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면서 큰다. 자주 싸울수록 이름이 알려진다. 덩치 큰 싸움은 주목도가 높다. 대선을 한 달 앞둔 시점, 유력 대통령 후보들은 말의 전쟁에 여념 없다. 물고 뜯는 말의 잔치에 여론이 시끄럽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싸움 잦은 기업은 입길에 자주 오른다. 그런데 이 싸움이 기업에 나쁜 영향만 끼치는 것은 아니다. 후발 주자들이 선호하는 효과적 마케팅이다. 단적인 예가 애플의 매킨토시 광고다. 애플은 소설 '1984'를 패러디한 광고에서 공룡 IBM을 독재자로 묘사했다.
애플은 아이폰으로 글로벌 1위 자리에 오른 후에도 자주 싸움을 걸었다. 특허 소송이 대표적이다. 빠르게 성장하는 경쟁자들을 잠재우려는 전략이었지만, 상대편도 반겼다. 점잖은 척, '고객사 애플'의 눈치를 보던 삼성전자도 "카피캣" 공세에 "너도 소니를 베끼지 않았냐"며 함께 진흙탕을 뒹굴었다.
두 회사의 소송 소식이 연일 보도되는 가운데, '네거티브 선전'도 정도를 더했다. 연초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3세대 아이패드를 공개하며 이례적으로 삼성 갤럭시탭을 직접 언급, 평가절하했다. "삼성전자 태블릿으로 트위터를 실행하면 마치 스마트폰 전용 애플리케이션인 듯 깨져 보인다"라고 사용자경험 철학 부재를 꼬집었다.
압권은 '시리의 독설'이다. 시리는 애플이 선보인 아이폰 음성 인식 서비스. 사용자 질문에 답을 찾아주는 일종의 인공지능 서비스다. 시리는 지난 6월 열린 애플세계개발자대회(WWDC)에서 "나는 삼성전자 제품을 좋아한다. 그것들은 매우 흥분을 불러일으킨다. 아, 물론 스마트폰 말고 냉장고"라고 웃음섞어 조롱했다.
삼성전자도 네거티브 선전 수위를 높였다. 초당 1억3천만원을 쏟아부은 미국 슈퍼볼 광고에선 아이폰을 겨냥해 "왜 작은 화면의 스마트폰을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서느냐"고 되물었다. "차세대 기술은 이미 여기 있다"는 문구는, 애플의 "한 가지 더 (One more Thing)"를 비꼰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광고에선, 애플 제품을 사기 위해 줄서 있는 '팬보이'들을 양떼에 비유키도 했다. 다분히 매킨토시 광고를 생각나게 하는 부분이다. 이전 광고에선 애플 팬보이로 등장했던 인물을 다음 광고에선 갤럭시폰에 매료된 전도사로 표현하기도 했다. 차세대 스마트 권력이 이미 삼성으로 넘어왔단 은유다.
네거티브 공세는 역설적으로 두 기업에 대한 홍보효과를 낳았다. 스마트폰 시장은 어느새 애플과 삼성전자 양강 체제로 구축됐다. 다른 기업들이 끼어들 틈이 없다.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는 "안드로이드를 잡을 수 있다면 핵 전쟁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소송은 삼성 스마트폰의 점유율과 브랜드 가치를 키웠다.
서로를 증오하는 듯한 싸움에도, 두 기업은 계속해 성장했다. 지난 분기 삼성 갤럭시폰 판매량은 아이폰의 두 배를 넘어서며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애플 역시 아이폰으로 다른 기업들이 쉽게 넘볼 수 없는 순익을 기록 중이다. 전문가들은 양측이 수조원이 넘는 비용을 지불하면서 소송전을 치뤄도 크게 손해보지는 않았다고 본다.
다만 싸움이 더 길어질 경우, 상황은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긴 소송과 양측의 네거티브 공세는 지난 2년간 거의 매일 보도돼왔다. 긴 전쟁은 장수는 물론, 관망자까지 지치게 한다. 정치와 마찬가지다. 국민들의 정치 외면은, 지나친 네거티브 흑색 선전과도 관계 깊다. 소송이 길어지면서 혁신보단 특허 싸움에 몰두한다는 인상이 커지면, 기업 이미지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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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도 싸움의 수를 줄이고 있다. 노키아와 소송을 마무리 지은 이후, 지난 주말엔 HTC와도 극적 화해를 했다. HTC와는 광범위한 상호 특허 사용 계약을 맺고, 향후 10년간 서로의 특허를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양측 CEO들은 성명서를 발표하며 "기쁘다"는 소감을 밝혔다.
자연스레 눈길은 삼성전자와 특허소송으로 쏠렸지만, 아직까지 양측 모두 화해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일각에선 애플이 HTC와 소송을 정리한 이유를 삼성전자와 싸움에 집중하기 위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감정의 골이 깊어지면서 '부품-완제품' 사이 협력관계도 흔들거린다.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 싸움이, 이젠 실익보다 손해가 큰 터닝포인트를 돌았다는 분석을 두 기업이 주의깊게 들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