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오는 12일 뭔가를 발표한다. 그 뭔가가 무엇인지에 대해 지금까지 전 세계 거의 대부분 언론이 ‘아이폰5’라고 입을 모으고 있지만 사실 공식적으로 애플이 발표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직까지는 ‘뭔가’로 지칭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다만 그 뭔가를 대세에 따라 아이폰5라고 가정하자. 아마 우리나라에서도 애플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밤을 새며 애플의 발표를 실시간으로 볼 것이다. 그리고 많은 소비자들과 언론은 애플이 더 이상 혁신적이지 않다고 지적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 루머대로라면 그렇다. 화면이 4인치로 더 길어지는 것은 혁신이 아니다. 넓은 30핀 충전 커넥터가 작은 9핀으로 바뀌어도 마찬가지다. 인셀 방식의 터치스크린 역시 애플이 창조한 혁신이 아니다. 게다가 소비자 입장에서는 별로 와 닿지도 않는 부분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이 이미 충분한 하드웨어 경쟁으로 현재 쓸만한 기술 대부분을 선보였다. 과거 애플이 혁신적이라는 평가를 받은 이면에는 새로운 하드웨어 기술을 진보적으로 받아들인 점이 컸다. 애플은 레티나 디스플레이나 썬더볼트와 같이 아직 시장에서 검증받지 않은 기술을 받아들여 이를 순식간에 대세로 만들어 버렸다.
애플에 뒤처진 경쟁사들은 애플을 뛰어넘기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하드웨어를 강화하는 선택을 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를 가진 애플과 당장 경쟁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자, 아이폰보다 우리 제품이 낫다고 선전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기도 했다. 화면은 최대 5.5인치까지 커졌고 다양한 신기술이 도입됐다. 1년에 한 번씩 신제품을 내는 애플에게 부담스러울 정도로 몰아붙였다. 이제 애플이 화면을 4인치로 키워도 이는 마치 마지못해 따라하는 듯한 인상만 주는 꼴이 됐다.
그러나 무엇보다 12일 발표가 별로 놀랍지도 혁신적이지도 않을 이유는 이미 아이폰5가 발표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다들 크게 의식하지 않고 있을 뿐이지 사실 애플은 이미 지난 WWDC에서 아이폰5의 90% 가량 공개했다. 아이폰의 운영체제인 iOS6가 바로 아이폰5이기도 하다. 기계는 기계일 뿐이고 그 기계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애플은 줄곧 운영체제를 먼저 발표하고 이후 제품을 공개하는 전략을 펼쳐왔다. 이는 앱스토어에서 활동하는 개발자들에게 적응할 시간을 주는 것과 함께 일정 기간 테스트로 출시와 동시에 가장 안정되고 완벽한 신제품을 선보이기 위한 포석이다.
이러한 이유로 아이폰5가 발표되더라도 반응은 미지근할 것으로 보인다. 아이폰4S에서 한번 실망한 소비자들은 이제 애플이 예전만 못하다고 생각할 것이고, 경쟁업체는 이를 빌미로 아이폰5를 더욱 깎아내리려 할 공산이 크다. 벌써부터 “스티브잡스가 없는 애플은 더 이상 혁신이 없다”는 수많은 댓글 들이 눈에 선하다.
애플이 아무도 모르게 UFO라도 주워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새로운 하드웨어를 꺼내들 가능성도 아주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앞으로 당분간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어차피 애플이 사용하는 모든 하드웨어 기술과 부품은 애플과 다른 회사에서의 협력을 통해 나오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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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들이 바라는 대단한 혁신에 대해 애플이 부응하지 못하는 것은,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 애플이 계속 독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물론 당장 아이폰5는 아니지만 그 이후에라도 애플은 얼마든지 이러한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잠재력은 충분하다. 다만 그 과정이 점점 더 치열하고 힘들어졌다.
애플은 집요하리만치 일관된 정책을 추구한다. 좋게 말하면 장인정신이고 나쁘게 말하면 고집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iOS6에 대한 철저한 분석없이 아이폰5의 혁신을 논하는 것은 다소 성급한 판단이다. 가령 iOS6의 혜택을 기존 아이폰 이용자들도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야 말로 애플이 선사하는 최고의 혁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