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C 경영진 뒤섞기에 대한 분석들

일반입력 :2012/07/18 15:42    수정: 2012/07/18 21:02

EMC가 17일(현지시간) VM웨어 CEO를 교체하는 등 주요 경영진 인사를 발표했다. 조 투치 EMC 회장의 후계자 선임을 위해 후보자 검증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이와 함께 누가 조 투치 회장의 후계자에 더 근접한 것이냐를 두고 여러 의견이 나오고 있다.

EMC는 이날 폴 마리츠 VM웨어 CEO를 EMC 최고전략가로 임명하고, VM웨어 CEO 자리에 팻 겔싱어 EMC 최고운영책임자(COO)를 임명하는 등 5명의 경영진 인사를 발표했다.

EMC의 차기 회장 겸 CEO로 거론되는 인물은 현재까지 5명 정도다. 폴 마리츠, 팻 겔싱어, 데이비드 굴든, 하워드 엘리아스, 제레미 버튼 등이다. 이번 인사발표에서 이 5명 모두 자리를 이동하거나 기존보다 더 많은 업무책임을 맡게 됐다.

폴 마리츠는 EMC 복귀와 함께 EMC 이사회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팻 겔싱어는 EMC에서 벗어나 VM웨어란 SW회사를 경영하게 됐다. 데이비드 굴든은 CFO이면서 동시에 COO 역할을 맡게 됐다. 하워드 엘리아스는 정보인프라스트럭처서비스(ISS) COO 겸 사장은 EMC 솔루션그룹을 책임지게 됐다. 제리미 버튼은 최고마케팅책임자(CMO)이면서 제품 운영도 총괄하게 됐다.

팻 겔싱어가 맡아온 정보인프라스트럭처프로덕트(IIP) 담당업무도 데이비드 굴든 CFO에게 넘어갔다. 데이비드 굴든은 CFO, COO 외에 스토리지제품 총괄직까지 수행하게 된 셈이다. IIP 분야는 EMC의 핵심사업인 스토리지 하드웨어제품 판매를 총괄하는 요직이다. 때문에 데이비드 굴든이 그 많은 직무를 소화할 수 있겠느냐며 의아하다는 반응도 나왔다.

■EMC 복귀한 폴 마리츠 '개선장군' 될까?

폴 마리츠는 16일 언론보도를 통해 VM웨어 CEO직에서 해임될 것이란 루머에 휩싸였다. 가상화를 중심으로 한 인프라 사업보다 애플리케이션 분야로 확장해 사업 방향을 잘못 잡은 문책성이 될 것이란 소문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폴 마리츠는 EMC에서 VM웨어로 옮긴 지 4년만에 모기업에 복귀했다.

폴 마리츠는 마이크로소프트(MS) 출신으로 EMC 근무중 2008년 VM웨어 CEO에 임명됐다. 당시 조 투치 회장은 전임 VM웨어 CEO였던 다이앤 그린을 해고하고 폴 마리츠로 교체했다. 전례에 비춰 만약 문책성 인사였다면 폴 마리츠 역시 해고통보만 받았어야 했다.

폴 마리츠는 VM웨어 부임 당시 39.98달러였던 주가를 85달러대까지 끌어올렸고, 매년 25%씩 매출을 증가시켰다. 회계연도 2012년 1분기 매출은 10억6천만달러였다.

그는 최고전략가이면서 EMC 이사회에 이름을 올리게 됐고, 조 투치 회장에게 직접 보고하게 됐다. 오히려 조 투치 회장을 비롯한 EMC 이사회가 폴 마리츠를 후계자 경쟁에 더 깊숙이 끌어들였다는 평가가 나오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더레지스터는 폴 마리츠의 인사조치는 처벌이 아니다라고 평가했으며, 비즈니스인사이더는 “폴 마리츠가 EMC 조 투치의 후계자 경쟁에 포함됐다”고 해석했다.

그는 EMC CEO 직책에 관심이 없다고 밝혀왔다. 실제로 지난해 열린 'VM월드 2011'에서 만났던 폴 마리츠는 EMC CEO직에 대한 생각을 묻자 현재의 업무에 만족하고 있으며, EMC CEO는 생각해보지 않았다라고 답했다.

일부 외신은 폴 마리츠가 그동안 SW개발과 솔루션 사업 등에서 놀라운 실적과 경험을 쌓았지만, 정치적 역량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이번에 EMC 이사회 일원으로 합류하면서 정치적 경험을 쌓을 기회를 얻게 됐다.

EMC 내부의 소식통은 그가 EMC에서 VM웨어로 이어지는 ‘은하계’를 만들어낼 인물이며 차기 EMC CEO로서 매력적인 인물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선두주자 팻 겔싱어, 낙마인가 기회인가

팻 겔싱어는 인텔에서 30년간 근무하며 서버, 스토리지 등 인텔 엔터프라이즈 시스템 총괄 담당자를 지냈다. 그는 인텔 재직 당시 프로세서 핵심 기술 개발 및 전략의 수장이었다.

2009년 EMC에 합류한 그는 HP로 떠난 데이브 도나텔리의 후임을 맡았다. 2년 이상 스토리지 사업을 총괄해오면서 폭발적이지는 않았지만 두자릿수 성장세를 유지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VM웨어 CEO로 자리를 옮긴 것에 대한 내외 분석은 엇갈린다. EMC 밖으로 쫓겨났다는 분석과 함께 CEO로서 경험을 쌓는 기회를 얻었다는 분석이 공존한다.

팻 겔싱어는 그동안 차기 EMC CEO에 가장 유력한 인물로 거론돼 왔다. EMC의 핵심 사업을 맡은 점, 인텔 시절부터 쌓은 명성 등이 이유였다.

그의 VM웨어 이동에 긍정적인 의견은 하드웨어 사업색깔이 짙은 겔싱어 사장이 SW사업 경험을 쌓고, 경력을 풍부하게 만들 수 있게 됐다고 평가한다. IT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VM웨어와 EMC를 아우를 수 있는 인물로 재탄생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반면, VM웨어로 이동하면서 조 투치 회장의 시야에서 멀어져 자칫 경쟁자들에 뒤처질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더구나 팻 겔싱어가 맡아온 스토리지사업을 데이비드 굴든이 CFO를 유지하면서도 겸하게 된 것은 그가 경쟁에서 밀려났다는 방증이란 분석도 있다.

확실한 점은 팻 겔싱어가 고난도의 시험대에 올랐다는 점이다. VM웨어는 그동안 서버 가상화 솔루션으로 업계 독보적인 지위를 누려왔지만, 최근 MS, 오픈스택 등 경쟁세력으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다.

가상화 솔루션 시장이 어느정도 성숙기에 접어들었고, 트렌드가 클라우드 인프라 관리로 이동하면서, VM웨어 ESX 하이퍼바이저에만 국한되는 가상화 솔루션이 매력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조 투치 회장은 팻 겔싱어의 소프트웨어가 표준 하드웨어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지 유례없는 이해를 갖고 있다면서 뿐만 아니라 그의 x86 파트너 생태계에 대한 깊은 이해와 대규모 조직을 운영하면서 실적을 갱신해온 점에서 자연스러운 선택이다라고 밝혔다.

■데이비드 굴든, '재무-조직관리-비즈니스' 한번에 총괄?

데이비드 굴든 CFO는 이번 경영진 인사를 통해 가장 많은 고위직 업무를 수행하게 됐다.

숫자에 강한 그는 세일즈, 마케팅, 인수합병(M&A) 경험을 쌓았지만 엔지니어링이나 서비스 영역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다. 직책상 현재 EMC가 벌이고 있는 사업영역들의 제품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다고도 볼 수 있다.

영리기업에게 회계문서는 얼마나 많은 제품 매출과 순익을 끌어내느냐에 영향을 받는다. 당연히 기업 CEO는 자사 제품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갖고 있어야 한다.

재무책임자로서 역량은 탁월하지만 제품 라인업 관리 경험이 부족했던 그에게 이번 인사는 분명한 기회이자 어려운 숙제를 함께 안긴 것으로 보인다. COO, CFO, 솔루션 등 3영역은 가장 CEO직의 직무와 많이 겹친다. 얼마나 원활하게 직무를 수행하느냐에 따라 그의 미래가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제레미 버튼과 하워드 엘리아스, 여전한 후보

제레미 버튼 CMO도 전보다 자사 솔루션에 대한 기술적 이해를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하워드 엘리아스 사장은 팻 겔싱어 이전까지 EMC의 시스템사업부를 총괄했다.

두 사람 모두 전보다 많은 업무를 책임지게 됐다. EMC에서 맡은 역할이 늘어날수록 그들을 검증할 상황이 늘어난다. 이들 역시 여전히 조 투치 회장의 머릿속에서 후계자로서 남아 있음을 엿볼 수 있다.

EMC가 세운 회사규정에 따르면 조 투치 회장은 올해를 끝으로 물러나야 한다. 하지만 EMC 이사회는 만장일치로 그의 임기를 2013년으로 연장했다.

조 투치 회장은 이번 인사발표에 대해 2013년까지 직무를 유지한다고 밝히면서 '적어도(at least)'란 표현을 사용했다. 조 투치 회장이 내년을 넘어 2014년 이후까지도 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이번 EMC 경영진의 재배치는 후계자 선정을 위한 후보자 검증 작업이 본격화됐음을 뜻한다. 새로운 업무를 부여받고 전에 갖지 못했던 직무를 맡으면서 강점과 약점이 더 드러나게 될 것이다.

VM웨어로 떠났다가 돌아온 폴 마리츠와 VM웨어로 떠난 팻 겔싱어, CEO와 가장 많은 일을 하게 된 데이비드 굴든, 전보다 더 많은 일을 맡게 된 제레미 버튼과 하워드 엘리아스 등은 급변하는 오늘날 IT시장에서 EMC의 미래를 이끌 인물이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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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를 통해 조 투치 회장과 이사회는 다음과 같은 의사를 표현했는지 모른다.

연극 무대의 막이 올랐다. 당신의 능력을 보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