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구코너]하늘을 나는 그림...TV의 발명⑫말라가는 자금

일반입력 :2013/02/08 06:00    수정: 2013/02/09 14:44

이재구 기자

14■ 말라가는 연구자금...“6만달러나 들었네”

마친내 판즈워스는 13세때 자신의 머릿속에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던 생각을 실제 작동되는 발명품으로 만들어냈다.

이후 20년간 전세계의 그 어느 누구도 그가 느꼈을 그 엄청나고도 짜릿한 발명의 순간을 경험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환호의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연구소수준의 취약한 발명을 사람들의 거실로 이끌어 들일 제품으로 만들려면 여전히 할 일이 많았다.

그의 발명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샌프란시스코 그린스트리트 202번지의 판즈워스연구소로 전화를 걸어 사실여부를 확인하고 싶어했다. 일부 투자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랩 갱들이 만든 뭔가에 어떤 일이라도 발생했는지 알고 싶어했다. 그러나 후원자들조차도 조지 에버슨의 목격담을 통해서만 판즈워스가 ‘믿을 만한 전자식TV 실험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을 뿐이었다.

그의 발명품은 제품 성능향상 실험을 위해 끊임없이 해체되었다가 조립되고 했다. 부품들은 실험실 곳곳에 흩뿌려지듯 널려져 있기 일쑤였다. 분해돼 책상위에 너저분하게 뒹굴고 있는 장비옆엔 어김없이 ‘일시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음’이란 메모가 따라 붙었다.

이처럼 발명품이 분해되 있기 일쑤이다 보니 시연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판즈워스와 클리프 가드너, 그리고 연구소의 연구원들은 시간을 물쓰듯이 써가며 수십번씩 이 동영상시스템을 기본적 시스템으로 다듬어가려고 애쓰고 있었다.

“최소한 초당 400프레임은 돼야 해.”

판즈워스는 TV화면의 화상을 보다 선명하게 만들기 위해 주사선 늘리기 연구에 몰두했다. 영국의 기계식 TV 선구자 로기 베어드가 만든 기계식 TV의 주사선이 기껏해야 프레임당 50라인에 불과한 상황에서 세워진 목표였다.

판즈워스는 지속해서 십자가나 트라이앵글 모양의 기하학적 모습을 사용해 자신의 TV전송이 잘 되는지 여부에 대한 실험을 거듭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다. TV 수신기의 주사선화면을 보던 판즈워스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화면에서 연기같은 모습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그는 연구소가 불길에 휩싸였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클리프 가드너가 담배를 들고서는 카메라 앞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모습이 보였다. 판즈워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그가 손을 흔드는 패턴을 주의깊게 관찰했다.

그는 분명 담배연기가 예민하게 소용돌이 치는 순간을 투영해 내는 화면을 보고 있었다. 이젠 TV화면이 담배연기까지도 잡아내는 수준까지 선명도가 향상된 것이었다. 엄청난 발전이었다.

반면 연구비용은 늘어나면서 돈줄은 말라가기 시작했다.

1928년 봄, 로이 비숍은 조지 에버슨을 자신의 사무실로 호출해 말했다.

“조지, 그동안 텔레비전 개발에 든 돈이 원래 사용키로 했던 자금 상한선의 2배를 넘기고 있다네. 지금까지 든 돈이 거의 6만달러에 이른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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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그가 생각했던 연구비용의 12배에 달하는 자금이 들어간 것이었다. 연구는 아직도 갈길이 멀었다. 판즈워스의 TV연구를 후원하기로 계약한 크로커그룹의 사람들은 자신의 지분비율에 따라 연구비를 지원해 주고 있었다. 판즈워스는 이들 가운데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진 개인지분 소유자였고 개인적으로는 외부 현금후원자를 거의 확보하지 못했다. 따라서 대다수 신규 투자자들에게 판즈워스의 주식이 팔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불행하게도 예상을 엄청나게 초과한 연구자금을 지출했지만 돈은 여전히 부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