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인들이 주축이 된 협동조합이 국내선 처음 설립됐다. '전자출판협동조합'이다. 워크샵을 겸한 창립총회가 지난달 22일 열렸다. 1차 회원사는 57개. 시작을 알리는 출범식은 오는 3월에 열린다.
초대 이사장은 박영만 프리윌 대표가 맡았다. 박 대표는 조합원들이 아직은 영세하고 미숙하다면서 공동체를 통해 다들 꿈을 펼치고 역량있는 업체로 발전하길 바란다고 조합 설립 취지를 밝혔다.
전자책은 쉽게 말해, PC나 스마트폰, 태블릿에서 볼 수 있게 만든 도서다. 원고만 있으면 비교적 쉽게 누구나 출판할 수 있다. 스마트폰 시대, 콘텐츠 활성화의 기대주로 전자책이 주목받았다. 음악, 영화, 게임을 통튼 것보다 도서 시장이 크다는 것도 전자책 시장을 달게 보는 이유였다.
막상 전자책 시장이 열리니 상황은 달랐다. 전자책은 장르 소설, 아니면 기존 종이책의 전자출판 정도로 여겨졌다. '문단의 벽'에 막혀 숨어있던 옥고들이 출판될 것이란 기대는 현실화되지 않았다. 대형 출판사와 유통망에 의존하는 한, 전자책은 기존 종이책 시장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커졌다.
이 때문이다. 전자책 시장서 협동조합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은. 출판협동조합은 도서 시장을 보는 불편한 눈에서 시작됐다. 힘의 논리가 전자책 시장에 그대로 적용되면, 신진 작가 배출과 소규모 출판사 육성이란 새로운 도서 시장의 실험은 성공하기 역부족이다.
협동조합 일원인 조윤정 블루문파크 대표는 대형 출판사, 유통업체의 힘에 의해 콘텐츠 판매가 결정되는 구조가 전자책에도 재판되는 것 같았다며 좋은 콘텐츠를 재발견하고 끊임없이 재생산·판매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직 낯설지만 협동조합은 대기업 중심 산업 구조를 바꿀 대안으로 여겨진다. 박근혜 정부도 연초 일자리 창출과 복지 저변 확대를 위한 '협동조합'을 육성하겠다고 발표했다. 구성원들이 주축이 돼 하나의 산업 생태계를 만드는 것은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전자출판협동조합은 이같은 대의를 내부 조직구성에 녹였다. 조합을 ▲대외협력 ▲홍보마케팅 ▲유통사업 ▲재능나눔사업 ▲글로벌사업 ▲교육 등 6개 분과로 나누고 모든 조합원이 이중 한 곳에 속하도록 했다. 조합에는 단순히 돈만 낸다고 참여할 수 있는게 아니라, 구성원의 협력이 중요하다는 설립의의 때문이다.
자생적으로 출판 생태계를 꾸리기 위한 구체적 계획도 내놨다. 물론 분과를 바탕으로 해서다. 조합에는 출판사나 작가만 소속된게 아니다. 유페이퍼나 성도솔루윈같은 유통업체도 포함됐다. 갖고 있는 자원을 바탕으로 콘텐츠 생산과 유통을 해결할 수 있는 공동전자책플랫폼을 구축한다.
글로벌사업팀에선 번역지원을 한다. 국내서 생산된 질좋은 콘텐츠를 각국 언어로 번역, 아마존 킨들스토어나 애플 아이튠즈를 통해 판매한다는 방침이다. 글로벌 도서시장 진출은 국내 전자책 업계의 소원사업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선 전자출판협동조합에 속한 출판사들이 공동 브랜들도 만들 계획이다. 브랜드 이름은 '이북 쿱 터치'. 개별 출판사들 규모는 영세하고, 출판 도서 수는 적을 수 있으나 이들이 합치면 대형 출판사만큼의 힘을 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출자금의 3배 이상 수익이 날 경우 이익을 조합원끼리 나누게 되지만, 이중 일부는 지역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야무진 꿈도 세웠다. 저소득층이나 노인, 장애인 등 소외계층을 위한 단말기 지원 사업, 콘텐츠 제공 사업 등은 전자책 업계가 할 수 있는 사회사업의 하나다.
관련기사
- 교보문고 "전자책도 휴대폰처럼 월정액으로"2013.03.04
- 한림대, 첫 '전자책' 전공 개설2013.03.04
- T스토어, 전자책 거래액 100억 돌파2013.03.04
- 일산에 '전자책 밸리' 생긴다2013.03.04
크게는 노인과 청년 일자리 창출도 전자책 시장에서 일부분 해결할 수 있다는 비전이다. 지난 연말 기준, 국내 설립된 출판사는 총 4만여개. 상당수가 1인 출판사로 이뤄졌다. 기존 종이책 출판사에서 퇴직한 전문가들도 전자책을 펴내는 출판사를 설립 중이다.
조 대표는 협동조합이 힘을 받으면 구성원들이 경기 침체에도 다같이 살 수 있는 상생 모델을 만들 수 있다며 신성장동력인 전자출판 전문 인력 양성해 청년과 은퇴자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