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소프트웨어(SW) 솔루션 및 서비스 업체 A사는 '개발자'를 위한 맞춤식 인사고과를 화두로 삼았다. 일반 사무직 노동자와 상이한 SW개발 노동 특성상, 그에 알맞은 평가체계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이 회사 내부 인력들은 솔루션 구축시 발주되는 시스템통합(SI) 프로젝트 파견업무 비중이 높다.
공공과 민간의 외주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인력의 업무 기대치와 실제 임금에 영향을 끼쳐온 SW기술자 등급제가 최근 폐지됐지만 현장에선 이를 거의 유지하는 상황이다. 프리랜서가 아닌 상시인력을 운용하는 기업이나 회사에게 일정한 평가체계가 필요할 수도 있어 보인다.
다만 SW솔루션 개발 업무와 '용역'으로 표현되는 SI프로젝트 업무는 성격이 상이하다. SI는 외부 업체나 기관이 원하는 SW를 발주한대로 만드는 일이다. SW솔루션 개발은 기업이 소유권을 갖고 라이선스 판매나 그에 기반한 비즈니스를 벌이기 위해 진행하는 일이다. 남의 것을 만드느냐, 제 것을 만드느냐는 차이가 있어, 업무 종사자를 같은 집단으로 묶기도 어려운 이유다.
확인해보니 기업 사정상 순수한 SW솔루션 개발 이외에 SI프로젝트를 맡아 하는 경우도 있고, SI 경력이 쌓여 축적된 노하우를 정리해 SW솔루션으로 제품화하는 경우도 있다.
신생 SW업체의 경우 솔루션 사업을 하고 싶지만 열악한 자금사정으로 SI프로젝트를 뛰기도 한다. 이 경우 누구는 SW솔루션 개발일만 하고 다른 누구는 SI프로젝트에 투입되기만 하는 게 아니다. 같은 사람이 성격이 다른 업무를 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기업이 처한 현실에 따라 엔지니어를 평가하는 체계나 방식은 천차만별이었다. 국내서 SI 사업을 주로 하는 A, B, C사와 SW솔루션 업체 사례를 분석해 봤다.■솔루션이 있지만 SI 비중이 높은 A사
당시 A사 대표는 인사팀장에게 개발자들의 업무 평정을 상급 개발자가 할 수 있게 바꿔보라고 지시했다.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평가의 전문성이나 합리성을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기존 방식은 SI프로젝트 파견사측 외부 평가와 개발자가 아닌 인력에게도 적용되는 사내 부서별 평가 방식이었다.
개발자가 아닌 A사 인사팀장은 고민에 빠져 머리를 싸매게 됐다는 후문이다. 개발자가 아닌 사람이 전문분야인 개발자의 업무 성과를 판단하고 고과에 반영하는 권한을 갖는다는 게 일견 불합리할 수도 있긴하다. 하지만 상급 개발자와 하급 개발자일 경우 사내에 동일한 부서에서 일하는 게 아닐 경우 출퇴근내내 하루에 얼굴 한 번 안 마주칠 가능성이 높은 관계다. 개발자 직급을 어떻게 서열화할지도 모호하다.
SW업계서 다른 회사는 어떨까. SW개발자라 해도 담당 업무나 특성이 현장에 따라 천차만별이라 대개 기업들은 회사 전체의 틀에서 그 성과를 평가하고 측정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유지관리 라이선스 요율이 낮아 힘든 B사
중견업체 B사는 제조부문 계열사를 둔 대기업 발주 사업을 주로 맡기에 SI프로젝트 비중이 높은 편이다. 회사 대다수 엔지니어들이 발주사 현장에 파견을 나가 일한다. 함께 투입된 프리랜서과 함께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현장 매니저의 관리를 받는다. 사내 평가도 현장에서 받은 것을 근거로 삼아 인사고과에 반영한다.
국내 SI프로젝트 환경은 전문성을 판단할 수 있을만큼 정교한 업무평가 체계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파견된 개발자들이 일당을 받고 일정기간 일하는 건설현장 인부처럼 현장경험으로 등급을 받고 '월단위 몇명' 식의 규모에 책정에 따라 제한된 시간과 급여체계로 일한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B사는 사실 오래 SI사업을 해왔지만 내실있는 성장을 위해 자체 솔루션에 기반한 라이선스 수입도 벌어들이고 있다. 다만 그 비중이 전체 사업규모에 비히 부족함을 느끼고 있어 라이선스 요율을 높이려고 애써왔다. 외국계 SW업체 절반 수준이지만 여전히 고객사들은 라이선스 요율 높이기에 인색하다고 회사측은 전했다.
■우리 현장 개발자는 전문가…계산 철저한 C사
웹표준기술 전문교육과 컨설팅을 수행하는 벤처 C사도 외주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회사는 프로젝트 진행시 직접 투입 인력의 업무를 일단위나 월단위가 아닌 '시간'단위로 철저히 측정, 비용에 반영하는 방침을 뒀다.
고객사가 기존 경험이나 업계 관행대로 한창 진행된 프로젝트 요구사항을 계획 없이 바꾸거나, 일정을 조정하려거나, 시도 때도 없는 무상 기술지원을 기대한 경우도 없잖았다. 그러나 이를 모두 추가비용에 반영해 불합리한 무상노동이 없도록 노력해왔다고 C사는 밝혔다.
C사 대표는 고도의 지식노동을 수행하는 개발자 입장에서 일일 8시간 근무에 맞춰 집중력을 유지하도록 보장하고, 그날 어떤 업무를 했는지 철저히 이슈트래커에 기록해 리뷰하는 과정을 일상화했다며 프로젝트에서 뭘 했고, 이슈당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 프로젝트에 기여 수준은 얼만지 종합해 비중있는 평가자료로 쓴다고 설명했다.
■윈드리버, 엔지니어만 '특별한 평가'는 없어
글로벌 임베디드 솔루션업체 '윈드리버'는 내부에 플랫폼과 테스팅 SW를 직접 개발하거나 대외 기술지원을 맡는 인력들이 있다. 회사에 소속된 엔지니어들은 단순히 SW개발자로 묶이지 않고 역할에 따라 직책과 업무내용이 세분화돼 있다.
회사는 직책별로 세분화된 평가항목을 별도로 운영하는 한편 엔지니어들이 연 1회 공통적으로 적용받는 '퍼포먼스 디벨롭먼트 프로세스(PDP)'에 대해 소개했다.
윈드리버의 PDP는 전문지식, 커뮤니케이션, 고객요구 집중, 리더십과 영향력, 생산성과 직업윤리, 협업능력, 6가지 역량을 5점척도로 평가한다. 최고 등급은 '탁월한 성과', 다음은 '목표를 일관되게 초과달성', 중간은 '목표를 일관되게 성취', 이에 못 미치면 '개선을 요함', 그보다 못하면 '불만족스러운 성과'로 기록된다. 인사평가 진행방식은 '자기평가', '매니저의 평가', 지역매니저(CM)와 기술어카운트매니저(TAM)가 라운드테이블 미팅을 통해 구성원별 등급에 대해 토론, 최종평가, 직원들에게 공지, 5단계 순서로 이뤄진다.
■원더풀소프트 솔루션 개발사에겐 무의미
국내 기업용 SW업체 원더풀소프트는 외주 프로젝트 없이 순수 제품개발만 하는 소기업이다. 상반기 대졸 초임 신입사원에게 연봉 4천만원을 제시하며 관심을 끌었다. 이에 따라 기존 직원들의 급여체계도 상향 조정했다. 회사는 채용 당시 개발부서와 비개발부서를 연봉 기준으로 구별하진 않았다. 회사와 업무 특성상 개발자를 위한 평가체계를 따로 갖추지 않았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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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원더풀소프트 최고기술책임자(CTO)는 SW솔루션 개발업무를 독려하는 것은 평가와 보상에 따른 차등 대우보다 자질과 적성에 따른 수직적 분업체계라며 성공적인 솔루션을 개발하고 제대로 경영할 수 있다면 차등적 보상을 위한 평가체계는 큰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SW비즈니스에선 분배 자체가 엄격하지 않더라도 수직적으로 분업화된 환경에서 각자 맡은 역할에 충실함으로써 좋은 결과를 얻는 것만으로도 수용 가능할 것이라며 실질적으로 무엇이 잘 만들어졌고 무엇이 못 만들어졌는지 알아내기 어렵기 때문에 평가에 초점을 두면 판단하기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