것도 겹치는 것 없는 사람들이 모여 밤새 이야기꽃을 피우며 신나게 놀았죠.”
그렇게 인연을 맺게 된 사람 중 하나가 아이디어를 내 ‘플리마켓’도 열었다. 여기서 얻은 수익금은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흑석동 자원봉사자들에게 지원했다. 내친김에 페이스북 페이지와 별도로 ‘흑석동 문화만들기’ 라는 자매 페이지도 개설했다. 해당 페이지를 통해 플리마켓 뿐 아니라 인디음악회를 준비하는등 흑석동의 새로운 문화를 앞장서 만들어가고 있다. 차 씨는 “서울시마을공동체 담당자가 흥미롭다고 연락해와서 만나 연계 사업에 대한 논의를 했다”며 “흑모것 페이지를 어떻게 건강한 지역 커뮤니티로 발전시킬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이처럼 일이 계속 커지면서 취업준비생인 차 씨가 혼자 꾸리기엔 힘에 부치게 됐다. 차씨는 지난 3월 말 페이스북에 ‘같이 만들어가실 분을 찾는다’는 글을 올렸고, 곧장 20명 가량이 모였다. 중대생은 물론 회사원, 중고등학생도 있었다. “지금은 필진들과 정기적으로 모여 어떤 콘텐츠를 만들어 올리 것인지 상의하고 있어요. 또 흑석동을 직접 변화시킬 수 있는 프로젝트, 예를 들어 신호등이 없는 흑석동에 안전을 디자인적으로 제안할 방법이 없을까 같은 것들을 구상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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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체계적으로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한 운영 원칙도 세웠다. 흑석동에서의 사랑과 일에 대해서 쓰는 필자, 흑석동의 건축물이나 조경에 대해서 쓰는 필자 등 역할을 나눈 것이다. 흑석동 중소 상공인들의 홍보도우미를 자처하고 있기도 하다. 차 씨는 “흑석동이 대학가에 의존한 상권이다 보니 학생들이 없는 방학 때에는 어려움을 겪는 가게들이 많은데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발행 가능한 쿠폰 등으로 실질적 도움을 제공한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흑모것’의 콘텐츠 중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은 기록은 13만건이다. 최고 공유횟수는 1천984번, 페이지 도달 사용자수는 64만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