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대통령의 결단

일반입력 :2012/03/22 20:26    수정: 2012/03/22 20:33

이재구 기자

대통령의 결단/닉 래곤 지음·함규진 옮김/383쪽·1만5000원·미래의 창

■리더십 붕괴의 시대

저자 닉 래건은 13명의 미국 역대 대통령과 그들이 내놓은 많은 결단 가운데 15가지를 뽑아 역사적 교훈으로 알려주고 싶어한다.

그가 꼽은 15건의 글 가운데 트루먼과 케네디의 결단에 특히 주목한다. 닉슨을 사면하지 않고서는 어떤 국정수행하기 힘든 국가적 분열 사태를 극복했지만 이로 인해 그 스스로는 절름발이 대통령이 돼야 했던 포드의 과단성도 새삼 주목을 끈다. 저자는 가진 계층의 거센 반대 속에서도 과감히 일반국민을 위한 의료보험개혁의 칼을 빼든 오바마의 철학과 결단도 높이 평가해 과감히 지면을 할애했다.

세상은 인터넷의 발전에 따라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급격한 정보의 개방 공유 참여 현상에 익숙해지고 있다. 그런 과정에서 각계 각층에 있는 지도자의 권위는 여지없이 붕괴되고 있다.

저자는 오늘 날을 ‘리더십의 부재 시대’라고 정의한다. 이에 지구상 최고의 책임과 권력을 갖고 있는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의 사례를 통해 리더십의 본질을 파헤치고 그들의 결단을 통해 이 시대 지도자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들의 결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와 국민의 이익이었다. 저자는 15개의 사례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이들의 결정이 당리당략이나 재선문제보다도 앞서 이뤄진 최우선 원칙이었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오늘날 TV나 인터넷에서 낱낱이 지적되고 부정되고 비판받는 지도급 인사들을 위한, 또는 그보다 작은 지도자들에게 충분히 귀감이 되는 교훈이다. 그러나 저자는 강요하지는 않는다.

닉 래곤은 등장 인물들이 맞이한 결단의 순간, 그들이 쟁점에 접근하는 방법과 의사결정 방식으로 인물에 접근해 볼 것을 주문한다.

또 고뇌에 찬 결단으로 잠시 부정적이었지만 결국 진의를 받아들여지는 쪽으로 바뀌거나 올바른 판단이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도 제시한다.

이는 우리 대통령선택에 있어서 과연 어떤 인물이 되어야 할 것인가와 관련해 매우 시사적이다.

'대통령의 결단'이란 제목의 이 책(원제 Presidential Leadership:15 Decisions That Changed the Nation)은 제목 그대로 건국한 지 240년 정도된 미국을 세계최대 강국으로 이끌어 오는 동안 겪은 대통령들의 이야기다.

오바마대통령의 의료개혁 추진 결단 부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아날로그시대의 대통령이야기라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기본원칙은 전혀 퇴색됨이 없다.

부제 ‘위기의 시대, 대통령의 역할은 무엇인가’가 아주 잘 어울린다고 할 정도로 구성과 내용에서 올 연말 대통령선거를 앞둔 우리에게 시의 적절하고 시사적이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트위터로 순식간에 손쉽게 퍼져나가는 정보의 홍수시대다. 하지만 지도력의 근본은 예나 지금이나 대통령의 철학과 비전, 그리고 진정성을 가진 행동으로 요약될 법하다. 저자가 제시한 13인이 그들이 내린 역사적 결단에는 잔재주가 보이지 않는다. 고민과 노력을 통해 지향한 궁극적 목표는 국가와 국민의 이익이었다.

니도자의 위대한 결단을 사례를 통해 제시한 이 책은 지도자들이 비전을 실현해 나가는 과정이요, 현재였고, 미래를 향한 디딤돌이었음을 확인하기에 충분하다.

■이분법만이 존재하는 세계 속의 고독한 결단, 트루먼

“짐은 짐의 죄없는 심민들의 고난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 참을 수 없는 일을 참아야할 때가 왔다. 짐 스스로의 피눈물을 삼키며 연합군의 선언을 수용하는 안에 재가를 내리노라.”

1945년 8월15일 정오 히로히토 일본 천황의 항복선언으로 2차대전은 끝이었다.

원자폭탄을 만드는 맨해튼 계획을 만든 루즈벨트대통령에게 ‘그 폭탄(The Bomb)’의 개발을 공식적으로 추진하는 일은 이론이나 학술적 사업이 아니었다. 루즈벨트는 언제가 그 폭탄을 준비되는 즉시 사용할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여기까지는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그의 갑작스런 타계와 함께 대권은 트루먼에게로 넘어왔다. 그리고 그에게 주어진 상황은 어떻게 하면 전쟁을 이른 시일내에, 보다 적은 군인들을 희생시키면서 종결시키는가였다.

1945년 7월 16일 오전 5시29분 뉴멕시코에서 원폭 시험이 성공한 이후 트루먼의 되풀이돼 온 입장은 분명했다.

“이 문제에 대해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나는 그 폭탄을 군사무기로 여겼고 그것을 써야 하느냐에 대해선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의 인터뷰, 일기, 연설,개인적인 편지 어디에서도 같은 명분이 나온다. 그것은 전쟁을 빨리 끝나게 함으로싸 미국인의 생명을 구한 조치였다는 것이다. 원자폭탄의 목적은 “최대한 많은 미국민을 살리는 것”이라고 그는 되풀이 해서 강조했다. 2차대전을 일으킨 추축국 가운데 독일의 히틀러는 유럽대륙을 지배하고 모스크바까지 함락시킬 기세였고 일본은 진주만에서부터 인도까지 대양을 지배하면서 그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야만적 행위를 자행했다는 점을 생각할 때 당연한 듯 보였다.

그러나 미국대통령의 결정 가운데 가장 많은 사후 비판을 받은 트루먼의 사례에 대한 저자의 글은 모두가 공감을 자아낼 수 밖에 없다. .

“대통령의 결정치고 히로시마와 나카사키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리기로 한 결정만큼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연관지을 수 있고 논란의 여지가 많은 결정은 거의 없다. 이분법적인 접근을 취하기 어렵다. 사용하는 것이 옳았는가, 사용하지 말아야 했는가? 물론 모호한 부분은 있다.(뭐든 그렇지 않겠는가?)하지만 그 핵심은 하느냐 마느냐의 단순 이분법이다. 그런 점에서 이는 확실히 명료한 문제였다.”

트루먼이 과연 옳았다고 할 수 있는가, 또 그가 과연 틀렸다고 할 수 있는가?

대통령의 리더십은 퇴임후까지 이런 고통스런 결단의 결과를 평가받는 자리다. 특히 그 결정이 일찍이 미국 대통령이 내린 결단, 아니 인류역사상 가장 중대한 결단중 하나이었음에랴.

트루먼과 ‘그 폭탄’에 대한 한 장을 할애하지 않고는 대통령의 리더십에 관한 책을 쓸 수는 없다고까지 주장한 저자의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목표를 제시하고 용기를 심어준 대통령, 케네디

“정녕 우리가 그들을 따라 잡을 만한 게 없는가!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나? 그들을 뛰어넘을 수 있나?”

대통령은 격분해 있었다.

“만일 NASA가 맨해튼프로젝트 식으로 비상계획 추진에 착수한다면 1960년대가 지나기 전에 미국인을 달표면에 착륙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참모들의 이 말은 인명을 우주에다 내버려두게 될지도 모르는 위험한 시도인데다가 비용은 맨해튼 프로젝트의 10배나 되는 200달러짜리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1957년 인류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호가 미국 본토에 소련의 핵탄두를 쏘아보낼 수 있음을 증명한 마당에 그 것이 머리에 들오오지 않았다. 게다가 1961년 그가 취임한지 3개월 만에 유리 가가린이 인류최초로 지구궤도를 돈 우주비행사가 되자 미국민들의 충격은 더 커졌고 상황은 달라졌다.

후루시초프 공산당서기장은 가가린을 “새로운 크리스토퍼 콜룸부스”라고 부르며 미국의 젊은 대통령에게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라”며 자존심을 건드렸다. 게다가 그들은 “이 성공은 소련인민의 우수성과 공산주의의 강력함을 상징하는 것이다. 가가린의 우주비행은 과학기술의 모든 분야에서 소련의 우월성을 보여주는 증거다”라고 주장했다.

케네디는 가가린의 지구궤도 유인비행 성공 8일 만에 우주개발위원장인 존슨부통령을 백악관으로 불러들였다. 그에게 넘겨진 메모에는 “우주에 실험실을 설치하는 것, 달을 여행하는 것,달에 착륙하는 것, 사람들 달에 보내는 것 등을 통해 소련을 이길 기회가 남아있는가? 극적인 승리를 보장해 줄 우주개발 프로그램은 없는가? 추가로 얼마만큼의 비용이 소요되는가? 기존의 프로그램들에 전력투구하고 있는가? 기대한 성과는 거두고 있는가? 등에 대해 최대한 빨리 답변을 해 달라”고 적혀있었다.

“1960년대가 끝나기 전에 달에 갈 것이며 이일은 그 어떤 일보다도 우선입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선택한 것입니다. 이 일은 우리가 가진 힘과 능력의 최고치를 보여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이 도전을 받아 들일 용의가 있고 미루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승자가 되고 자 합니다. 하지만 이는 소련역시 마찬가지입니다.”

1962년 라이스대학을 방문한 자리에서 케네디는 미국인을 달나라에 보내는 문제에 대해 장황한 연설을 했다.

그는 이외에서 일자리 창출, 과학적 발견,새로운 방어체계같은 다른 이유들을 열거했다.

하지만 저자는 케네디의 결단에 대해 ‘하지만 가장 큰 동기는 단순한 영감이라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고 적고 있다.

마침내 1969년 7월20일 미국이 인류최초로 달을 밟은 이후 구 소련은 더 이상 우주개발계획에 있어서 미국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그것은 다른 모든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미국민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부심으로 가득했고 그것은 미국의 영광과 2차대전 이후 팍스아메리카나를 구가하는 최대 전환점이 되었다.

그리고 이는 이후 미국민은 물론, 전 인류에게 역사상 가장 큰 꿈과 희망을 준 결단의 지도자 가운데 존 F케네디의 아폴로 계획 결단을 각인시켰다.

“이는 통신,기상학,군사정찰, 미래의 군사적,과학적 이득과 연관되어 잘 진행되고 있는 여러 국가적 프로젝트들 중에서 하나를 쏙 빼내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입니다. 게다가 달에 최고의 우선권을 부여하는 일은 분명 바보같은 짓입니다.”

케네디가 쏘아올린 유인 달 로켓에 대한 이렇게 지적한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의 비판도 물론 그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케네디는 자신의 비전과 철학인 우주프로젝트 실행과정을 통해 국민의 취업률을 올려 경제를 살렸고, 국가과학기술을 향상시켰으며, 게다가 가장 큰 성과라 할 국민을 단합시키는 결실을 얻었다. 체제 경쟁에서 우위에서 선 것은 물론 국민들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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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이런 결단을 내리고 자신이 죽은 후에라도 그 결실을 이뤄내게 만든 비전을 제시하는 이러한 대통령을 한 사람쯤 갖고 싶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