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쫓아온다?" 안갯속 팍스 시니카

한중일 IT 기업 현 주소는....

일반입력 :2012/09/25 13:54    수정: 2012/09/26 10:25

남혜현 기자

한국과 일본, 중국은 닮은 듯 다르다. 위기를 기회로 커 나간 이력은 같되, 성장의 속결은 제각각이다. 새 기술 공정 패러다임을 만들어냈던 일본은 디지털 시대선 맥을 못 춘다. 프리미엄 시장으로 안착하며 급성장한 한국 기업 역시 뒤쫓는 중국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중국도 마찬가지. 엄청난 인구와 자본을 바탕으로 팍스 시니카를 꿈꾸지만, 중국 밖에서도 성공할 수 있을지 장담하긴 어렵다. <지디넷코리아>는 3회에 걸쳐 달라진 삼국의 IT 기업 판도를 분석하고, 앞으로 방향을 제시한다.[편집자 주]

16조5천억원 vs. 15조8천억원

시장조사업체 밀워드브라운이 올해 상반기 평가한 삼성전자와 하이얼 브랜드가치다. 중국 가전업체 하이얼이 삼성전자를 7천억원 차이로 바짝 뒤쫓았다. 삼성전자가 휴대폰과 평판TV, LED 모니터를 세계서 가장 많이 판다면, 하이얼은 세탁기, 냉장고, 냉동고 시장점유율 1위다.

또 다른 중국업체 레노버도 무섭게 떠올랐다. 경기 영향으로 침체된 올 상반기 PC시장서 20% 이상 판매 신장한 업체는 레노버와 삼성전자, 애플이 유일하다. 이중 레노버의 성장세는 경쟁사 대비 두드러진다. 레노버는 이 기간, 전년 동기 대비 28.9%나 점유유을 늘리며 델을 따돌리고 2위 자리를 굳혔다.

익명을 요구한 한 PC업계 관계자는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성장한 레노버가 역마진 정책을 사용, 각 국가별 점유율 올리기에 힘쓰고 있다며 한국 레노버도 국내 시장서 경쟁사와 동급 제품을 내놓으면 가격을 5%가량 적게 책정하는 방식으로 경쟁 중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몇년간 우리 기업들에 가장 익숙한 용어 중 하나는 '샌드위치 위기론'이다. 앞으론 막강한 기술력을 가진 일본이, 뒤로는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이 버티고 있어 우리 기업들이 그 사이에서 고전할 수 있다는 논리다. 한국 기업들이 몇몇 분야서 글로벌 1위를 차지하며 승리감에 도취했을 때,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위기의식을 강조하며 꺼내 유명해졌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 2007년에도 삼성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가 정신차리지 않으면 5∼6년 뒤 아주 혼란스러워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분히 중국 경제 성장을 의식한 발언이다. 5년이 지난 지금, 중국의 추격은 더 빨라지고 있다. 삼성전자나 LG전자가 TV, 스마트폰 등을 선보이면 2~3개월 안에 이와 유사한 제품을 중국 업체들이 선보이는 추세다.

그럼에도 경제 전문가들은 중국 업체들의 선전이 우리 기업에 당장 큰 타격을 주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지난달 열린 유럽 가전전시회 'IFA'서도 윤부근 삼성전자 사장은 필립스 TV가 2년전 모델 디자인과 시리즈명까지 모두 따라했다고 한탄했지만, 돌아서 나오는 길엔 마감재나, 디테일한 부분에서 아직까지 우리의 경쟁상대라고 보지는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중국 업체는 보급형 시장, 한국 기업은 프리미엄 시장으로 아직 활동 영역이 다르다는 말도 덧붙었다.

중국업체도 비교적 느긋하다. 당장 한 두해 안에 한국기업이 차지한 프리미엄 시장을 겨냥하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대신, 보급형 제품으로 글로벌 시장을 노렸다. 미국이나 유럽내 이름 없는 채널 브랜드에 들어가는 TV 중 다수는 중국 제품이다. 스마트나 3D 기능이 없는 대신 화면이 큰 저가 TV를 원하는 소비자들의 심리를 읽었다. 제품의 질은 다소 떨어지더라도 우선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겠다는 전략이다.이런 가운데 중국은 유명 글로벌 기업들의 생산기지를 자국내로 유치, 제조 역량을 쌓아가고 있다. 중국이 세계의 굴뚝이 된지는 오래. 전세계서 가장 사랑받는 스마트폰인 애플 아이폰도 중국서 만들어진다. 타이완 혼하이정밀이 소유한 폭스콘은 중국내 심천과 곤양 등 14개 도시에서 공장을 운영 중이다. 삼성전자도 최근 PC나 프린터 공장을 다수 중국으로 이전했다.

게다가 중국은 아직 여유가 있다. 내수 시장이라는 애피타이저도 절반만 뜬 상태다. 안현승 디스플레이서치 대표는 중국은 일본과 달리 느긋하다. 조금 더 길게 본다. 중국을 겉에서 보면 화려하지만, 국민소득과 인구 분포 등을 살펴봤을 때 아직 그 안에서 성장해야 할 요소가 많이 남아 있다고 평가했다.

물론 한계는 있다. 팍스 시니카는 역설적으로 중국이 중국을 뛰어 넘어야 가능하다. 아직까지 중국산 제품의 경쟁력은 보급형 시장에 한정된다. '메이드 인 차이나'의 장벽은 생각보다 크다. 중국도 이를 알고 있다. 하이얼이 산요를 인수한 것도, TP비전이 필립스 TV사업부를 인수한 것도, 해외 시장서 중국 브랜드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한 선택이다.

눈여겨 볼 점은 중국의 노력이다. 우선 자국의 영향이 미치는 앞마당 다지기에 먼저 나섰다. 타이완과 경제 통합이 우선적 노력이다. 중국 당국은 이달초 타이완 중앙은행과 화폐청산 양해각서를 체결, 미국 달러화 대신 위안화나 대만달러화로 무역 결제를 하기로 합의했다. 양해각서가 효력을 가지는 11월부터, 중국과 타이완 내 기업들은 더 이상 미국 달러를 사용하려 수수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중국 기업들의 성장과 달리 타이완 기업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레노버가 성장하는 것에 비교하면 에이서의 추락은 날개가 없다. HTC도 마찬가지다. 이 회사는 안드로이드 진영에선 삼성전자에 이은 글로벌 2위 업체지만, 최근 4세대(G) 롱텀에볼루션(LTE)로 트렌드가 넘어가며, 점유율을 빠르게 잃고 있다. 화웨이, ZTE가 늘리는 점유율 상당수는 타이완 기업이 잃어버린 것이다. 타이완 기업들이 가장 긴밀하게 협력하면서도, 가장 경계하는 대상이 중국 기업인 이유다.

[한중일 IT 기업 현 주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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