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네트워크업계는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델이 7월 네트워크장비업체 포스10을 인수했기 때문이다. 서버업체와 네트워크업체가 긴밀한 연합군을 구성하던 시대에 종말을 고하는 사건이었다.
델이 포스10을 인수했다는 건, 주요 서버업체 대다수가 자체 네트워크 사업을 갖게 됐다는 의미였다. IT프로젝트에서 네트워크를 담당했던 업체들의 설자리는 더 좁아졌다. 서버업체에 공급하던 OEM 계약도 사라지게 됐다.
그로부터 11개월. 델의 네트워크사업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데이터센터 백본 장비부터 캠퍼스랜 장비까지 나름대로 짜임새있는 제품 라인업으로 고객 유치에 발동을 걸기 시작했다. 자체적으로 만들어낸 새로운 네트워크 아키텍처도 마련했다.
델코리아의 포스10사업을 담당하는 김선배 상무를 최근 만났다. 그는 델에 인수되기 직전 포스10의 한국지사장을 맡았던 인물이다.
김선배 상무는 “델이 포스10을 인수하면서 파워커넥트 시리즈와 포스10의 장비를 합쳐 고객 선택권이 매우 다양해졌다”라며 “델의 풍부한 자원과 규모 있는 투자로 합병시너지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포스10은 1999년 설립된 회사다. 이때부터 10G 기반 스위치와 라우터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대형 백본 장비를 먼저 만들고, 애그리게이션, 액세스 장비 순으로 개발하는 독특함을 보였다.
포스10 장비는 독특한 아키텍처로 만들어진다. 고성능 라우터에 사용되는 3 CPU 구조를 채택한 것이다. 라우팅, 스위칭, 매니지먼트가 별도의 CPU에서 수행된다. 라인카드마다 CPU가 들어가고, 첫번째 패킷만 중앙프로세서를 통해 라인카드로 흘러들어가고, 이후부터 라인카드와 라인카드끼리 통신한다. 때문에 CPU의 패킷처리 부담을 대폭 줄였다.
또한 특정 포트에 갑작스럽게 대용량 패킷이 몰릴 경우 알람을 띄우고, 75~85% 선까지 차게 되면 DDoS로 의심되는 패킷을 자동으로 드롭한다. 때문에 장비가 죽는 경우가 드물다. 문제는 인지도였다. 인지도가 없다보니, 까다로운 POC를 거쳐 공급하는 경우가 많았다.
김선배 상무는 “적은 인력으로 영업을 10년간 했는데, 포스10 장비를 써본 고객들의 구전 마케팅으로 버텼다”라며 “하지만 포스10 고객들은 반복구매가 많은 특징을 갖고 있으며 만족도가 좋고, 직원들의 프라이드가 매우 강하다”라고 말했다.
김 상무는 “어떤 대학교에서 POC를 진행하던 중 경쟁사 장비로 수강신청 업무를 운영하다가 트래픽이 몰리면서, 다운이 됐다”라며 “고객이 포스10 장비를 긴급하게 사용해서 수강신청 다운을 해결해 납품한 일화도 있었다”라고 덧붙엿다.
합병 발표 후 11개월째. 그 사이 델은 포스10과 기존 파워커넥트를 결합했다. 이 과정에서 S4810과 Z9000이란 장비가 세상에 나왔다.
S4810은 48개의 10G 포트를 제공하는 장비다. 1G와 10G를 오토센싱한다. 40G 업링크 포트 4개를 지원하는데, 10G포트로 사용하면 16개의 업링크 포트로 사용가능하다.
Z9000은 2RU 크기에서 40G 인터페이스의 32개 포트를 제공한다. 이를 10G로 사용하면 128포트까지 지원한다.
물리적인 것과 별도로 링크 애그리게이션(LAG) 기능을 활용해 고속 인터페이스를 이용하지 않고 대역을 늘릴 수 있는 버추얼 링크 트렁킹(VLT) 기능을 제공한다. 1G 회선 5개를 가상으로 묶으면 5G의 통신대역을 확보하는 식이다. VLT는 스위치단위 외에 멀티 섀시를 가상으로 묶어준다.
또한 디스트리뷰트코어아키텍처(DCA)라 불리는 스케일아웃형 네트워크 구조도 선보였다. DCA는 네트워크 패브릭을 사용하지 않는 대신, 물리적 스위치를 추가하면 그대로 네트워크용량과 성능을 확장할 수 있다.
김 상무는 “초기에 소규모로 시작하고, 고가의 백본, 애그리게이션, 액세스 등 3계층 구조를 사용하지 않고, 멀티 서비스를 지원한다”라며 “백본을 위한 대형 장비없이 S4810을 병렬로 확장하면 저렴하게 멀티 네트워크 환경을 구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인수합병 후 가장 많이 체감하는 변화는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됐다는 점이다. 그는 “델의 서버 기반 고객이 상당하기 때문에, 과거 접근하지 못했던 시장에 소개할 기회와 시간이 늘었다”라며 “네트워크가 하나의 사업팀으로 만들어져 주요 솔루션으로 자리잡았고, 영업 최전방과 고객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합병전 포스10의 국내 고객사는 80곳이었다. 합병 발표 후 공식적인 델에서의 영업 시작은 작년 12월 1일이었다. 이후 신규고객을 10개 더 확보했다. 최근엔 가장 보수적인 시장인 금융권의 첫번째 공급사례를 만들어내, 미션크리티컬 시장 진입의 발판을 마련했다.
델코리아의 네트워크 전문성은 어느정도일까. 김 상무는 “작년부터 상반기까지 내외부의 엔지니어 그룹에 교육을 해서 일정 수준의 스킬을 쌓았다”라며 “이번달부터 영업 인력 교육에 들어간다”라고 말했다.
델은 서버사업을 직판구조로 벌여왔지만, 포스10은 100% 유통채널로 공급됐다. 델코리아와 포스10이 합쳐지는 과정에서 포스10 채널 60%가 떨어져 나갔지만, 핵심 채널들은 합류했다. 델코리아 채널 교육을 통해 유통망도 재정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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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델 사업부의 구석에 박혀있던 파워커넥트가 빛을 보게 됐다. 김 상무는 “파워커넥트가 채널영업을 통해 소개되면서 교육, 헬스케어 분야에서 POC 발주가 이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다른 네트워크업체로선 피가 마르는 상황도 나타나고 있다. 포스10 인수 후 델은 블레이드 스위치를 가장 처음 출시했다. 델은 주니퍼네트웍스와 100% 일치하는 라인업을 보유하게 됐고, 주니퍼 OEM 계약은 종결됐다. 현재는 아루바네트웍스의 무선랜, 브로케이드의 SAN 스위치만 OEM이 유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