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K9에 3년전 인텔 CPU가 탑재됐을까?

일반입력 :2012/05/21 09:02    수정: 2012/05/21 15:06

봉성창 기자

최첨단 IT기술이 대거 탑재돼 화제를 모은 기아의 신형 자동차 K9에는 인텔이 3년전에 개발한 CPU가 탑재됐다.

‘아톰’이라는 코드네임으로 잘 알려진 이 프로세서는 흔히 넷북용 CPU로 유명하다. 비록 일반 CPU와 비교하면 성능은 다소 떨어지지만 소모전력이 낮고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이 장점이다. 인텔은 K9에 아톰 프로세서 기반의 차량용 인포테인먼트(in-vehicle infotainment, 이하 IVI) 시스템 개발을 담당했다.

최고급 세단에 아톰 프로세서가 탑재된 것을 두고 평소 IT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고개를 갸우뚱 할만하다. 수천만원을 주고 사는 차에 기왕이면 더 좋은 CPU를 탑재할 수 있지 않느냐는 의문마저 생긴다.

이는 자동차 산업 특유의 보수적인 기술 접근 방식과 연관이 깊다. 자동차에 사용되는 프로세서는 EPU(Embeded Processor Unit)라고 부른다. 자동차에 쓰이는 EPU는 성능보다는 안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예를 들어 열이 많이 나는 자동차 특성상 내열성은 물론 진동, 먼지, 충격 등에도 강해야 한다. 무엇보다 어떤 상황에서도 안정적인 기능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증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장기간에 걸친 검증 절차가 필요하다. 인텔이 3년전에 개발한 EPU를 이제야 새로운 자동차에 탑재할 수 있었던 이유다.

단적으로 아직까지 전 세계 모든 자동차에 내장된 터치스크린 화면은 정전식이 아닌 감압식을 택하고 있다. 이미 스마트폰을 통해 정전식이 조작감이 더 좋다는 것이 판명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감압식을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정전식은 자동차에서 발생되는 높은 열로 인해 오작동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동차 업계가 새로운 IT기술을 받아들이는 것에 보수적인 이유는 무엇보다 운전자의 안전 때문이다. 가령 PC가 오작동을 일으키면 이에 따른 조치를 취하면 그만이지만, 자동차라면 한순간 운전자의 생명에 영향을 미칠수도 있다. 게다가 중대한 결함이 발생할 경우 리콜 등 막대한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텔은 상당히 오래전부터 자동차 EPU 사업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동안 인텔은 1억 달러 규모의 인텔 커넥티드 카(Connected Car) 펀드, 독일 칼스루에서 오픈한 신규 자동차 제품개발센터, IVI와 텔레메틱스에 대한 학술연구프로그램, 인텔 상호작용 및 경험 연구소(IXR)의 자동차 연구 등 지속적인 노력을 해왔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인텔은 BMW, 기아와 협력을 통해 향후 출시되는 고급 차종을 중심으로 EPU를 공급하기로 했다.

당초 인텔 EPU가 주목받은 것은 강력한 멀티미디어 성능이다. 실제 K9에 내장된 3D 내비게이션의 반응 속도는 그 어떤 자동차보다도 빨랐다. 운전석 오른편 하단에 위치한 조그셔틀 형태의 조작부의 움직임과 거의 동시에 화면이 움직일 정도였다.

각종 음악이나 동영상 재생 등도 매우 부드럽게 이뤄졌다. 화면 해상도는 480p 수준으로 그리 높은 편은 아니지만 자동차에서 감상하기에 그리 부족함이 없다.

뿐만 아니라 인텔 EPU는 K9 뒷좌석에 탑재된 2개의 9.2인치 디스플레이 장치까지 독립적으로 제어한다. 뒤에 앉은 탑승자가 보는 화면을 운전석 화면으로 보낼 수도 있고, 그 반대로도 가능하다. K9에 탑재된 아톰 프로세서가 싱글코어임에도 불구하고 최적화가 잘 이뤄져 성능이 남는다는 설명이다.

아직까지 인텔 EPU는 차량 내 각종 인포테인먼트 서비스를 제어하는데에만 한정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향후 HUD(Head Up Display)나 LCD 계기판과 같은 자동차네 첨단 편의사양 및 안전기능까지 통합 관리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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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자동차와 첨단IT 기술의 만남은 향후 도래할 전기자동차 시대에 더욱 두드러질 전망이다. 가령 자동차끼리 신호를 주고받아 충돌 사고를 미연에 방지한다거나 운전자의 움직임을 감시해 졸음운전 등과 같은 비상상황에서 경고를 해주는 등의 첨단 기술도 연구되고 있다.

관련 업계의 궁극적인 목표는 스스로 운전이 가능한 무인자동차 시대를 여는 것이다. 혼다와 같은 자동차 기업이 로봇 연구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것도 이러한 목표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강력한 CPU 성능을 필요로 한다. 인텔이 자동차 EPU 분야에 관심을 쏟고 있는 이면에는 이러한 장기적인 전략이 숨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