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제조사 델이 마이클 델 회장과 사모펀드 실버레이크에 매각돼 비공개회사로 전환했다. 더이상 분기실적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지만, 자산을 담보로 매수자금을 조달했기 때문에 빚은 늘고 유동성은 줄었을 것으로 인식된다.
미국 지디넷은 14% 지분으로 회장 자리를 유지한 마이클 델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주목할 10대 요소를 지목했다. 지분인수에 가담한 실버레이크와의 관계, 투자에 발을 들인 MS와의 관계, PC사업과 기업용 하드웨어 시장에 대한 전략 등이다.
사실 제기된 몇몇 리스크에 대한 대비책을 다른 외신 보도를 통해 엿볼 수 있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델 내부 관계자를 통해 회사의 상장폐지검토 내막을 전했다.
그에 따르면 회사 주식 매입자금 240억달러중 실버레이크와 델 회장이 170억달러를 냈는데, 그중 150억달러는 금융권을 통한 차입매수(LBO)로 확보했고 나머지 20억달러는 알려진대로 MS가 도왔다. 여전히 델에는 150억달러에 달하는 현금이 남았다. 당분간 실적 눈치를 보지 않으면서 기업인수를 지속할 가능성도 있다.
더불어 델이 흔히 사업부 조정과 감원으로 이어지는 비공개기업 전환 수순을 따르지 않을 수도 있다. 당초 계획에 따르면 델은 유한회사 전환 이후 구조조정을 안 할 셈이었다. 감원과 사업부 매각을 않기로 했다는 얘기다. 가격경쟁력 확보로 전문 솔루션 제공업체로 혁신한다는 구상이다.
■델의 변신을 위한 '실탄'과 투자자 지분 관계
업계의 첫째 관심사는 델 회장과 실버레이크의 협력관계가 계속 돈독할 수 있을지다. 델 회장은 14% 지분을 개인소유했는데 사모펀드 실버레이크 지분이 우호지분이라 50% 이상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비공개 회사로서 '필요할 때 보여주고 싶은 실적만 자랑'할 수는 있겠지만, 상장사일 때 눈치를 봐야 했던 애널리스트와 주주들보다 실버레이크와 함께 지내기가 마냥 편안할 지는 두고볼 일이다.
둘째는 빚더미에 올라 당장 운신의 폭이 줄어든 회사의 이후 향배다. 외신은 MS가 매입자금 일부를 댄 방식에 주목한다. 델은 이전보다 더 유동성을 잃었고 비공개 회사로 전환된 결과도 온전한 소유가 아니라 지분비율에 따라 나뉜 역학관계를 신경쓸 처지다. 대출을 끼고 사는 일반인들과 마찬가지로 델이 진 빚은 회사의 선택지를 제약할 것이란 전망이다.
셋째로 델이 기업인수를 계속할지 관건이다. 지난해부터 PC 제조사에서 기업 솔루션 업체로 변신을 위한 역량 확보에 나섰는데, 더이상 투입할 현금이 없지 않느냔 지적이다. 돈이 있어도 지분관계상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을 거란 지적도 있다. 회사는 지난해 2월 소닉월, 3월 앱어슈어, 4월 와이즈테크놀로지, 클레리티솔루션, 메이크테크놀로지스, 7월 퀘스트소프트웨어를 샀다. 이를 연계시 백업, 보안, 가상데스크톱환경(VDI), 리호스팅 등 클라우드 컴퓨팅 도입을 가속할 수 있다.
넷째로 델이 이미 사들인 회사의 역량으로 '변신'하기 위한 진통이 얼마나 오래 갈지, 실버레이크와 투자자들이 그 기간을 순순히 기다려줄 것인지 주목된다.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 부문 역량을 활용해 성과를 내면서도 성격이 확연히 다른 PC제조 업체로서의 경쟁력도 당장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레노버에 PC사업을 넘긴 IBM의 전례로 볼 때 금세 이뤄지긴 어렵다는 평가다.
■기업 솔루션 업체로의 변신에 따른 파트너-경쟁구도 변화
델의 변화를 지켜본 고객들이 여전히 회사와 거래를 이어갈 것인지가 다섯째 우려되는 부분이다. 델이 세일즈와 지원사업 담당조직을 재편할 가능성 때문이다. 사업 재구성과 구조조정은 비공개전환 기업의 일반적인 수순이다. 이는 몇년간 특정 고객들을 담당해온 매니저들이 더이상 기존 업무에 남아있지 못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고객과 새로운 관계를 쌓아야 하는데, 이는 경쟁사들이 노리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여섯째는 엔터프라이즈 하드웨어 시장에서 경쟁사들이 어떻게 반응할지다. 델이 비공개회사로 전환하면서 기업시장에 대한 공세를 암시함에 따라 IBM이나 HP같은 회사에겐 불확실성이 커진 셈이다. 미국 지디넷은 델이 그들을 향한 공세를 취할 것인지 지켜보는 게 흥미로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례로 HP는 성명을 통해 델의 불확실한 과도기가 늘어날 것이라며 그 신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투자능력이 제한되고 고객이 떠날 것이며 우리는 그 기회를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일곱째는 과연 투자자 MS와 델이 어떤 관계로 나아갈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사실 MS가 20억달러를 투자하긴 했지만 델의 주식을 산 건 아니다. MS에게 무슨 득이 될 것인지 선뜻 감이 오지 않는다. 단기적인 해석은 MS에게 필요한 하드웨어 제조 역량을 델이 제공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하지만 달리 볼 때 MS의 다른 하드웨어 제조사들이 델과의 관계를 거슬려할 수도 있다. 그 균형을 깨뜨리는 것은 MS에게 현명치 못한 처세로 묘사된다.
■PC와 모바일, 투자냐 철수냐
나머지 가운데 2가지 관전포인트는 델의 소비자시장에 대한 향배다.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따르면 델은 PC를 클라우드와 보안서비스 일부로 수요가 증가할 것이란 관측에 기대를 걸었다. PC사업부를 살리는 방향으로 검토한 것이다. 이는 IBM이 레노버에 PC사업을 넘기고 기업시장에도 하드웨어보단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강조하는 것과 다른 길이다.
여덟째 관건은 델이 소비자시장에서 PC사업을 지속할 것인지 여부다. 주식회사가 아닌 이상 특정 사업을 버리든 살리든 바라는 대로 할 수 있는 상황이다. 물론 당장 매출을 만들어주고 있는 게 PC사업부라서 금방 무슨 일이 일어나진 않을 듯하다. 문제는 현재 그 영업이익이 손익분기점을 간신히 넘길 정도까지 떨어졌다는 사실이다.
아홉째 의문도 소비자시장에서의 향배에 관련된다. 태블릿과 스마트폰 사업을 전개할것인지다. 이는 델이 주식회사일 때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을 뿐아니라, 비공개전환 이후에도 별다를 게 없는 분야다. 별도 조치가 없는 한 갑자기 델이 모바일기기에서 경쟁력을 살리긴 어려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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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와 서버용 OS를 모두 공급하는 MS 전략과는 제법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다. MS가 자체 태블릿을 만들면서 기존 제조사들과 소비자시장에서의 협력을 지속할 뜻을 밝혔기에 가능성은 남아 있다. 다만 델이 서투른 모바일기기 역량을 끌어올릴만큼 자극을 받을지는 미지수다. MS의 윈도PC와 윈도 태블릿은 여전히 업계 관심만큼 시장을 장악하진 못하고 있다.
한편 마지막 지적사항으로, 좀 흐리멍텅했던 델의 '말주변'이 나아져야 한다는 진단이 있다. 델이 주식회사일 때 내놨던 사업방향 메시지나 마케팅 방식은 혼란스러웠다는 평가다. 이는 역시 부진한 단기 실적에 변명하면서 장기적인 비전을 통해 시장을 설득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제 델이 주주들의 레이더망을 벗어나 개인과 기업 소비자들에게 더 정교해진 메시지를 던질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