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이래 30~40년간 세계 전사산업을 주름잡던 일본 가전업계가 거의 회생 불능상태에서 존립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와 있다. 소니의 주식은 무디스에 의해 지난 한달새 두 번이나 강등돼 정크본드 직전이다.감원도 병행됐다. 샤프는 지난 9월말로 끝난 실적 발표를 통해 6개월간 48억7천만달러(5조2961억원)의 적자를 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적자규모는 1년전 동기에 비해 10배 규모다. 샤프는 올초부터 중국 폭스콘에 자사의 경영권 지분 매각을 추진하고 있으며, 모든 공장 매각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정부의 구제금융을 통한 생존을 꾀하는 상황에 직면했으며 이미 1만명의 직원을 감원했다.
불과 몇 년전까지만 해도 세계 가전시장에서 프레미엄 브랜드의 대명사로 여겨진 일본 가전업계가 어떻게 하다가 잇따라 적자의 늪에 빠지고 심지어 정부 구제금융에 손을 벌리는 최악의 사태를 맞았을까?
세계 가전업계의 거인 소니,샤프, 파나소닉의 잇따른 몰락의 3대 원인으로는 ▲디지털제품으로의 트렌드 변화에 늑장 대처한 점 ▲왕년에 최고의 이익을 내준 TV에 버금가는 캐시카우인 스마트폰에 눈뜨지 못하고 뒤진 점 ▲엔화강세로 인해 가뜩이나 어려워진 경영에 더 압박을 받은 점 등이 꼽히고 있다.
주요 외신이 전문가들의 분석을 통해 내놓은 한때 세계를 주름잡다가 이젠 추락할 대로 추락한 세계 전자업계의 거인 소니,샤프,파나소닉의 몰락 배경과 향후 전망을 살펴본다.
■세계가전을 지배하던 일본의 거인들이 왜?
지난 70년대부터 30~40년간 이들 일본 회사의 브랜드는 사실상 전세계 가전업계의 모든 것이라 할 만 했다. TV에서 전자레인지, 디지털뮤직 플레이어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만들어 냈었다. 누구도 이들을 멈추게 할 방법을 갖고 있지 못한 듯 보였다. 그들의 제품은 때때로 그들의 뛰어난 품질과 인지도로 인해 더 높은 가격표가 붙곤 했다. 소비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제품을 사들였다.
토니 코스타 포레스트 리서치 분석가는 “이전에는 사람들이 소니제품으로 집안을 온통 도배했지만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오늘날 일본 가전품들은 여러 가지 중 하나로 전락했다. 그리고 이들 가운데 많은 업체들이 이익을 내려고 애쓰는 수준이 됐다. 오늘날 소니의 부채는 한달에 두 번이나 무디스에 의해 회사등급이 정크직전 단계까지 평가하게 만들었을 정도다.
올들어 엄청난 주가하락을 기록하고 있는 샤프도 일본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으려 하고 있는 상황이다.
세계가전업계의 리더 중 하나였던 파나소닉도 리더십을 잃었다. 파나소닉은 영업이익을 내지 못하는 회사가 됐는데 이는 조만간 샤프의 TV가 상점에서 없어질지모른다는 것을 의미하는 수준으로 전락했음을 의미한다.
스티븐 베이커 NPD그룹 분석가는 “(일본 전자업체들)모두가 과거의 영화는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10년 전만 해도 간신히 빠듯한 이익만을 거두던 한국의 삼성전자가 뭐든지 다 만드는 전략을 받아들였고 실제로 화려한 성공을 거두던 황금기의 일본 경쟁사보다 훨씬 더 많은 이익을 내는 성공스토리를 썼다.
■소니· 샤프· 파나소닉 세거인이 몰락한 원인은?
소니 샤프 파나소닉은 한 때 세계가전업계의 대명사로서 빛나는 훈장같은 브랜드를 가진 회사였다. 하지만 이제는 미국의 애플, 한국의 삼성전자,LG전자, 중국의 화웨이,ZTE, TCL,하이센스같은 회사들에 의해 포위됐다. 도대체 왜일까?
많은 실패와 몰락의 이야기가 그렇듯이 소니,파나소닉,샤프는 트렌드 변화(trend shift)를 따라잡는데 실패했다. 또 해외경쟁자들에게 추격 당했다.
다시 말하면 일본가전업계는 시장이 디지털미디어와 게임,모바일단말기,SW,인터넷으로 변화하고 있는 와중에 이를 선도하지 못하고 따라잡기에만 급급했다.
외적요인으로는 엔화의 가치상승이 있었다. 이는 일본제품의 수출가격을 더 비싸게 만들었고 국내 판매 마진을 줄어들게 만들면서 회사를 더욱더 압박했다.
거대한 일본 회사들은 또한 느린 회사였다.
일본 TV산업의 추락은 이들 일본 가전의 몰락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소니,샤프,그리고 수많은 일본 회사들은 커다란 브라운관TV시대에는 시장을 지배했다. 소니 트리니트론은 이 TV를 가지고 싶어할 만한 가치있는 TV라는 명성을 누리고 있었다. 전자총 3개를 하나로 모은 트리니트론 전자총으로 화면의 선명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혁신을 실현한 이 제품은 1970년대 들어서면서 이후 거의 30년간 독보적인 베스트셀러였고 그 영화는 끝나지 않을 듯 보였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LCDTV를 만들고 마케팅 하면서 상황은 돌변했다. 가볍고 얇고 선명도 뛰어난 LCDTV는 새로운 캐시카우로 등장하면서 트리니트론을 제치기 시작했다.
소니는 결국 2004년 일본 내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삼성의 LCD패널공장에 지분투자를 해 경쟁자 삼성의 패널로 LCD TV를 만들어야 하는 굴욕까지 감내해야 했다. 이들 가운데 TV시장이 평판TV 시장으로 전환하는데 트렌드를 읽어가면서 썩 잘 적응해 간 회사는 거의 없었다.
코스타 분석가는 이들 가운데 많은 회사들이 TV시장에서 초기부터 많은 이익을 거둬들인 반면, 가중된 경쟁과 줄어드는 마진이 많은 일본 회사들을 압박하기 시작한 것으로 분석했다.
JVC 히타치 후지쯔 도시바 NEC파이오니어 같이 약해진 가전업체들이 시장에서 퇴출되기 시작했다.
이들의 자리를 대체한 것은 삼성전자,LG전자 같은 회사였다. 삼성은 특히 고품질 평판TV를 만드는데 초점을 맞췄으며 여기에 보다 높은 기능을 부가해 경쟁력있는 가격에 팔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더 시장 점유율을 높여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능과 디자인에서 훨씬더 일본의 경쟁사들을 앞서기 시작했다 이제 삼성은 최고표준의 브랜드로서 전세계 TV시장의 리더가 됐다.
베이커는 “평판과 HD가 더욱더 유행하자 사람들은 TV사업모델은 PC시장의 그것과 더T욱더 비슷해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지적하면서 “대다수의 일본 TV업체들이 이같은 준비를 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또다른 문제는 이들 회사가 제공하는 제품의 범위인데, 기존에 베스트셀러였던 많은 제품들이 디지털 기술혁신에 따른 신제품 등장에 따라 더 이상 시장에서 팔리지 않게 됐다는 점이다. 모든 것이 스트리밍 방식으로 판매되는 시대에 들어서자 소비자들은 더 이상 소니의 베스트셀러였던 워크맨, CD플레이어,미니디스크, DVD, 블루레이 등을 살 필요가 없어졌다. 소니같은 회사들이 황금 캐시카우를 잃어버리게 됐다.
■모바일 사업에서 기회를 놓쳤다
일본은 휴대폰(스마트폰)에서도 TV에서와 비슷한 실수를 저질렀다.
파나소닉과 샤프는 이런 글로벌트렌드와 너무나도 고립돼 있었다. 이는 일본 가전 거인들이 전세계 업체들과 효율적으로 충분히 경쟁할 수준을 확보하지 못하는 요인이 됐다.
소니는 에릭슨과의 휴대폰 합작회사를 만든 초기에는 일부 기본적인 휴대폰을 만들며 성공했지만 이 합작사가 오히려 소니의 발을 묶어 버렸다.
애플이 지난 2007년 아이폰으로 휴대폰시장의 문을 두드리자 소니에릭슨은 그들이 새로운 스마트폰 시장에서 경쟁하기 힘들게 됐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이어 구글과 안드로이드가 등장했지만 일본회사들은 이 급속히 성장하는 플랫폼을 신속히 받아들이는 데 실패했고 스스로가 삼성전자와 HTC가 앞서가는 스마트폰시장에서 자신들이 훨씬 뒤처져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TV시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스마트폰 사업역시 소수의 승리자만을 허용하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격렬한 시장임이 증명됐다. 애플과 함께 삼성만이 스마트폰에서 엄청난 이익을 얻는 유일한 메이저 휴대폰 업체로서 부상했다. 소니는 007 최신영화 스카이폴에서 제임스 본드가 사용한 주력 스마트폰 엑스페리아 TL을 가지고 조그맣게나마 컴백을 노리고 있다.(007영화 스카이폴 배급사는 소니다)
샤프는 미국시장에 약간의 스마트폰을 내놓고는 있지만 거의 명함도 못내민다고 할 정도다.
파나소닉은 일본 밖에서 엘루가 계열의 스마트폰으로 입지를 확대하려는 야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만한 영향력이나 자원이 부족해졌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달 초 파나소닉이 유럽시장 진출을 위한 들이는 노력을 줄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새로운 외부압력은 더욱더 거세진다
모든 일본 가전업체들이 다시 이익을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한가지 진실은 압박이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점이다.
압박은 미국과 한국업체들에게서 뿐만 아니라 중국업체로부터의 도전으로 인해 점점더 도를 더하고 있다.
레노버는 PC사업에서의 지배력을 보여주었다. IDC는 8일 레노버가 87억달러의 매출과 최고의 PC시장점유율을 기록했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같은 레노버의 부상은 소니와 도시바가 노트북시장에서조차 지배력 추락세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것이다.
스마트폰 분야에서 보자면 화웨이와 ZTE가 저가와 고가폰으로 전세계를 누비기 시작했다. 미국시장에서 이들 두회사는 심지어 놀라운 방식으로 주요 이통사들에 제품을 공급하기기까지 했으며 조만간 보급형 스마트폰과 태블릿까지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TV시장에서 중국업체들은 잠재적인 위협을 대변한다. 중국 내수시장의 최대 공급자는 TCL,과 하이센스다. 현재까지는 이들 가운데 아무도 미국시장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지만 점점 놀랄 만한 움직임을 보여주기 시작하고 있다. 두 회사 모두 엄청나게 값싼 TV를 가지고 시장점유율을 잠식해 나가고 있다. 하이센스는 심지어 고급 4K모델까지 미국시장에 내놓았을 정도다.
데이비드 카츠마이어 씨넷 TV평가 에디터는 TCL과 하이센스가 2년내 미국시장에서 시장점유율을 보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들 일본업체가 시장점유율을 잃으면서 그 일부가 중국업체로 갈 것이라는 전망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가전업계 정체성 변화까지 예고
이들 회사는 만일 생존하게 된다면 향후 수년간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3개 가전 거인 가운데 샤프가 가장 크게 추락하게 될 것이다. 이 회사는 지난 9월30일 끝난 이 회사 결산보고에서 앞서의 6개월간 48억7천만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1년전 동기에 비해 적자폭을 10배나 늘린 것이다.
샤프는 이미 구조조정 중에 있으며 1만명 이상을 감원하면서 폭스콘에 공장매각을 추진하고 있고, 이러한 노력이 현금유동성을 창출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소니와 샤프는 가전 제품판매보다는 다른 인기있는 제품판매 회사에 부품을 공급하는 회사로서의 입지를 찾고 있는 듯 보인다. 일례로 소니는 아이폰용 카메라를 공급하고 있고 샤프는 애플 아이폰에 디스플레이를 공급하는 여러 공급자들 중 하나가 됐다.
그러나 심지어 이 분야의 선두주자였던 샤프의 디스플레이 사업조차도 샤프의 시장을 빼앗으려고 낮은 가격으로 도전해 오는 경쟁사들이 있어 결코 안전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코스타 분석가는 “그들은 많은 옵션을 가지고 있지만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다”고 말했다. 츠가 가즈히로 파나소닉 사장은 가전사업에서 철수하고 싶다는 자신의 마음을 직접 밝혀왔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그는 최근 “최소한 5%의 마진을 내지 못하는 사업은 회사에서 발을 붙이지 못할 것”이라고 임원들에게 말했다.
분석가들은 “파나소닉이 보다 성공적인 비가전 분야의 영업활동을 하면서 가전시장에서의 활동을 접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실제로 파나소닉은 2012회계년도에 PC,TV,디지털카메라사업에서 8억5천300만달러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플레이스테이션(PS)과 할리우드영화, 그리고 영화스튜디오를 가지고 있는 소니는 게임과 엔터테인먼트의 잠재력을 감안할 때 부활할 수 있는 최고의 카드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소니는 모바일분야에 지반을 확보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이미징과 게임같은 분야에 더 초점을 맞추려 하고 있다.
코스타는 “그러나 TV는 취미가 되는데 그칠지도 모르며, 소니는 회사의 집중분야를 이와 다른 분야로 옮기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소니는 기댈만한 다양한 가전제품군을 가지고 있다. .
베이커는 “(생존 또는 부활과 관련해)소니는 아마도 다른 어떤 일본 회사보다도 최고의 입지를 확보하게 될것”이라고 전망했다.
몰락하는 일본 가전업계의 거인들이 그냥 뒷짐만 지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소니는 이 치열한 가전시장의 게임에 가세해 자사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분석가들은 소니가 삼성이 그랬던 것처럼 자사의 TV,태블릿,스마트폰과 가전품들을 보다 더 긴밀하게 연계 통합시키면 이익을 낼 여지가 있다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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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1월 라스베이거스가전쇼(CES2013)에서 개막식 기조연설을 할 예정인 파나소닉은 자사의 존재감을 재확인시키려고 노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가운데 누가 성공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그들 모두의 앞길이 평탄하지만은 않으리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