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이 VIP마케팅 밖에 못하는 이유

빅데이터 활용할 고객 DB 없어...

일반입력 :2013/01/14 11:41    수정: 2013/01/15 08:14

온라인 쇼핑몰의 성공을 이끌었던 ‘롱테일의 법칙’이 더 강해질 조짐을 보인다. 저가 제품부터 명품까지 소비자별로 전보다 더욱 세밀하게 접근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고객 데이터를 수집해 적합한 제품을 제안할 수 있게 해주는 ‘빅데이터’가 있어서다.

이런 가운데 오프라인 유통시장의 오랜 터주대감이었던 백화점들은 소비자 맞춤형 마케팅 활용에 어려움을 겪는 모습이다. 백화점의 고객 유치 방안은 예나 지금이나 소비자 성향을 감안하지 않은 무분별한 판촉우편물 발송과 VIP 마케팅뿐이다. 백화점에게 빅데이터와 최신 IT기술을 활용한 마케팅 고도화는 언감생심이다.

온라인 쇼핑몰은 그동안 백화점과 경쟁상대로 보기 어려웠다. 기본적으로 온라인 쇼핑몰과 백화점의 시장이 달랐고 사업전략도 달랐던 탓이다. 기술의 발달로 온라인 쇼핑몰의 고객층 접근이 다양해지면서 두 영역은 고객층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 국내 백화점의 빅데이터 활용은 현재로선 사실상 불가능하다. 고객과 관련한 빅데이터 자체가 백화점 수중에 없기 때문이다. 분석할 데이터가 마땅치 않은 현실은 백화점의 VIP 대상 마케팅만 강화하게 만들고 있다.

■이원화된 백화점 IT시스템

백화점이 분석할 만한 빅데이터를 갖지 못한 이유는 현재 관련업계서 운영되는 IT시스템 때문이다. 이들 IT시스템이 고객 관련 데이터를 전혀 수집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통사업자에게 유용한 빅데이터는 고객과 구매상품에 대한 정보다. 매장에서 판매되는 상품의 실제 구매자 면면을 대규모로 확보해 분석하면, 더 세밀한 마케팅 접근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국내 백화점은 각 입점 매장의 점포판매시스템(POS)으로 결제되는 데이터 가운데 실 구매액수만 수집한다. 매장의 재고관리시스템과 고객결제시스템은 매장 운영회사에 연결되고, 백화점은 입점 매장의 총 매출액과 제품별 마진만 관리한다. 실제 매장운영시스템과 백화점의 운영시스템이 이원화된 구조다.

예를 들어, 남성용 정장 점포에서 A라는 40만원짜리 양복 한 벌이 판매된 경우를 보자. 소비자의 카드를 POS로 결제하면, A 양복을 구매한 소비자의 카드결제정보와 재고관리 데이터는 이 점포의 본사로 전송된다. 백화점엔 40만원이란 판매액과 해당 상품의 마진만 전달된다.

백화점은 그동안 입점 매장의 전체 매출액과 이익률만 파악하고 관리해왔다. 어떤 매장이, 어떤 상품을, 얼마나 판매하고 있는가에 대해선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재고관리는 전적으로 입점 매장의 몫이다. 백화점 측이 막상 빅데이터 분석을 하려해도 세부적인 판매 데이터가 전혀 없는 것이다.

백화점의 빅데이터 분석을 가로막는 장애요인은 POS외에 또 있다. 백화점에서 판매되는 각 상품에 부여된 식별코드 문제다.

제품식별코드는 기본적으로 가격과 마진정보를 담는다. 결제 시 상품의 재고와 마진이 자동으로 계산되도록 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백화점 측이 매출총액만 관리하는 환경에선 식별코드 운영이 투명하지 않다.

가령 5만원으로 가격과 마진이 같은 지갑과 벨트가 있다고 가정하자. 매장 점원이 지갑을 판매하면서 벨트의 바코드를 읽혀도 백화점 측에 전달되는 판매액과 마진은 동일하다. 실재고와 시스템 재고 사이의 불일치를 해소하기 위해 이런 변칙적인 재고 운영이 빈번히 일어난다.

만약 백화점이 POS를 통해 매장의 자세한 판매정보를 확보한다고 해도 현실에서 벌어지는 변칙적인 운영이 의미있는 데이터 축적을 가로막는 것이다.

백화점마다 제각각 운영되는 식별코드도 문제다. 상품 제조사는 롯데 백화점과 신세계 백화점, 현대 백화점 등 모든 곳에서 점포를 운영할 경우 3종류의 식별코드를 운영해야 하는 상황이다. 점포 운영사는 결국 백화점과 별도의 식별코드를 갖고, 원활한 재고 관리를 위해 백화점과 이원화된 재고관리시스템을 운영할 수밖에 없다.

한 유통IT전문업체의 관계자는 “국내 백화점이 빅데이터를 활용하려면, 현재 운영중인 POS 시스템과 점포관리방식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라며 “백화점업계의 빅데이터 도입은 당장 이뤄지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VIP에 매달리는 백화점, VIP도 접근하는 온라인

백화점이 고객의 데이터와 구매상품 데이터를 함께 확보하는 방법이 없진 않다. 바로 멤버십제도다. 멤버십 제도는 미국의 월마트의 사례가 가장 성공적이다. 월마트는 멤버십 제도를 운영해 소비자 정보를 확보하고, 데이터분석을 통해 세밀한 마케팅을 벌여 성공을 거뒀다.

현재 국내의 백화점 모두 멤버십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가입 회원에게 마일리지 적립과 할인쿠폰 같은 특정 혜택을 제공하고, 그때그때 판촉물을 전송해 매장방문을 유도하는 형태다.

당연히 백화점 멤버십 회원의 수는 전체 매장 이용 소비자의 수에 훨씬 못 미친다. 빅데이터는 기본적으로 관련된 모든 데이터를 분석한다는 철학을 바탕에 둔다. 정해진 데이터 형태와 한정된 고객에서 이뤄지는 분석은 이미 백화점에 구축된 데이터웨어하우스(DW)와 비즈니스 애널리틱스(BI)일 뿐이다.

결과적으로 특정 VIP에 대한 마케팅과 투박한 고객층 분류에 기반한 두툼한 판촉물 발송 외에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은 불가능하다.

반면, 온라인 쇼핑몰의 빅데이터 활용 시 벌어지는 마케팅은 실시간 맞춤형으로 진화한다.

소비자들은 온라인 쇼핑몰 방문 시 카테고리나 검색창 입력을 통해 원하는 상품을 찾아낸다. 결제할 경우 대부분 로그인을 하며, 원하는 상품을 향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찾아간다.

이 때 다양한 마케팅 기법이 동원된다. 검색창에 기저귀를 쳤을 때 맥주 상품정보를 함께 띄우면 맥주의 매출이 늘어난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오랜 데이터 축적과 분석으로 아기를 가진 성인남성이 기저귀를 살 때 맥주도 함께 결제할 확률이 높다는 결론을 얻어낸 것이다.

이처럼 고객이 어떤 상품을 원할 때 연관된 상품을 제시하거나, 2차, 3차의 추가적인 구매를 유도하는 방안이 데이터 분석을 통해 마련된다.

그런데 빅데이터 시스템을 구축, 운영하고 데이터 축적과정을 오랜 시간 거치면 실시간으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빅데이터 시스템이 소비자의 검색창이나 카테고리 클릭을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분석을 거쳐 정책적으로 그에 대한 관련정보를 보여주는 형태다.

온라인 쇼핑몰이 소비자의 카드결제 정보를 세부적으로 알 필요도 없다. 검색과 카테고리 접근의 행태, 결제 등의 과정을 로그 데이터를 통해 분석하면, 소비수준이나 소득 수준을 파악할 수 있다. 로그인을 거친 후 이뤄진 과정이라면, 고객 데이터의 정확도는 더 높아진다.

관련기사

이는 온라인 쇼핑몰의 롱테일 전략을 한층 강화시켜 매출을 높이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국내 빅데이터 전문가는 “빅데이터 분석기술이 성숙하면 실제 니즈를 정확히 충족시키고, 추가구매를 더 많이 유도할 수 있는 다양한 추천 알고리즘이 개발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