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하반기 반도체 시장의 최대 관전포인트는 삼성전자-애플 간 모바일 부품공급을 둘러싼 수급 헤게머니 쟁탈전이었다. 메모리 시장 최대 업체 삼성전자와 최대 수요처인 애플간의 힘겨루기는 결국 삼성전자의 몫으로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삼성전자, 도시바, SK하이닉스 등 3개사로 압축된 낸드플래시 업계에서의 공급 한계는 애플 아이폰5의 공급 물량으로 이어졌다.
이외에도 올해 반도체 업계는 ▲일본 최대 메모리 업체 엘피다 파산 ▲하이닉스의 SK 인수 ▲미세공정 한계 ▲모바일 반도체 업계의 약진 등으로 요약된다.
반도체 시장은 올해 애플, 삼성전자의 싸움에서 보여주듯 ‘승자 독식’을 그대로 보여준 한 해였다. 애플은 스마트폰에서, 삼성전자는 높은 시장 점유율을 바탕으로 자존심과 이해가 걸린 싸움을 해 낼 수 있었다.
다른 공급사들에게도 이러한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모바일 시대에 적응한 삼성전자, 퀄컴은 매출 성장세를 즐겼던 반면, AMD, 인텔 등 모바일 시대에 충분한 대비를 하지 못한 전통 PC용 CPU업체들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이는 PC 비중이 높았던 D램 업계 3위의 엘피다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삼성전자, “아무리 애플이라도…”
삼성전자, 애플 사이의 부품 갈등은 아이폰5 출시 시기인 지난 9월 수면위로 불거졌다. 아이폰5에서 아예 삼성전자가 메모리 공급을 중단했다는 내용이었다. 삼성전자가 애플의 가격 인하 압박 요구에 부품 비중을 낮춰 왔다고 알려졌지만 아이폰5에서는 아예 메모리 중단을 끊었다. 삼성전자가 아이폰5 메모리 공급을 중단하면서 애플은 새로운 스마트폰에서 물량 부족을 겪기도 했다. 마침 삼성전자, 애플의 소송 심리가 이어지던 시기라서 양사의 갈등은 극에 달하는 것으로 보였다.
애플은 삼성전자가 공급을 끊자 새롭게 샌디스크 낸드플래시를 공급받기도 하는 등 구매선 다변화에 나섰다.
메모리 뿐만이 아니다. 삼성 전자 계열사 중 삼성디스플레이도 애플 비중이 크게 낮아졌다. 삼성SDI 배터리도 애플 비중이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이후 AP 비중도 줄어들 전망이다. 새로운 파운드리 업체로는 TSMC, 인텔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일본 메모리의 자존심 엘피다 파산
삼성전자가 메모리 시장에서 애플을 향해 자존심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높은 점유율과 이를 뒷받침하는 기술력이었다. 삼성전자가 미세공정 속에 앞선 기술력으로 원가 경쟁력을 앞세우면서 해외 메모리 업체는 실적이 악화됐다.
삼성전자가 6개월 이상 앞선 미세공정 기술력과 상대적으로 가격이 높은 모바일 제품에 대한 비중을 높이는 동안 PC 비중이 높고, 가격경쟁력도 없는 해외 D램 업체는 항복을 선언했다.
지난 2월 엘피다는 결국 4천억엔 규모에 달하는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도쿄지방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엘피다 경영진은 고객사부터 경쟁사까지 자금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지만 글로벌 경기 침체로 유동성 확보가 어려웠다.
곧이어 이어진 엘피다 인수전에는 도시바, SK하이닉스, 중국 호니캐피탈, 마이크론 등이 참여했다. 결국 미국 마이크론이 엘피다를 인수하기로 했다. 양사의 합병은 내년 상반기 완료 예정이다. 일부 주주들이 반대하고 있지만 도쿄지방법원은 주주들이 투표를 통해 빨리 결정하라고 주문해 내년 상반기까지는 합병이 완료될 전망이다. ■하이닉스는 SK 인수로 날개 달아
올해 초를 달군 또 다른 인수건도 있었다. SK텔레콤의 하이닉스 인수다.
SK하이닉스는 10년만에 주인찾기에 성공하며 탈바꿈했다. 올해는 SK하이닉스가 해외 업체 인수전에도 나섰다. 이탈리아 낸드플래시 업체 아이디어플래시, 미국 콘트롤러 업체 LAMD 등이다.
SK하이닉스는 이들 업체를 인수한 뒤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로 시장을 확대하는 등 신사업 확장에도 나섰다.
SK그룹 총수인 최태원 회장의 관심도 높았다. 최 회장은 SK하이닉스 인수 후 회장직에 올라 이천, 청주, 우시까지 SK하이닉스 공장을 찾으며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SK그룹의 높은 관심 속에 SK하이닉스는 안정적인 경영환경으로 우수인재 채용 등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게 됐다고 밝혔다. 엘피다의 마이크론 인수에 대한 전망이 그리 밝지만은 않은 반면 SK텔레콤의 SK하이닉스 인수는 성장 동력의 날개를 달았다는 평가다.
■모바일·PC용 반도체 엇갈린 ‘명암’
올해 반도체 시장의 또다른 변화는 모바일에서 강세를 나타내고 있는 업체들의 대 약진이다. PC에서 강세를 나타내고 있는 업체들과 이들의 명암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삼성전자는 모바일단말기용두뇌인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칩 매출 확대와 더불어 올해 시스템반도체 업계 3위 등극이 유력하다.
올해 단연 발군의 실적을 보인 또다른 업체는 퀄컴이다. 퀄컴은 올해 29%라는 독보적인 고성장세를 나타내며 주목받았다. 이에 따라 퀄컴은 올해 반도체 업계 7위에서 3위까지 4계단이나 뛰어오를 전망이다. 삼성전자 반도체도 올해 6% 이상의 매출 성장세가 예상됐다.
반면 PC 시장 업체들은 매출 성장면에서 암운이 드리워지고 있다. AMD는 올해 20위권 업체중에 가장 높은 매출 하락률을 기록할 전망이다. 전년 대비 17% 매출 하락세가 예상됐다. 인텔 역시 올해 1~2%의 매출 하락세가 예상됐다.
이중 저가 PC 시장을 기반으로 해 타격이 더 컸던 AMD는 매출 하락세 속에 현금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인력 구조조정에 이어 오스틴 캠퍼스 매각, 글로벌파운드리와의 물량 계약 조정까지 하며 신사업을 할 수 있는 여유자금을 마련하느라 부산하다. 모바일 반도체의 부상, PC 반도체의 부진은 내년에 더욱 가속될 전망이다.
스마트폰은 내년에도 20%가 넘는 고성장세를 기록할 것으로 보이지만 PC 시장은 3% 내외의 소폭 성장에 그칠 것으로 증권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올해가 닷컴 이래 최악의 PC성장세를 기록했다는 한 통계 조사보고서가 나온 것은 이같은 PC용 CPU의 대몰락을 반영한 것이다.
■미세공정 한계 따라 ASML 투자 경쟁
이외 반도체 시장에서는 올해 미세공정의 한계에도 관심이 쏠렸다. 메모리, 시스템반도체가 10나노급으로 미세화되면서 선폭을 줄일 수 있는 극자외선(EUV) 기술을 확보한 노광장비업체에 업계의 이목이 쏠렸다. 가장 주목받은 업체는 네덜란드 업체인 ASML이었다.
장비업체 ASML에 대한 반도체 선도업체의 투자도 이어졌다. 인텔이 먼저 ASML에 4조원 이상의 투자를 발표하고 뒤이어 TSMC가 1조원 이상을 ASML에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삼성전자도 1조원 규모의 금액을 ASML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하며 이 업체에 대한 반도체 선도업체의 지분 확보에도 비상이 걸렸다.
미세공정에 대한 한계는 투자 숨고르기로 이어질 전망이다. 더 이상의 선폭 축소가 어렵다는 판단 속에 투자비는 큰 폭으로 늘어나 투자에 신중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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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투자 패러다임이 한계에 달했을 때 한꺼번에 투자를 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점진적인 방식으로 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는 지난 2007년 스마트폰이 등장한 이래 그 어느 때보다도 뜨거운 모바일 칩 대전이 벌어진 해였고 그 거대한 성장의 이면에서 윈텔 30년 성장의 그늘아래 하락을 모르던 인텔과 AMD CPU의 하락이 두드러진 한 해였다. 또한 삼성전자의 AP칩과 퀄컴 AP칩,통신칩의 약진으로 대변되는 모바일 칩 대폭발시대를 예고하는 한 해 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