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기업들, 중국 공략이 문제 아니다

한중일 IT 기업 현 주소는....

일반입력 :2012/09/26 14:47    수정: 2012/09/26 16:24

남혜현 기자

한국과 일본, 중국은 닮은 듯 다르다. 위기를 기회로 커 나간 이력은 같되, 성장의 속결은 제각각이다. 새 기술 공정 패러다임을 만들어냈던 일본은 디지털 시대선 맥을 못 춘다. 프리미엄 시장으로 안착하며 급성장한 한국 기업 역시 뒤쫓는 중국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중국도 마찬가지. 엄청난 인구와 자본을 바탕으로 팍스 시니카를 꿈꾸지만, 중국 밖에서도 성공할 수 있을지 장담하긴 어렵다. <지디넷코리아>는 3회에 걸쳐 달라진 삼국의 IT 기업 판도를 분석하고, 앞으로 방향을 제시한다.[편집자 주]

IT산업 역사 상, 지난 10년처럼 드라마틱한 시절은 없었다. PC로 연명하던 애플은 아이폰으로 단숨에 시가총액 1위 기업이 됐다. 애플이 열어젖힌 스마트폰 시장서, 역설적으로 가장 큰 수혜를 입은 곳은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카피캣 논쟁에도 '갤럭시'로 사상 최대 흑자를 냈다. 그사이 '20세기 승자'들은 설욕할 기회도 없이 빠르게 잊혀졌다.

무엇이 이들의 운명을 뒤바꿨을까. 각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은 이를 ▲제품 혁신 ▲강력한 오너십 ▲마케팅 능력에서 찾는다. 판을 뒤집을 수 있는 혁신적 아이디어, 제품 개발에 화끈하게 투자하는 오너십, 시장을 만들어내는 마케팅 능력이 결합되면 이전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그림이 그려진다는 것이다.

기본은 제품 혁신이다. 혁신 없는 마케팅은 빈 수레다. 요란할 뿐 내실은 없다. 지난 2000년대 초까지 삼성전자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LG전자는 지금 '평범한 기업'으로 전락을 우려한다. LG전자가 제품 개발이나 품질 개선보단 마케팅에 치중하면서 경쟁사와 격차가 벌어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소니가 반면교사다. 탈(脫) 일본을 꾀하며 영입한 첫 외국인 경영자 하워드 스트링거는 기술엔 문외한이었다. 서양식 경영기법을 도입하겠다던 스트링거는 취임 후 '최악의 손실'이란 성적표를 거듭 받았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빠르게 트렌드를 주도하는 경쟁사들도 눈여겨 보지 않았다. 그사이 소니는 상대라 생각지 않던 삼성전자에 뒤쳐졌다.

삼성이나 LG가 글로벌 평판TV 시장을 주도할 수 있었던 것은, 앞서 열거한 세가지 요소가 적절히 조화를 이뤘기 때문이다. 브라운관에서 승부를 보기 힘들다는 판단에,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불러왔다. 여기에 '보르도'라는 새로운 디자인을 입히고 베젤 두께를 절반으로 줄였다. 소니를 최고로 치던 미국인들이, 기꺼이 삼성 TV를 구매하기 시작했다.

'한국산=저품질'이란 공식을 깨기 위한 노력도 대단했다. 1990년대, 삼성전자서 근무했던 한 외국계 기업 임원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이건희 회장이 미국 시찰을 다녀오곤 충격을 받았다고 하더라. 한국선 그렇게 잘나가는 삼성 제품이 월마트에선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는 것이다. 왜 안팔리냐, 일본 제품을 뜯어보며 비교하더라. 직접 공장도 찾았다. 불량난 제품이 관행처럼 출고되는 것 보고선, 만들어 놓은 제품을 다 부시라고 노발대발했다.

지금 삼성 브랜드는 잘 팔린다. 안정된 품질과 세련된 디자인을 보장한다는 평가다. 그런데 삼성 최고경영진은 지금 계속 '위기'라며 '경고음'을 울린다. 권오현 부회장을 비롯, 이재용 사장 등 CEO급 인사들의 해외 출장도 잦다. 삼성이 가장 촉각을 기울이는 곳은 중국이다. 정치, 경제 구분 없이 중국내 주요 인사들을 만나고, 초대한다. 중국 시장에 관한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신중한 모습도 보인다.

중국이 내수를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가운데, 우리 기업들이 주목해야 할 부분은 '중국 밖'이다. 어차피 중국 시장은 난공불락이다. 당국의 집중 지원을 받는 중국 기업들이 내수 시장을 집어삼켰다. 중국의 추격이 무섭다면, 오히려 미국과 유럽 시장을 지키는게 빠르다. 중국 제품은 가격은 저렴하지만 아직 품질이나 디자인에서 한국 제품에 밀린다. 원가 혁신엔 강해도, 시장 판도를 뒤집을만한 제품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업계 전문가들은 중국이 한국산 제품의 디자인과 감성 등 세밀한 부분을 따라오는 데 5년은 걸릴 것으로 판단한다. 제품을 비슷하게 베끼는데야 두세달이면 충분하겠지만, '중국산=고품질'이란 신뢰를 쌓는 것은 1~2년으로 가능한게 아니다. 마케팅도 마찬가지다. 스포츠 등 고난이도 마케팅을 성공하기 위해선, 중국이 아직 더 세련되져야 한다는 지적은 귀기울일만 하다.

게다가 기업구조나 의사결정 방식도 한국과 다르다. 업계선 삼성전자의 결정적 경쟁력이 아이러니하게도 수직계열화에 있다고 판단한다. 삼성전자는 지난 1997년, IMF 구제금융 당시에도 돈 안되는 백색가전을 매각하지 않았다. 비용 부담을 안고도 부품과 완제품을 모두 끌어 안은 것이 결과적으로 삼성전자의 경쟁력을 키웠다. 어떤 제품을 만들던 대부분 삼성 내부에서 해결이 가능하다. 특허 소송 중에도 삼성에서 반도체칩과 디스플레이를 공급받는 애플과는 큰 차이다. 중국도 어느 한 기업이 삼성처럼 모든 걸 다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다만, 중국이 우수한 인재를 대거 흡수하고 있다는 점은 우리 기업들이 경계해야 한다. 혁신은 결국 사람에서 나온다. 중국이 주춤하는 사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한국 기업들의 영광도 순간에 불과할 수 있다. 가장 잘 나갈 때 그 다음을 생각해야한다. 소비자 패턴을 잘 읽고 새로운 기술을 내놓되, 자가당착에 빠져선 안된다. 어려울수록 개발에 투자해야하고, 제조업에 충실해야 한다. 이것이 일본 기업이 주는 교훈이자, 중국을 추격을 따돌릴 수 있는 안전한 방법이다.

[한중일 IT 기업 현 주소는....]

(상) '수성' 택한 日기업...결국 몰락의 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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