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아이패드 미니 발표를 전 세계가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애플이 의외로 아이패드 4세대(이하 아이패드4)를 함께 들고 나왔다. 종전 아이패드 3세대보다 향상된 성능을 내세웠지만 소비자 반응은 의외로 냉랭했다.
혹자는 이를 두고 ‘애플의 뒤통수’라는 과격한 표현을 쓰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3세대가 발표한지 불과 6개월 만에 애플이 신제품을 내놨기 때문이다. 이를 큰맘 먹고 산 사람들에게는 상대적 박탈감과 허탈감을 안겨줬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게다가 작고 앙증맞은 아이패드 미니와 함께 발표된 아이패드4는 그야말로 미운오리새끼가 됐다. 유난히 크고 보기 싫게 태어난 오리새끼라는 이야기다. 이러한 반응은 실제 판매량으로도 이어졌다. 미국 로스엔젤레스에 위치한 한 애플 스토어에는 아이패드 미니만 동나고 아이패드4 재고만 쌓여있는 모습이 사진으로 포착되기도 했다.
아이패드4가 전작과 비교해 달라진 점은 딱 세 가지다.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가 A6X로 업그레이드 됐으며, 충전 단자가 라이트닝 8핀 커넥터로 변경됐고 통신 모델 다변화로 국내서도 LTE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이중 충전단자와 LTE 지원은 사실 부차적이며 선택의 문제다. 핵심은 A6X 탑재로 귀결된다. 과거 A5X에 비해 두 배 빨라진 A6X가 소비자들에게 가져다 줄 실익은 무엇일까?
아이패드4에 비판적인 사람들의 공통적인 지적은 27만 5천개의 아이패드 앱 중 전작인 A5X의 성능도 제대로 다 쓰는 앱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하물며 성능이 더 나아졌다 한들 그것이 당장 무슨 필요가 있겠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는 사실이다. 아이패드 3세대에서 구동되지 않는 앱은 없다. 크게 답답하거나 느린 앱도 찾아보기 힘들다. 현재 3세대가 단종 됐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4세대를 구매할 수 밖에 없지만 할 수 있다면 3세대 중고를 좀 더 저렴하게 사는 것도 금전적인 측면에서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플이 아이패드4를 내놓은 이유는 분명하다. 그리고 이는 장기적으로 태블릿 경쟁 체제에서 애플이 치고 나갈 수 있는 포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핵심은 애플의 상징인 레티나 디스플레이에 있다. 기존 A5X 프로세서는 2048x1536 해상도 환경에서 다소 힘겨워 했다. 이를 증명하는 것이 발열이다. 아이패드 3세대의 높은 발열은 발매 초기부터 사용자들 사이에서 설왕설래가 지속됐다. 반면 아이패드 4세대는 일반적인 사용에서는 발열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A5X가 다른 태블릿에 탑재된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와 비교하면 성능이 뒤처지는 것은 아니지만 지나치게 고해상도 환경 아래에서 작동해야 한다는 점이 문제다. 가령 동영상 및 사진 편집 앱은 아이패드 3세대에서 다소 로딩이 지연되는 모습도 나타난다. 특히 풀HD 동영상에 각종 효과를 입히는 ‘렌더링’과 같은 PC에서도 쉽지 않은 무거운 작업일수록 더욱 그렇다.
즉, 애플은 3세대에 장착된 A5X가 고해상도 환경에서 사용하기에는 성능이 다소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서둘러 아이패드4를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A6X는 좀 더 레티나 디스플레이에 적합하게 설계된 것으로 분석된다. 게다가 아이폰5를 위해 개발한 A6에 그래픽코어 수를 늘리고 라이트닝 8핀 커넥터 확산도 해야 했던 만큼 기술적으로나 명분만 보더라도 시기가 적절했다.
자기시장잠식 현상(카니발리제이션)을 막기 위한 노림수도 들었다. 만약 이번에 애플이 아이패드 미니만 내놓았다면 기존 아이패드 3세대 판매에 큰 타격을 입히는 것은 불 보듯 뻔했다. 9.7인치 아이패드 신제품을 같이 내놓음으로서 동반 상승효과를 꾀한 것이다. 애플은 아이패드 신제품 발매 3일 만에 무려 300만대가 팔렸다고 밝혔다. 이는 같은 기간 150만대가 팔린 3세대 아이패드와 비교하면 두 배에 달하는 수치다.
다만 애플이 아이패드 미니와 아이패드4의 판매량을 개별적으로 밝히지 않은 점은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실제로 매장에 나가보면 아이패드 미니만 동나고 아이패드4는 아직 재고가 많이 남아있다는 점에서 300만대 중 대부분은 아이패드 미니인 것으로 예상된다. 가격은 그대로 둔 업그레이드에도 불구하고 자기시장잠식 현상을 완전히 막지는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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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관점을 종합할 때 애플이 당분간 아이패드4의 후속 버전을 내놓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엄밀히 말하면 아이패드 3세대는 애당초 레티나를 탑재한 프로토타입 정도로 여겨진다. 지금은 편의상 아이패드 3세대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실제로 애플은 이 제품을 그저 ‘새 아이패드(the new ipad)’라고 부르며 정식으로 세대 칭호를 하지도 않았다.
반면 아이패드4는 당분간 성능 측면에서 경쟁자가 없으며, 개발자들이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적극 활용한 앱을 내놓더라도 이를 충분히 버틸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당장은 크고 못생긴 오리새끼지만 1년 후 새로운 제품이 나오더라도 이후 2~3년 동안 충분히 현역으로 뛸 수 있는 충분한 잠재력을 가진 백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