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N·SDD..."HW가 사라진다"

일반입력 :2012/12/12 14:14    수정: 2012/12/12 15:19

컴퓨팅을 주름잡았던 하드웨어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점차 하드웨어는 사람의 시선 너머로, 그리고 머리 속에서 사라진다. 소프트웨어 정의의 시대.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패러다임이 이동하고 있다.

세계 굴지의 IT업체는 하드웨어로 지금의 위치에 올랐다. HP, 델, IBM, 시스코 같은 세계적인 회사들이 PC, 메인프레임, 서버, 네트워크 등을 수조원대로 팔아치우며 거물로 성장했다. 그러나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서 이들은 정체성 위기를 겪는 듯 보인다.

레거시. 자신들이 온힘을 기울여 구축해놓은 과거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과거의 영웅은 레거시를 지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IT업계에 패러다임 교체를 거치며 완전히 변신해 옛 지위를 유지한 회사는 전무하다. 새로운 IT의 시대, 사람들의 머리 속에 각인된 옛 IT거물들은 모두 사라질 지 모른다.

■SDN에서 SDD로 ‘소프트웨어 정의 XXX’

올해 국내외를 막론하고 가장 폭발적인 관심을 끈 화두는 ‘소프트웨어정의네트워크(SDN)’다. 하드웨어 종속성이 어느 분야보다 강력했던 네트워크 솔루션 시장이 소프트웨어로 재편될 조짐을 보인 것이다.

네트워크란 제한된 시장 안에서 조용히 세를 불리던 SDN은 가상화 솔루션업체 VM웨어의 전격적인 행보에 그 힘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SDN은 VM웨어에 의해 ‘소프트웨어정의데이터센터(SDD)’로 격상됐다.

서버부터, 스토리지, 네트워크까지 모든 IT 인프라를 소프트웨어로 정의내린다는 SDD는 기술 측면보다 거대한 사상으로 의미를 갖는다. IT관리자는 자리에 앉아 가상으로 만들어진 데이터센터를 주무른다. 개발자는 게임을 개발하기 위한 IT자원을 웹포털에서 클릭 몇 번으로 신청해 바로 사용하지만, 관리자는 그에 따라 어떤 하드웨어 작업을 하지 않아도 된다.

SDN의 힘은 IT 자동화를 온전히 실현하자는 꿈을 제시한다는 데 있다. 그동안 IT솔루션업체들이 클라우드와 가상화를 말하며 자동화의 실현을 줄기차게 외쳤지만, 실제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네트워크는 지금도 사람이 장비를 만져야 하는 분야로 남아 있다.

SDN이 세계 어느나라보다 가장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이유는 서버 가상화란 단계를 이미 지나쳤기 때문이다. 서버부터 시작된 가상화는 스토리지단계까지 상당 수준을 끌어안았다. 가상화가 주는 자동화의 편의성도 많이 보급된 상태다. 미국의 기업들에게 데이터센터 자동화의 미개척지는 네트워크뿐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SDN이란 특정 영역에 대한 접근법이 통했다.

미국을 제외한 세계의 대다수 국가들은 여전히 서버조차 자동화를 이루지 못한 상에 머물러 있다. 그런 상황에서 SDN이란 단어는 도입이유를 이해할 수 없게 한다. 그러던 세계 각국의 눈앞에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논스톱으로 자동화하자는 ‘SDD'가 올해 8월 등장한 것이다.

사람들은 SDD 이후 어떤 하드웨어를 쓰는 지 더는 관심을 갖지 않게 된다. 고가, 고성능의 하드웨어에 투자하던 기업들은 소프트웨어와 솔루션 자체에 더 많은 돈을 들인다.

■하드웨어의 존재에 대한 인식이 사라진다

단순히 하드웨어 자체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사람들의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더 깊숙한 곳, 더 어두운 곳으로 들어간다. 이는 하드웨어에 대한 의식을 지우고, 존재의 중요성을 지운다.

가상데스크톱인프라(VDI) 시대, PC를 사용하는 사람 앞의 단말기는 깡통이다. 그 PC는 하드디스크도 없고, 낮은 사양의 CPU와 메모리만 갖고 있다. 모든 데이터 처리와 저장은 구름 속의 거대한 가상 데이터센터에서 이뤄진다. 네트워크와 전송기술이 발전하면, 옛날의 PC에서 느꼈던 빠른 속도를 VDI서도 그대로 느끼게 된다. 자신이 PC를 쓰는지, VDI를 쓰는지 감각도 무뎌진다.

IT관리자 중 대다수가 하드웨어를 직접 볼 일이 사라진다. 서버 한 대가 죽어도 자동으로 백업 서버가 가동된다. IT관리자 중 일부가 후속조치로 부품을 교체하면 된다. 국내도 이런 상황이 어느정도 실현된 상황이다.

KT의 퍼블릭 클라우드인 유클라우드는 서버, 스토리지 인프라가 이중화됐을 뿐 아니라, 자동으로 장애를 인지해 대체품을 가동한다. KT의 한 임원은 “현재 유클라우드의 가장 많은 업무는 관리자가 돌아다니면서 서버 디스크에 들어온 불빛을 보고, 장애난 디스크를 빼내 교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구글, 페이스북 같은 회사는 이 수준이 더 높으며, 네이버나 다음도 높은 수준의 자동화를 보인다.

만약 규모가 큰 장애의 경우 사전에 관리자에게 알림을 보내고, 사전조치를 취하게 한다. 대부분 코드 상 문제인 경우가 많아 조치 작업도 SW로 이뤄진다.

서버, 스토리지, 네트워크 회사들은 지금 진땀을 흘려가며 변화에 대응하려 움직인다. 하드웨어 매출감소를 겪은 IBM, HP, 델 등은 자체적인 클라우드 서비스를 내놨고, 매니지드 서비스를 통해 서비스프로바이더의 아웃소싱을 따내려 혈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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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환경에서 PC보다 스마트폰과 태블릿이 급격히 대세로 자리잡는 추세다. 인텔은 PC 프로세서 매출 감소에 모바일을 준비하지 않은 자책에 시달린다. 기실 인텔의 하드웨어를 발판삼아 성장한 마이크로소프트(MS)조차 ‘소프트웨어 정의’ 트렌드에 뒤늦게 대응하기 시작했다.

IT를 활용하는 주체는 하드웨어를 신경쓰지 않는 시대, IT업체가 주의할 건 따로 있다. 시스코의 존 챔버스는 SW 중심의 사업을 강조하면서도, 하드웨어가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라고 역설한다. 그는 향후 5년 안에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반도체 기술을 모두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용자가 하드웨어를 신경쓰지 않더라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긴밀하게 결합해야 ‘하드웨어에 무심한’ 사용자를 지원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