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관이 요청하면 회원 인적사항을 거의 예외없이 넘겨주던 포털사업자 관행을 문제 삼는 법원의 판결이 처음으로 나왔다.
서울고법 민사24부(부장판사 김성준)는 18일 차모씨가 NHN을 상대로 “약관상의 개인정보 보호 의무를 지키지 않고 인적사항을 경찰에 제공했다”며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5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차씨는 지난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선수단 귀국 환영 장면을 일부 떼어내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김연아 선수를 껴안으려다 거부당한 것처럼 보이게 편집한 이른바 ‘회피연아’ 동영상 제작자다. 그는 이 동영상을 네이버 카페에 올렸다가 유 전 장관으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한 바 있다.
고소는 유 전 장관이 취하함에 따라 종결됐지만 경찰이 사건을 수사하면서 네이버 측으로부터 자신의 인적사항을 넘겨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차씨는 NHN을 상대로 2천여만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차씨는 “포털이 수사기관의 요청이 있더라도 관련법 취지와 개인정보 보호의무를 조화롭게 고려해 이를 거부하거나 제한적으로 제공해야 하는데도 별다른 판단 없이 기계적으로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1심 재판부는 “피고 측에 수사기관의 개인정보 요청에 대한 실체적 심사 의무가 있다고 인정하기 어렵고 해당 정보 제공이 차씨에 대한 개인정보 보호의무를 위반한 것도 아니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었다.
하지만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수사기관에 차씨의 주민등록번호, 전화번호 등을 제공한 것은 개인정보를 충실히 보호해야 할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며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내지는 익명표현의 자유를 침해해 차씨가 정신적 고통을 받은 것이 명백하므로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이에 대해 NHN은 다소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NHN 측은 “전기통신사업법상 통신자료제공이 ‘수사기관의 요청이 있을 경우, 그 요청에 따를 수 있다’는 문구에 비추어 인터넷사업자의 재량 행위라는 헌법재판소의 해석은 국가기관에 의한 정보제공 요청이 갖는 사실상의 강제력을 도외시한 면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 수사기관 요청에 대해 사업자가 거부하기 쉽지 않은 상황인데다 대부분의 인터넷·이동통신사업자가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제공 요청 시 해당 조항에 근거해 응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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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NHN은 “이번 사건은 NHN이 무작위적인 대규모 자료 제공 요청에 임의로 응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 “수사기관의 관행적인 대규모 자료 제공 요청은 사업자 입장에서도 상당한 부담이며 개선되어야 할 문제점이라는데 공감한다”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이용자 개인정보의 중요성에 근거, 영장주의에 입각한 보다 제한적이고 분명한 입법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업계에선 이번 판결로 포털 사업자의 개인 정보 관리 관행이 바뀔 수 있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편 해외에선 트위터가 반(反) 월가 시위 참가자의 트위터 계정 정보를 제출하라는 뉴욕 검찰 요구를 거부하고 미국 법원 판결에 항소하는 일이 있었다. 국내 사업자와는 대조되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