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스마트워크'나 '클라우드 컴퓨팅'이나 '빅데이터'같은 IT 흐름에 맞춰 그럴듯한 활성화 대책을 꾸미곤 한다. 산업진흥을 목적으로 채워넣은 부속사업은 실태조사, 시범서비스 추진, 지원과 정보공유 체계 마련, 제도 개선 등 틀박힌 내용이다. 이가운데 '전문가 자격증 제도 도입' 부분은 특히 현업의 빈축을 산다.
어떤 기술분야 자격증이 필요한 이유는 산업진흥에 맞물려 필요한 전문인력을 효율적으로 지원하기 위해서다. 해당 분야 자격증을 갖춘 사람에 대해 그 검증 절차가 요하는 실무능력을 갖췄다고 봄으로써, 전문인력을 요하는 기업 수요와 유망분야를 지망하는 구직자의 경쟁력을 맞물리게 하는 효과다.
그리고 현업 수요에 맞는 전문가 자격증 제도를 운영하려면 그 영역을 아우르는 전문성은 기본이고 단기간에 바뀌어버릴 수 있는 세부 내용들을 끊임없이 유지관리해 줘야 한다.
업계가 특정 영역의 전문가 자격증 인증체계를 정부주도로 한다는 발상에 회의적인 까닭은 크게 2가지로 요약된다. 일단 해당 분야에 무지한 정부가 나서서 해낼 수 있을 만큼 만만한 사업이 아니라서다. 또 이보다 더 큰 문제는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가는 IT 산업계 트렌드를 빠르게 맞춰갈 정도로 정부가 유연한 조직일 수 없어서다.
IT분야 글로벌 인증시험 운영업체 서티포트의 레이 켈리 최고경영자(CEO)도 이 논지에 동조할 뿐아니라 전문인력 생태계에서의 정부 역할에 회의적인 인물이다. 그는 최근 지디넷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도 이를 강조하며 국내외 자격인증제도 사업 체계의 트렌드와 타국 정부와의 협력사례를 소개했다.
켈리 CEO는 지난주 서티포트 국내 협력사인 소프트뱅크커머스코리아가 여의도 63시티에서 연 '디지털커뮤니케이션서밋2012'에 참석키위해 방한했다. 비주얼커뮤니케이션이 강조되는 추세에 자사가 '디지털리터러시' 역량에 기반한 취업준비와 기술교육을 어떻게 지원하는지 알리기 위해서다. 현장에선 어도비 소프트웨어(SW) 인증프로그램 'ACA' 소개와 오토데스크 SW 인증프로그램 'ACU' 국내 도입이 화두였다.
아래는 켈리 CEO와의 1문1답이다.
-일단 비즈니스모델이 어떻게 되는지, 방한 기간이 다른 글로벌 업체 임원보다 긴 이유도 궁금하다
서티포트는 인증시험을 개발하는 것부터 마케팅하고 세일즈하는 조직까지 포괄해 갖춘 조직이다. IT분야 전문기업인 파트너들의 기술을 다루는 능력을 검증하는 시험을 개발해 (라이선스를) 판매하고, 소프트뱅크커머스같은 지역별 협력사들이 운영하는 테스트센터와 협업한다.
방한이 길어진 이유는 한국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서티포트에게 크고 중요한 시장이다. 주요 고객을 알고 파악하기가 중요한 만큼 시간을 보내는 거다. 어도비, 오토데스크, 마이크로소프트(MS)같은 SW파트너와 그 고위 임원들 미팅을 진행했다.
-서티포트에게 국내 시장이 얼마나 중요한가
서티포트가 전세계 지원하는 시험 언어 27개국어가운데 한국어가 영어 다음으로 큰 수요를 보인다. 사실 아시아권에서는 지난 1998년 미국과 동시에 사업 시작한 일본 지역이 한국보다 먼저였다. 한국에 들어온 건 2002년 MS 오피스전문가(MOS) 내놓으면서다. 10년간 한국 순위는 매달 집계되는 순위로 미국, 일본과 함께 3위권에 꾸준히 들었다.
여담이지만 MOS 통과율이 가장 높은 나라도 한국이다. 숫자를 밝힐 수는 없지만 통과율이 높다보니 MOS 기본 수준보다 더 전문적인 '익스퍼트' 레벨 자격을 만든 것도 한국 때문이었다.
-자격증 인증사업의 가치를 간단히 말하면
우선 서티포트는 인증사업을 통해 산업분야내 개인에 요구되는 스킬을 갖췄는지 확인해 준다. 기술발전과 현장에 적용되는 속도가 빠르다. 기술을 개발한 기업들도 이를 시장에 계속 적용시켜야 한다. 인증사업은 사용자들이 최신기술을 접하고 배우도록 돕는 거다.
또 한국을 포함해 전세계적으로 고용주들이 마주한 문제가, 실업률은 높은데 조직에 필요한 적임자를 못 찾는 상황이다. 이걸 '스킬갭'이라고 표현한다. 옥스포드이코노믹스의 글로벌 경제인력 조사에 따르면 한국에서 스킬갭 문제는 오는 2021년까지 세계 7번째로 커질 전망이다. 우리는 이런 상황에 처한 기업과 구직자를 엮어 도와줄 수 있다.
-포트폴리오를 중시하는 업계 현장에서는 자격증의 가치를 낮춰보고 있는 듯한데
그렇지 않다. 포트폴리오는 창의력을 보여줄 뿐이고 서티포트 인증은 그 창의력을 발휘하기에 필요한 '테크놀로지 스킬'을 증명한다. 구직자에겐 둘 다 필요한 능력이다. 포트폴리오를 통해 제시되는 창의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도구를 다룰 줄 아는 기초 역량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 자격인증이 된 사람의 이력서가 고용주들의 채용 검토 과정에서 우선순위에 들게 된다. 창의력 발휘를 위한 기술 역량을 보여줄 자격증으로 ACA와 ACU가 유일무이하다.
-글쎄, 우리나라는 자격증을 너도나도 따버려서 실제 구직난 해결이 안 된단 비판도 있는데
응시자들이 스펙을 차별화하려 노력하는 열의가 큰 경쟁적 시장이라 그런 것 같다. 포인트는 사람들이 ACA, ACU, MS오피스전문가(MOS) 같은 인증시험을 준비할 때 이를 실제 다루는 방법을 학습한다는 사실이다.
자격증의 가치는 그걸 가진 사람이 자격에서 요구하는 능력(스킬)을 갖췄단 객관적 증명이 된다는 점이다. 이력서에 스스로 '어떤 능력에 대해 전문성을 갖췄다'고 주장하는 것과 어떤 자격증명을 제시할 수 있는 것 사이의 설득력 차이다. 토익이나 토플같은 영어 능력시험이나 마찬가지다.
-이번에 소개한 ACA와 ACU 인증프로그램의 특징은
각각 어도비와 오토데스크 SW를 다루기 위한 전문기술을 검증하는 시험이면서, 입문자 수준(entry-level) 내용을 다룬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막 학교를 졸업한 사회 초년생들이 첫 직장을 구하기 위해 치를만한 시험이라 보면 된다.
그리고 어도비 ACA는 그 회사가 포토샵, 프리미어, 드림위버 등 크리에이티브스위트(CS) 제품군 사용 능력에 대해 공인받을 수 있는 유일한 인증시험이다. 오토데스크 ACU도 인벤터, 오토캐드에 대해 같은 맥락으로 인정해주는 유일한 자격증명이다.
-고급 수준 스킬에 대한 인증체계도 있단 얘긴가
MS, 시스코, HP, 어도비, 오토데스크, 어느 기술이든 인증시험 체계는 그 내용 수준에 따라 피라미드구조를 취한다. 최상위 계층에는 시스템 아키텍처 뒷단까지 꿰야 가능한 최고 전문가 수준이 있다. 그 전단계로 이미 IT전문가에 해당하는 직군에 필요한 중간수준 인증 프로그램이 있다. 엔트리레벨은 피라미드 맨 밑에 놓인다.
피라미드구조의 윗단계를 구성하는 전문가 레벨 인증방식은 해당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들이 스스로 만든다. 다만 그걸 운영하는데 필요한 테스트센터는 아웃소싱해야 하는데 '피어슨뷰'라는 회사가 유명했다. 서티포트는 입문용 시험 개발을 아웃소싱해온 전문성으로 지난 5월 피어슨뷰에 인수됐다.
서티포트가 직접 개발해 내놓은 고급수준 자격증도 있다. 클라우드컴퓨팅 관련 스킬을 측정하는 HP 'ATA' 시험이다. 취득에 2년정도 걸리기 때문에 ACA나 MOS에 비하면 어려운 편이다.
-클라우드 자격증? 국내서도 응시할 수 있나
아직 한국에서 안 되고 있는데, 곧 가능해진다. 모바일과 하이테크에 대한 시장 요구가 늘어나는 추세다.
-우리나라 정부는 클라우드 컴퓨팅이나 빅데이터같이 '핫'한 기술 트렌드가 떠오르면 그 자격인증같은 걸 추진하기도 하는데, 좋은 생각일까
클라우드컴퓨팅은 오늘 다르고 내일 또 다르다. 기술은 변화가 엄청나게 빠른 반면 정부는 너무 느리다. 일례로 오피스 사용능력을 검증하는 MOS만 봐도 최신 오피스 버전에 맞춰 몇년마다 시험 내용을 유지해나가야 하는데 정부조직은 그마저 쉽지 않나 싶다. 정부가 주도하는 산업관련 인증사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산업은 산업계에서 가장 잘 안다. 산업부문에 대한 인증은 민간부문의 기업이 더 빨리, 잘,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그게 서티포트의 강점이기도 하다. HP, MS, 시스코같은 기업들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항상 최신 내용을 빠르게 반영할 수 있다.
-서티포트가 진출한 다른 나라에서 정부와 협력한 사례가 있나
이라크가 전쟁을 끝낸 후 현지 IT전문인력 수요가 크게 늘었다. 서티포트는 이라크 정부와 손잡고 (IC3라 불리는) 공공기관용 디지털리터러시 테스트 체계를 대체했다.
이 테스트는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인터넷에 관한 기술 시험이다. 현지인력들이 해외 출장이나 파견근무시 비자발급에 필요한 것인데, 기존 정부 인증체계는 최신 버전으로 유지되지 못해 너무 구식이었다.
이밖에 다른 50여개국 정부에서도 각자 디지털리터러시 인증체계를 갖추고 있는데 서티포트 프로그램으로 바뀌는 경우가 많다. 정기적으로 바뀌는 내용에 맞춰 일일이 업그레이드하는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회사에선 '디지털리터러시 카운슬'이라는 주요 회원사 협의체를 통해 정부가 산업계의 연계성을 지원하고 있다.
-현 파트너와 경쟁관계인 타사 기술인증시험을 만들 생각은 없나? 어도비 대신 코렐, 오토데스크 대신 솔리드웍스, MS 대신 구글 등이 있는데…
관련기사
- 소프트뱅크커머스, 21일 '비주얼·소셜로 통하라'2012.09.27
- "한 장의 임팩트, 인포그래픽에 주목하라"2012.09.27
- 방통위, 빅데이터 산업 활성화 나선다2012.09.27
- 한국생산성본부 "IT대기업 가려면 이 자격증"2012.09.27
음, 물론 (마음만 먹으면) 할 수도 있긴 하다. 구글에서 '구글닥스 인증시험'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긴 했다. 재미있는 아이디어긴 하지만…그 사용자 수가 (MS 오피스 사용자에 비해) 상당히 적은 편이라 안 했다.
하지만 우리가 손잡는 파트너를 가리는 기준은 그가 실질적인 '마켓 리더'인지 여부다. MS도 전세계 제품 사용자가 7억5천만명 가량으로 독보적 선두업체다. 건축, 엔지니어링, 디자인 분야에서 오토데스크는 리더였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디자인 영역에서 어도비도 앞서가는 크리에이티브 전문 솔루션 업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