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통신사들이 ‘아이폰 딜레마’에 빠졌다. 아이폰 판매로 인해 가입자와 매출액은 늘어나는 반면 보조금 지급으로 인한 순수익은 감소세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상은 실적발표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애플은 공급하는 통신사업자에게 단말기 가격을 제대로 받으면서도 마케팅이나 보조금 등 프로모션 비용 부담해주지 않는다. 단말기 제조업체가 통신사업자에게 마케팅 및 보조금의 일부를 부담해주는 관례와는 아주 다르다. 결국 아이폰 판매가 늘어날수록 통신사업자들의 마케팅 비용과 보조금은 늘어나는 셈이다.
미국 내 1위 통신사 버라이즌과 2위인 AT&T는 지난 24일과 26일 각각 지난해 4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버라이즌은 지난해 4분기에만 20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전년 동기 26억달러의 흑자를 기록한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손실폭을 기록한 셈이다.
AT&T 역시 마찬가지다. 전년 동기간 11억달러의 순이익을 올렸던 AT&T는 지난해 4분기 67억달러의 순손실을 기록하며 울상을 지었다.
■美통신사 “안 팔수도 없고, 팔자니 손해”
미국 통신사들의 적자전환 이유로는 아이폰 보조금 지급이 꼽혔다. 버라이즌은 4분기 동안 아이폰 판매를 통해 무선분야 매출을 13%나 끌어올렸으나 실제 수익은 6% 줄었다. 아이폰은 버라이즌의 스마트폰 판매량 중 44%를 차지한다.
AT&T 역시 지난해 4분기 개통된 아이폰은 760만대에 달했으나 실제 무선부문 이익은 전년 동기보다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AT&T를 통해 신규 가입한 아이폰 이용자도 71만7천명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제임스 랫클리프 바클레이 애널리스트는 “버라이즌과 AT&T의 실적을 종합해보면 아이폰은 애플과 소비자에게는 상당한 만족감을 주지만 이동통신사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아이폰이 잘 팔리면 잘 팔릴수록 통신사의 수익은 낮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통신사들이 아이폰을 포기할 수는 없다. 아이폰의 경우 충성도 높은 고객을 확보하는데 도움이 되고 매출 성장의 핵심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프랜 샤모 버라이즌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아이폰과 LTE스마트폰에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분기 마진이 압박을 받았다”면서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 데이터 매출 등으로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도 부진전망…LTE 비용↑
한국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한국의 경우 단순히 아이폰 때문이라기 보다는 LTE 관련 설비투자와 마케팅 비용이 증가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기본료도 1천원 인하됐다.
증권가에서는 통신사들의 4분기 실적이 ‘어닝쇼크’ 수준의 부진을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동안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기록하던 가입자당 매출(ARPU)은 더욱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의 경우 스마트폰을 판매할 때 단순히 보조금만 지급하기 보다는 할인요금제를 병행하는 형식이다. 때문에 ARPU가 더욱 중요한 지표다.
통신사들이 4세대 롱텀에볼루션(4G LTE)에 기대를 거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데이터 매출을 늘림으로써 ARPU를 회복하겠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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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한국 통신사들은 실적발표를 앞두고 있다. 당장 오는 30일 LG유플러스를 시작으로 내달 초순에는 SK텔레콤, KT의 실적도 발표될 예정이다.
김홍식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4분기 통신사들의 실적은 시장 전망치를 하회하는 수준일 것”이라며 “SK텔레콤과 KT의 ARPU 하락세가 지속되고 통신사 전반적 마케팅비용과 설비투자 증가로 영업비용이 크게 늘어났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