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베이거스(미국)=김우용 기자]EMC월드2013 컨퍼런스가 열리고 있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한 호텔에 붉은색 강철슈트를 입은 사람이 출몰하고 있다. 얼핏 보면 아이언맨같다. 그러나 아크원자로가 자리한 그의 가슴엔 자물쇠가 하나 더 덧붙여있다. 아이언맨 같아보이는 이 사람의 이름은 ‘닥터 록인(Dr. Lock-In)’이다.
6일 미국에서 개막한 EMC월드2013에서 EMC는 올해 행사의 테마를 슈퍼히어로로 삼았다. 정장을 입은 사람이 슈퍼맨처럼 와이셔츠 가슴팍을 뜯어내고, 그속엔 S자 대신 EMC란 글자를 인쇄한 슈트가 있다.
EMC 슈트를 입은 이 영웅의 이름은 ‘바이퍼’다. 바이퍼의 적은 ‘닥터 록인’이다. 아이언맨과 흡사하게 생긴 이 악당은 기업의 IT환경을 하나의 벤더에 종속시키려 시도한다.
EMC의 소프트웨어정의스토리지(SDS) 플랫폼인 ‘바이퍼’는 스토리지 제조사나 파일, 블록, 오브젝트 등 다양한 유형의 스토리지 환경을 통합관리할 수 있게 하는 걸 모토로 한다.
슈퍼히어로 바이퍼와 악당 닥터록인의 대결은 벤더 종속에 시달리는 고객을 개방형 스토리지 관리플랫폼 바이퍼가 수준높은 기술력으로 구출한다는 것을 희화로 풀어낸다.
닥터 록인은 EMC월드의 기조연설장에도 출몰해 훼방을 놓으려 했다. 6일 데이비드 굴든 EMC 최고운영책임자(COO)의 기조연설 중 닥터록인은 기기 간 데이터 동기화 기술 ‘싱크플리시티’를 시연하던 EMC 직원의 아이패드를 가로채 도망친다.
PC의 파일을 어느 기기에서든 동기화해 이용하도록 하는 기술인 싱크플리시티는 동시에 원격에서 기기에 동기화된 데이터를 삭제할 수 있다. 기업의 데이터가 디바이스 분실이나 유출로 인해 외부인에 노출되는 것을 방지해주는 것이다.
닥터 록인이 아이패드를 빼앗아 달아나자, 시연을 하던 직원은 당황하면서도 싱크플리시티의 기능을 이용해 도둑맞은 아이패드 내 데이터를 삭제한다. 닥터 록인은 기밀을 빼앗았다고 좋아하다가, 이내 아이패드에서 데이터가 사라진 것을 알고 좌절하며 사라진다.
아이언맨을 쏙 빼닮은 닥터 록인이 눈길을 끄는 건 행동이 우스꽝스러워서가 아니다. 닥터 록인이 오라클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이다.
영화 아이언맨은 오라클이 주요 스폰서로 참여한 것으로 유명하다. 오라클은 IT업계에서 유별날 정도로 아이언맨을 감각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 아이언맨을 풍자한 닥터 록인은 사실상 오라클을 악당으로 몰아가기 위한 EMC의 계산이란 추정을 하게 한다.
EMC는 관계형데이터베이스(DB)로 2000년대까지 IT를 지배했던 오라클에 대해 은연중에 악역의 이미지를 덧씌우고 있다. 정형데이터보다 5배 많은 비정형 데이터를 처리하는데 오라클DB는 한계를 드러냈으며, 폐쇄적이고 수직계열화된 오라클 환경은 미래에 적합하지 않다고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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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EMC는 개방적이고, 수평적이며, 고객을 구하는, 혹은 고객을 영웅으로 만들어주는 이미지로 포장한다. EMC로고가 가슴에 그려지고, 푸르게 빛나는 슈트를 입으면, 누구든 슈퍼히어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 마케팅 담당자 중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다는 제레미 버튼 EMC 최고마케팅책임자(CMO) 휘하 조직다운 발상이다.
그렇다고, EMC 슈트만 입으면 모두 영웅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EMC도 오라클 못지 않게 벤더 종속의 대명사로 공격받아왔기 때문이다. EMC의 마케팅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판단은 실제 EMC 솔루션을 구매해 사용하는 기업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