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숨막히는 1시간, 삼성-애플 법정에서...

일반입력 :2012/08/24 15:56    수정: 2012/08/24 16:38

남혜현 기자

애플측 변호인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기자들이 바쁘게 뒤쫓으며 항소할거냐고 물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지법 정문을 나서기 직전 둘러싼 기자들에 애플 변호사가 굳은 얼굴로 남긴 한 마디는 지금은 말하는게 적절치 않다였다.

24일 오전 11시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법정 352호. 재판 시작 2시간 전부터 기다리던 기자들로 법정 안은 서있을 자리도 없을 만큼 사람으로 가득찼다.

누가 유리하냐, 제소된 특허 항목 15개 중 핵심은 무엇이냐, 오늘 판결이 미국 평결에 영향을 미칠 것이냐를 논의하던 목소리가, 배준현 부장판사 등장과 함께 조용해졌다. 녹음기는 물론, 전화와 노트북도 전원이 꺼졌다.

배준현 판사는 판결문 낭독에 앞서 양측 대표를 찾았다. 그러나 소송 제기 당시 삼성전자 대표였던 최지성 삼성 부회장과 도미니크 오 애플코리아 대표는 이날 법원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원고와 피고석엔 양측 법률대변인들이 자리했다.

변호인단 확인 후, 판사는 낮은 목소리로 선고문을 읽었다. 삼성전자가 원고로 제소한 표준특허 4건과 비표준특허 1건 중, 표준특허 2건에 대해 애플 침해를 인정한다는 내용이었다.

삼성측 특허권이 소진됐으며, 프랜드(FRAND·특허를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으로 제공해야 함)선언을 위반했다는 애플 측 주장도 기각됐다. 판결 이유를 설명하는 목소리는 차분했다.

배 판사는 인텔이 자회사인 IMC로 하여금 모뎀칩을 제조해 애플에 납품하도록 한 행위는 라이센스 계약상 허용된 제조위탁 범위를 초과한다며 위 모뎀칩이 인텔 라이센스 제품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특허권 소진 이론이 적용될 여지가 없다고 판결했다.

프랜드에 대해서도 삼성전자와 애플이 상호간 성실하게 특허 사용을 논의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애플이 성실한 협상을 하기보단, 프랜드 선언을 한 표준특허에 대해 침해금지청구를 회피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봤다. 실시료 산정도 협상보단 소송으로 정하는 길을 택했다는 것이다.

쉴새없이 판결을 받아적던 방청석 기자들 사이에선 삼성이 이긴 것 아니냐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곧이어 공은 애플로 넘어갔다. 애플 변호인들이 원고석에 앉았고, 재판은 속개됐다.

이미 표준특허 침해 판결을 받은 이상, 디자인침해 판결을 받아내지 않으면 향후 진행될 실시료 협상서 불리한 입장에 놓일 애플이었다. 삼성보다 두배 많은 10건의 특허 침해를 주장한데다 핵심인 디자인 침해 판결을 앞둔터라 변호인석엔 긴장감이 감돌았다.

재판이 시작되기전, 애플은 디자인 특허에 관해 자신감이 있었다. 비슷한 시기, 평결을 앞둔 미국 법정서도 삼성이 알면서도 애플 제품을 모방했다는 내용의 문건이 증거로 공개되며 애플에 유리한 분위기가 감지된다는 외신이 잇달아 보도됐다. 이같은 보도가 한국 법정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달랐다. 재판부는 10건의 특허 중 1건만 인정했다. 대부분 특허에 대해 선행발명에 이미 그 구성요소가 모두 공지된 발명으로서 신규성 흠결의 무효사유가 있다고 선언했다.

특허로 인정된 '바운싱백' 기술도 삼성전자엔 별로 뼈아프지 않았다. 이 기술은 전자문서의 가장자리를 넘어설 경우 손가락 터치 조작 속도가 느려지는 것을 말하는데, 삼성은 지난해 바운스백을 대체할 기술을 마련, 신제품에 도입한 상태다.

애플에 치명타는 디자인 특허를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재판부는 모서리가 둥근 직사각형과 이를 둘러싼 베젤, 정면에 큰 직사각형 모양 화면이 있는 점, 화면 상단에 좌우로 긴 스피커 구멍이 표시된 것 등 애플이 주장한 고유한 심미성이 이미 다른 제품서도 공지된 것이라고 판결했다.

놀라운 것은 재판부가 갤럭시S의 디자인 독창성을 논한 것이다. 배 판사는 갤럭시S에 머리장신구인 '비녀' 형태 곡면을 채택한 것은 독창적이라며 제품 배면에 부가한 촘촘한 작은 원형 무늬와 카메라 테두리 등도 애플과 다르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재판부는 판결 말미에 특허 침해가 인정된 삼성전자와 애플의 모바일 제품 등을 양도·대여를 금지하며, 영업소와 창고에 보관 중인 제품도 폐기하라고 선고했다. 또 삼성전자와 애플은 각각 상대편에 특허침해로 인한 손해배상 2천500만원과 4천만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삼성전자와 애플은 아직 판결에 공식적인 입장표명을 하지 않았지만, 곧 항소절차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법원에 따르면 항소는 판결문이 송달된 후 14일 이내에 신청할 수 있다. 판매금지 집행정지 가처분도 신청할 전망이다. 법원 관계자는 아직 집행금지 신청은 들어오지 않았으나, 양사가 이를 신청할 가능성은 90% 이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