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과 시민 사회는 경제 민주화를 시대의 화두로 내걸었다. 재벌에 부당하게 편중된 부를 공정하게 나누고 기업의 공적 책임을 강화하자는 주장이다. 소수의 이익에 다수의 희생이 당연시 되는 현실은 부당하다는 논리다. 그런데 이런 사회를 바라보는 IT기업의 시선은 혼란으로 가득하다.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 공공·사회적 안전망 구축, 대기업의 부당 이익 방지 등 다양한 안건이 거론되고 있다.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사업을 벌여온 IT업체들은 경제 민주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며 복잡한 심경을 토로한다. 그 사이 IT기업의 실적은 하락세다.
‘비용절감’. 기업을 고객으로 삼아온 IT업체들이 수년 동안 전면에 앞세운 단어다. 기업도 비용절감을 중심으로 IT 솔루션을 접근했다. 단순히 솔루션 구매비용을 줄인다는 차원이 아니다. IT를 통해 운영에 들어갈 제반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기대감이었다. 여기에는 인건비도 포함된다.
경제 민주화 바람에 IT 솔루션은 사회적 흐름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돌변한다.
예를 들어, 가상화와 클라우드 컴퓨팅에 대한 접근법 중 가장 먼저 주목받은 기대 효과는 비용절감이다. 기술을 잘 모르는 입장에서 서버를 덜 사도 되고, 그만큼 덜 고용해도 된다는 1차원적 설명이 이어진다.
이에 기업들은 가상화와 클라우드 도입 후 운영인력을 포함한 여러 비용요소를 줄일 수 있다고 여겼다. 효율화, 민첩성 등의 진정한 혜택을 앞에 두고도 기업의 시선은 오로지 서버 대수와 운영인력을 10%로 줄였다는 비용절감 효과에 꽂혀있다.
수많은 기업들이 가장 손쉬운 비용절감 방법으로 인건비를 생각한다. 피고용인보다 고용인의 입장을 더 많이 대변하는 한국의 경제 풍토는 IT 솔루션 업체가 비용절감을 앞세워 고객을 확보하기 좋은 환경을 마련했다.
경제 민주화가 거대한 흐름으로 자리잡으면, IT는 자칫 사회의 적으로 비춰진다. 산업혁명기 영국의 러다이트 운동처럼 IT 고도화를 전면적으로 반대하는 움직임도 예상할 수 있다.
한 외국계 IT업체의 임원은 “아직 정책적인 경제 민주화가 확정되진 않았지만, 기업들이 사회의 시선을 고려해 고용축소로 해석될 움직임을 자제하고 있다”라며 “이처럼 민감한 시기에 전처럼 IT가 비용을 줄여준다는 접근법은 사회적 지탄을 받을 수 있어 난처하다”라고 털어놨다.
존재론적 고민도 이어진다. IT기업에 종사하는 사람도 피고용인이라는 점은 같다. IT기업의 직원도 임금상승과 고용안정을 원하며 이 사회의 구성원이다. 그런데 다같이 잘 살자는 흐름과 동떨어진 IT 솔루션을 판매해야 한다.
이런 가운데 IT 솔루션 회사들의 기업시장 매출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기업이나 직원은 이제 IT를 믿지 않는다. IT로 돈을 그대로 쓰고 비난의 표적까지 되길 원하지 않는다.
IT에게도 잘못이 있다. 눈앞의 이익, 매출을 위해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깎아먹어온 그간의 행보를 반성해야 한다. 이제라도 비용절감이란 허울을 벗고 진정한 가치를 전해야 할 때다.
IT를 두고 ‘해법’이란 의미로 솔루션이라 부른다.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어려운 걸 더 쉽게 할 수 있게 해준다는 취지다. 여기서 비용절감이란 솔루션은 기업에게는 맞지만, 경제 민주화엔 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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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는 이제 새로운 해법으로 고객에게 접근해야 할 시점에 섰다. 분명 특정 개인의 이익을 위해 다수가 희생을 감내한다는 건 잘못된 일이며 바로잡아야 할 일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파생되는 조치로 발생하는 예상 밖의 피해도 최소화해야 한다.
경제 민주화란 미묘한 줄타기 속에서 해법을 제시할 때, IT가 솔루션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무형의 가치를 유형의 가치로 만들어 주는 것이 IT다. IT도 살아남고, 사회 구성원으로도 살아남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해법도 결국 IT에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