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을 앞두고 한국과 일본의 누리꾼 간 역대 최악의 ‘사이버대전’이 펼쳐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며칠새 벌어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런던올림픽 한일 축구경기 ‘독도 세리머니’ 등을 놓고 한국과 일본 양국의 ‘반일’ ‘반한’ 감정이 좀체 사그라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탓이다. 최근엔 가수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세계적 화제를 모으면서 유튜브에 이 곡이 일본 노래라는 글들이 올라와 양국 누리꾼들이 설전을 벌이고 있다. 사이버 공간에선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되자 이번 한일 사이버전은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이에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은 ‘반크’ ‘독도수호대’ ‘사이버독도닷컴’과 같은 독도 관련 사이트에 모니터링 인원을 추가 배치하며 대응책 마련에 나선 상태다. KISA는 유사시에는 일본 내 관련 기관과 공조한다는 방침이다.
한국과 일본 누리꾼들은 지난 2001년 3월을 시작으로 매년 광복절과 삼일절이면 사이버 전쟁을 벌여왔다. 때마다 독도와 동해 표기 문제, 역사 교과서 왜곡 사건 등이 계기가 됐다.
2010년에는 한일 양국 싸움에 미국 FBI가 연관될 뻔한 일도 있었다. 삼일절에 맞춰 일본 내 대표 혐한 사이트로 분류되는 ‘2ch’가 국내 누리꾼에게 공격을 당해 게시판 30여 개가 다운되는 일이 발생하자 해당 커뮤니티 서버를 관리하는 미국 업체가 FBI에 수사 의뢰를 검토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2ch 공격을 선언한 국내 인터넷커뮤니티 ‘넷테러연합’의 운영자 아이디가 해킹되면서 공격 시도 자체가 무산되는 해프닝도 일어났다.
올해는 어느 해보다 유례없이 심상찮은 전운이 감돌고 있다. 현재 양국 누리꾼들 사이에서 가장 뜨겁게 논쟁이 불붙은 사건은 한일전 승리 후 올림픽 축구대표팀의 박종우 선수가 관중석으로부터 넘겨받은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뛰다 동메달 박탈 위기에 놓인 일이다.
일본은 박 선수의 세리모니가 정치적 의도를 품었다며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했고, IOC는 일본 측 항의를 받아들여 박종우를 메달 수여식 참가자 명단에서 제외했다.
이와 관련 한일 누리꾼들은 온라인상에서 즉각 맞붙었다. 2ch에 “올림픽 정신을 기만한 저급한 행위” “한국 동메달 자체를 취소해야 한다” “박종우를 축구계에서 영구 퇴출시켜야 한다” 등의 원색적인 비난글이 올라오자 한국 누리꾼들도 인터넷 커뮤니티, SNS 등을 중심으로 “정치행위가 아니라 사실을 표현했을 뿐. 우리땅을 우리땅이라 하는게 왜 문제인가” “박종우가 잘못이라고 말하는 건 독도가 분쟁지역임을 인정하는 행위다. 그들이 메달을 빼앗는다면 국가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등의 의견을 쏟아냈다.
우리 누리꾼들은 한발 나아가 일본 체조 선수들이 욱일승천기를 형상화한 유니폼을 입고서 경기에 출전한 것을 문제삼고 나섰다. 정치적 의도를 쟁점화해 시시비비를 가리자는 맞불 작전이다.
욱일승천기는 일본제국주의의 상징으로 주로 일본 극우 집단이 야스쿠니 신사 등에서 행진하거나 시위를 할 때 사용한다. 누리꾼들은 이 욱일승천기가 일본이 1940년대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뒤 ‘대동아기’로 불렸으며 위안부, 강제징용, 학살 등의 전쟁범죄와 연결된다는 사실에 특히 목소리를 높였다. 한 누리꾼은 “욱일승천기는 독일 나치의 하겐크로이츠(卐)와 같은 성격의 것”이라며 “IOC가 이를 문제삼지 않는다면 서구의 이중적인 잣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일전 전날 이뤄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에 관한 일본 여론도 연일 악화일로다. 마이니치 신문이 지난 11일부터 이틀동안 전국 성인 남녀 1천2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한국에 대한 감정이 변했냐는 질문에 악화됐다는 응답은 50%에 달했다. 국민 2명 중 1명이 한국에 대한 감정이 급격히 나빠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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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누리꾼 사이에선 “한국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명백한 선전포고로 불법침입으로 체포해야한다” “레임덕(정권 말 권력 누수 현상)을 겪고 있는 한국 대통령의 쇼”, “마치 귀가했더니 강도가 화장실을 점거하고 있는 것과 같은 상황” 등과 같은 극단적 반응도 계속 나오고 있다.
사이버전이 현실화되기 전, 외교적 대화를 통해 분쟁을 풀자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성동규 중앙대학교 신문방송학부 교수는 “독도, 올림픽 등 정치적 이슈에 대해 이성적인 자세로 대응하는 것이 실리를 취할 수 있는 방법”이라며 “민족주의 감정에 쉽게 편승하지 말고 인터넷문화를 스스로 점검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보안업계 관계자도 “사이버공격은 명백한 범죄 행위로 순간에 휩쓸려 가담해선 안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