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지업계 CEO 한자리에, 그곳에선…

일반입력 :2012/09/10 14:44    수정: 2012/09/10 15:18

세계 외장형 스토리지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주요업체 CEO가 한자리에 모일 기회가 마련됐다. 업계 1위 EMC, 질주하는 넷앱, ‘우리도 스토리지’를 외치는 델 등의 CEO 들이 공식석상에 모여 선문답을 나눴다.

지난달 VM웨어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한 ‘VM월드2012’ 컨퍼런스에서 가장 화제를 모은 세션은 첫날인 27일의 ‘CEO 라운드 테이블’이었다.

이 세션엔 VM웨어의 당시 CEO였던 폴 마리츠와 차기 CEO인 팻 겔싱어가 참여했을 뿐 아니라, 조 투치 EMC 회장 겸 CEO, 톰 조젠스 넷앱 CEO, 마이클 델 델 CEO가 참석했다.

크리스 앤더슨 와이어드 편집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 세션에선 특별히 민감한 대화는 오가지 않았다. 모바일, 소셜, 클라우드 컴퓨팅, 소프트웨어 정의 데이터센터(SDD), 빅데이터 등 IT업계의 현안에 대한 각 회사 수장들의 의견이 오갔다.

토론에서 나온 여러 언급들은 특별할 게 없었지만, 그림 자체가 흥미를 유발했다. 평소 서로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 스토리지시장 1, 2위 업체의 두 CEO가 얼굴을 마주했고, 기업용 솔루션시장에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하며, 스토리지업계의 다크호스로 떠오른 델의 CEO도 자리에 앉았기 때문이다.

■마이클 델 “우리도 스토리지 있어요”

VM웨어의 새 수장으로 자리를 옮기는 팻 겔싱어는 이날 과거 경쟁관계였던 톰 조젠스 넷앱 CEO, 마이클 델 CEO 등과 전과 달리 긴밀히 협력해야 하는 반전 상황을 미리 맛봤다.

지루한 토론이 진행되던 중 마이클 델 CEO가 던진 농담 한마디가 행사장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마이클 델은 IT현안과 그에 대한 솔루션의 역할을 언급한 후 “우리도 스토리지 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행사장을 웃음바다로 바꾼 한마디였다.

순간 조 투치, 톰 조젠스 등의 얼굴표정이 변했다. 웃는지, 굳어지는지 모를 야릇한 표정이었다. 팻 겔싱어는 마이클 델의 발언이 의외의 호응을 얻자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 애썼다.

델 CEO의 ‘우리도 스토리지 있다’라는 발언은 떼어놓고 보면 웃긴 말이 아니다. 하지만 그 말을 한 인물이 델이란 점이 중요하다. 델은 이퀄로직, 컴펠런트 등 스토리지 하드웨어 업체를 인수했고, 백업, 보안, 중복제거 등 데이터관리를 위한 솔루션업체를 다수 사들였다.

스토리지업계 1, 2위 업체 수장들이 이를 단순한 농담으로 받아들였을리 만무하다. 이제 막 스토리지 사업을 본격적으로 벌이면서 깜짝 투자를 이어온 마이클 델의 발언은 그 공격성이 어느때보다 날카롭기 때문이다.

이날 CEO 라운드 테이블 참여 인사의 면면을 보면 서버까지 판매하는 회사로는 델이 유일했다. HP나 IBM을 제치고 델이 엔터프라이즈 IT시장 현안을 논의하겠다며 나선 것이다.

마이클 델은 이 자리에서 기업 업무환경에서 모바일과 소셜미디어 시대를 맞이한 기업 IT조직의 역할과 그들의 도전과제 등을 언급했다.

■‘견원지간’ EMC-넷앱, VM웨어 앞에 서면

EMC의 조 투치 CEO와 톰 조젠스 CEO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지 않았다. 일설에 따르면, 조 투치 회장은 “총이 있다면 누구를 쏘겠느냐”는 질문에 “첫째도 둘째도 넷앱”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EMC의 마케팅과 제품명엔 넷앱을 의식한 흔적이 곳곳에 드러날 정도다.

이런 스토리지업계의 주요 수장들을 한자리에 끌어낸 VM웨어의 힘이 눈여겨볼 대목이다. VM웨어는 지난해부터 스토리지 가상화를 위한 작업을 가속화하고 있다. 각 벤더별로 특화된 하드웨어 기반의 각종 기술들을 SW로 단일화하는 작업이다.

VM웨어는 v스피어5 이후 스토리지 가상화 관련 기능을 대거 집어넣고 있다. 스토리지 티어링(VASA), 어레이 통합(VAAI) 등의 기능들이 대표적이다. 궁극적으로 VM웨어는 스토리지업체에 상관없이 VM웨어만으로 단일창에서 정책기반 관리를 수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올해 네트워크까지 합쳐 소프트웨어정의데이터센터(SDD)를 강조하고 나섰다.

VM웨어 덕분에 서버업체의 개성이 사라졌듯, 스토리지도 각 업체의 특색이 사라질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VM웨어의 상징인 'VM몬스터‘는 EMC, 넷앱, 델 등의 개성을 하나하나 잡아먹으려 미소짓고 있다.

조 투치 EMC 회장은 VM웨어 모기업의 총수다. 통념상 VM웨어 CEO는 자회사 대표직으로 EMC 회장과 나란히 서서 토론을 벌일 정치적 위치가 못된다. 하지만 올해 VM월드 행사장 무대 한가운데 선 VM웨어 전현직 CEO와 EMC 회장의 높낮이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히려 EMC, 넷앱, 델 등의 세 수장들이 일반적인 현안에 의견을 피력한 반면, VM웨어를 대표해 참석한 폴 마리츠와 팻 겔싱어는 구체적인 회사 전략과 비전을 강조하는 모습이었다. 각 CEO들이 현안과 문제점을 화두로 던지면, VM웨어가 어떤 방식으로 해법을 제공할 수 있는지 답하는 형태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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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마리츠와 팻 겔싱어는 VM웨어의 데이터센터 관리 및 자동화 비전을 구체적으로 설명했고, 보안에 이르러 VM웨어 엔드유저컴퓨팅 솔루션 비전을 언급했다.

현재 스토리지업계는 어느 때부턴가 VM웨어의 신규 솔루션 발표 시점에 맞춰 VM웨어와 긴밀한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헤게모니가 스토리지업체에서 VM웨어로 완전히 넘어간 인상마저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