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점검]특허워즈<3> "삼성의 복수"

일반입력 :2012/03/22 10:45    수정: 2012/03/22 11:06

봉성창 남혜현

[연재 순서]

특허워즈 에피소드<1> “보이지 않는 위험”

특허워즈 에피소드<2> “애플의 습격”

특허워즈 에피소드<3> “삼성의 복수”

특허워즈 에피소드<4> “새로운 합의”

2011년 9월 4일 독일 베를린에 위치한 IFA 전시장의 삼성전자 부스에 갑자기 커다란 가림막이 쳐졌다. 현장에 있던 삼성 관계자들의 표정도 어두웠다. 잠깐의 소란스러움 뒤, 가림막 뒤에 숨겨져 있던 삼성의 첫 아몰레드(AMOLED) 태블릿 '갤럭시탭 7.7'은 전시장서 완전히 사라졌다.

이로부터 닷새 뒤, 독일 뒤셀도르프 법원. 판사는 갤럭시탭 10.1의 판매·마케팅 금지 가처분 결정에 대한 삼성전자의 이의 신청을 기각했다. 삼성이 디자인을 베꼈다라는 애플의 주장이 본안소송에서 패소하기 전까진, 갤탭 10.1의 독일내 판로가 막혀버린 것이다.

그간 고객사의 입장을 고려해 말을 아끼던 삼성전자가 표정을 바꾼 건 이때부터다. 언론에 애플을 겨냥한 강경한 발언이 이어지며 그간 소극적으로 진행한 맞소송을 애플이 소송을 제기한 전 세계 거의 모든 법원으로 확대했다. 애플의 아이폰이 자사 통신 특허를 침해하니 판매를 금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도 호주,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등에 제기했다.

삼성의 무기는 3G 통신과 관련한 '표준특허'다. 표준특허는 기술 구현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이용해야 하는 특허라 다른 기술로 대체하기 힘들다. 지난해 기준 삼성의 미국 내 특허 등록 수는 4천551건으로 IBM(5천896)에 이은 2위다. 대부분이 통신 특허인만큼, 휴대폰에선 구력이 짧은 애플이 이를 피해가긴 힘들 것이란 게 자신감의 바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는 연패를 계속했다. 네덜란드 헤이그 법원은 애플이 신청한 가처분 10건 중 1건을 인정했고, 호주 뉴사우스웨일즈 법원 역시 갤럭시탭 10.1의 판매금지 소송서 애플의 편을 들었다.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은 잇따른 패소소식을 '페널티킥'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금까지는 저쪽(애플)에서 고른 장소와 고른 논리로 페널티킥을 찬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애플은 제 1 거래선으로서 존중도 중요하지만 우리 이익을 침해하는 것은 좌시할 수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런 와중에 삼성에 처음 '낭보'가 들려온 건 같은해 10월, 미국 새너제이 법정에서다. 당시 재판부를 이끌던 루시 고 판사는 삼성이 애플의 특허 1건을 침해한 것은 맞으나, 해당 특허가 유효한지에 대해선 의문이란 입장을 밝히며 심리를 연기했다.

이어 11월엔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법원이 애플의 갤럭시탭 10.1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삼성으로선 숨통이 트인 셈이다. 갤럭시탭이 해외서 얼마나 많이 팔렸느냐는 둘째 치고라도, 삼성이 소송으로 애플과 싸워볼만하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찾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같은 부분적인 승소는 '가처분'과 관련된 소송에 한정됐다. 실제로 서로 상대편이 자신의 특허를 베꼈다고 주장하는 본안 소송에선 누구도 승리하지 못한 채 지루한 '원고패소'로 시간만 흘러갔다. 애플이 주장하는 '디자인 고유성 침해'는 판단하기 모호했고, 삼성이 주장하는 '표준특허'는 'FRAND(공정하고 합리적이고 비차별적)' 조건에에 따라 소송보단 라이선스 합의로 풀어가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는 것처럼 보였다.

이 과정에서 삼성은 미국서 든든한 우군도 만들었다. 미국 최대 이동통신사인 버라이즌이 법원에 애플이 제기한 삼성에 대한 사전 제품판매 정지명령이 수많은 미국내 삼성단말기의 판매를 중단시키게 될 것이라며 정지명령기각 요청 의견서를 미 북부캘리포니아지법에 서류를 제출한 것이다.

당시 외신들은 버라이즌의 입장표명이 4G 시장을 노려 망 구축에 수십억달러를 투자하고 있는 자사의 전략적 입장을 반영한 것 때문으로 풀이했다.

버라이즌은 소장에 삼성 제품 판매금지는 버라이즌 와이어리스의 개발및 자사의 차세대 LTE망을 설치하는 것을 방해하게 될 것이라며 일자리 성장률이 이 4G망 확충에 달려 있으며 미국의 광대역통신망에의 접근과 비상시 인명구조를 위한 보다 빠른 통신망 구축이라는 공공정책의 핵심 목표를 중단시켜 버릴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이 격렬하게 대응하기 시작하면서 애플도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 11월 애플의 '증거 조작' 의혹이 언론 지면을 뒤덮었다. 당시 사건 전말은 이렇다. 애플이 독일 뒤셀도르프 법원에 판매금지 가처분 조치 자료로 내 놓은 공문서에 이미지 편집 소프트웨어로 조작한 흔적이 발견된 것이다.

갤럭시탭 10.1은 와이드 디스플레이를 탑재하고 있어 가로세로 비율은 4 대 3 디스플레이를 채택한 아이패드보다 크다. 그러나 애플이 제출한 공문서의 갤탭 비율은 아이패드와 흡사하게 줄여져 있었다. 때문에 애플이 디자인 소송에서 유리하기 위해 실사 사진을 조작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대외비'로 분류된 협상내용을 재판장에서 공개한 일도 벌어졌다. 애플이 특허소송 법정에서 삼성이 애플에 통신칩 특허료로 칩가격의 2.4%라는 '과도한 로열티'를 요구했다며 협상내용을 이례적으로 공개해 화제가 됐다.

삼성전자와 애플을 대표하는 수장들의 장외 설전도 한층 험악해졌다. 이 기간 국내외 언론들은 삼성과 애플의 소송을 실시간 보도했고, 수장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본의 아니게 두 기업이 '노이즈 마케팅'으로 유명세를 타는 형국이 된 것이다.

독설은 물론 스티브 잡스가 먼저 시작했다. 삼성 갤럭시탭을 일컬어 창고에 쌓였다고 직접 비난하거나 7인치 태블릿들은 도착 즉시 사망할 것이라 폄하하기도 했다. 팀 쿡은 아이패드 외 태블릿은 해괴하다, 증기처럼 사라질 것 등의 독설을 공식석상에서 던져 삼성전자를 자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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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도 작심한 듯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신종균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사장은 (애플이) 먼저 걸어온 싸움인 만큼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며 전선을 확대하면 했지 먼저 양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소송이 장기화 되면서 전 세계 IT업계는 삼성과 애플의 사이가 완전히 틀어지는 것은 아니냐는 예측도 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1년이 넘게 진행되는 소송 기간 동안 삼성과 애플의 협력 관계는 확대됐다. 이달 발표한 새 아이패드의 초두 물량엔 삼성의 디스플레이가 대거 탑재됐다. '으르렁' 대는 말 다툼 속에서도 협력은 오히려 돈독해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