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엔지니어와 ‘주말이 있는 삶’

일반입력 :2012/10/02 20:24    수정: 2012/10/04 09:43

설, 추석 명절 등 연휴를 달력에서 살피며 긴장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달력의 빨간 숫자가 길게 이어질수록 그들의 얼굴 표정은 어둡다. 고향에 가는 것은 고사하고, 연휴 내내 쉬지 못하고 일해야 하는 상황 때문이다.

IT엔지니어들의 이야기다. 그들에게는 명절 연휴뿐 아니라 주말도 쉬는 날이 아니다. 서비스 무중단이란 회사의 요청은 IT 담당자에게 휴일 근무를 뜻한다. 이들에게 ‘연휴가 있는 삶’은 사치다. 그들은 ‘주말이 있는 삶’이라도 오길 바란다.

현재 외국계 IT업체에서 시스템엔지니어로 근무 중인 이모씨는 올해 추석 연휴를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토요일과 일요일을 포함해 실질적 휴무일이 하루에 그친 덕에 고객사에서 대규모 시스템 점검계획이 없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설이나 추석 명절이면 기업들은 대대적인 전산시스템 점검을 하거나 근무일에 할 수 없는 데이터센터 이전을 기획한다. 명절마다 곳곳에서 들리는 ‘연휴에도 IT는 멈추지 않는다’란 말은 실무자 입장에서 한숨나오는 소리다.

얼마 전 한국넷앱의 김성태 이사는 파트너사 엔지니어들에게 이메일 설문조사를 보내 최근 3개월 내 휴일 근무 경험을 물었던 일을 들려줬다. 그 결과 엔지니어 중 휴일에 쉬었다고 답한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다.

그들이 주말이나 공휴일 동안 한 업무는 무엇이었을까. 설문 결과에 따르면 고객문서작업, 전원 공사, 패치 및 업그레이드. 월 정기 PM, 전산실 이전, OS-FW 업데이트, 재해복구(DR) 모의 훈련, 네트워크 변경, 장애복구 등 다양했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건 구성 변경 작업(38%)였고, 데이터 이전과 설치 작업(15%)이 다음으로 많았다.

그는 1997년 추석 연휴 때 자신의 경험을 떠올렸다. 그해 3일 추석 연휴 동안 그는 고객사에서 요청한 작업을 하느라 3일 내내 업무를 해야 했다.

고객사 요청 사항은 스토리지 RAID를 RAID1에서 RAID5로 변경하는 것이었다. 고객사는 스토리지 추가 구매 없이 부족한 저장공간을 확보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기존대비 33% 정도의 용량을 늘려달라는 요청이었다.

김 이사는 고객의 기존 데이터를 백업하고, 스토리지 RAID 형태를 변경한 후 백업 데이터를 다시 원래 시스템에 복구시켰다. 복구된 데이터의 정합성 확인작업까지 3일이 걸렸다. 그 결과 사용 가능한 스토리지 용량이 135GB에서 203GB로 늘었다. 고객 요청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지금은 하드디스크 한 개 용량에도 한참 못미치는 68GB를 확보하는 데 3일을 소요했다. 테이프 백업만 하루 꼬박 걸렸고, 디스크 포맷에 16시간, 테이프 복구시간 하루반, 검증까지 2시간이 걸렸다.

그는 당시와 같이 디스크 추가없이 33%의 용량을 확보하는 작업을 지금은 54초면 가능하다고 밝혔다. 지금의 기술이 1997년에도 존재했다면 김 이사는 연휴 전날 고객 요청을 완수하고 명절을 즐겼을 것이다.

문제는 1997년 있었던 김 이사 같은 일이 지금도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2012년 오늘도 현업의 IT엔지니어들은 평상 시 해도 될 일을 주말을 빼앗겨가며 수행하고 있다. 주말이 없는 삶은 오히려 더 심각해졌다.

■기업 비즈니스 기반 'IT'...엔지니어는 피곤하다

오늘날 기업에게 IT는 비즈니스를 유지해 주는 기반이다. 제조, 금융, 물류, 상거래, 엔터테인먼트 등 대부분의 비즈니스가 IT로 이뤄진다. IT 시스템 중단은 용납할 수 없는 중대 사건으로 취급된다. 서비스 무중단을 위한 24시간 365일 대기는 사라지긴 커녕 더 심해졌다. 불가피하게 시스템을 중단시켜야 할 작업은 결국 남들이 쉬는 주말이나 긴 연휴 동안 이뤄진다.

이런 상황에서 IT엔지니어 편하게 일하라고 시스템 중단을 용인할 수도 없다. 시스템 중단은 사업 중단이다. 치명적일 경우 IT엔지니어에 지급할 급여조차 확보하지 못할 최악의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중에 제공되는 서비스라면 시스템 중단은 정치, 사회 저명인사조차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하게 만든다.

이 때 비즈니스와 엔지니어가 중단과 휴식이란 두 전제를 놓고 충돌한다. 그렇다고 이를 해결하지 못할 방법도 없다. 3일 걸리던 일을 54초만에 하는 기술이 이미 곳곳에서 나와 있다. 데이터 이전이나 시스템 점검을 중단없이 실시간으로 수행할 수 있는 기술과, 재해상황을 시뮬레이션 할 수 있는 가상 훈련 방법도 나왔다.

지난 6월 넷앱이 발표한 ‘애자일 데이터 인프라스트럭처’가 한 예다. ‘신속한 변화를 위한 데이터 인프라’로 해석되는 이 말은 '인텔리전트한 관리(Intelligent)', '중단 없는 운영(Immortal)', '무한 확장(Infinite)' 등 세 ‘I’를 축으로 한다.

이중 ‘Immortal’은 시스템과 비즈니스 중단을 용납할 수 없다는 기본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러면서 작업 편의성을 대폭 높이고, 수작업을 최소화한다.

관련기사

김성태 이사는 “스토리지 용량을 늘리고, 새 볼륨을 이동시키고, 고가용성을 확보하는 등의 작업이 시스템 중단없이 실시간으로 이뤄진다”라며 “마우스 클릭과 커맨드 입력 몇번이면 끝나니 IT관리자가 투자해야 할 시간이 줄어든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엔지니어 입장에서 고객의 요청은 거부할 수 없지만, 굳이 주말을 반납하지 않아도 될 일이 많기 때문에 이런 기술을 이용해 주말이 있는 삶을 누렸으면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