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최근의 망 중립성 쟁점과 시사점

설정선입력 :2011/11/24 12:04    수정: 2011/11/24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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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과 방송, 포털 등을 아우르는 디지털 생태계에서 올 한 해 세계적으로 가장 큰 이슈로 부상한 것은 ‘망 중립성(Net Neutrality)’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망 중립성은 용어 자체에서 풍기는 무게감 때문인지 그 의미의 중요성과 파급력에 비해 여전히 일반 이용자들에게는 생소한 개념이기도 하다. 하지만 망 중립성 문제는 스마트폰, 태블릿 PC, 인터넷 동영상 등 대규모 데이터를 사용하는 인터넷 환경이 일반화되면서 우리 생활에 밀접한 디지털 시장질서이기 때문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당초 망 중립성의 기본적인 개념은, ‘망(Network) 사업자는 모든 데이터를 동등한 것으로 간주하고 차별 없이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콘텐츠의 대용량화 추세에 따라 기존의 인터넷 망이 이를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변해가면서 소비자들에게 안정적인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통신망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불가피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최근의 망 중립성 이슈는 망 사업자의 독과점에 대한 예방적 차원이 아니라 폭증하는 데이터 트래픽 해소를 위한 투자비용 분배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최종 소비자의 권리는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는지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통신사 vs 인터넷, 팽팽한 대립

통신 사업자들은 이처럼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라 모두 자유롭게 망을 이용한다는 기존의 망 중립성 논리는 변화가 필요하며, 현실적으로 대용량 멀티 미디어 콘텐츠를 위한 수 조원이 넘게 드는 신규 망 증설 투자에 망사업자 이외의 디지털 생태계에서 일부 분담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반면 인터넷 콘텐츠 업계는 산업 인프라로서의 통신망의 공공성을 강조하면서, 통신사업자들이 이용자에게 망 이용료를 받고 있으므로 콘텐츠 사업자에게까지 망 증설에 관한 투자비를 요구하는 것은 이중 수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이렇게 양측의 입장과 주장이 맞서고 있는 가운데, 지난 9월 미국에서 망 중립에 관한 원칙이 연방정부 공보를 통해 공식 발표됐으며, 앞서 6월에는 네덜란드가 칠레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 째로 망 중립 법안을 통과시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먼저 11월 20일 정식으로 발효되는 미국의 경우는 망 중립성 원칙을 인정하여 개방성을 중시했고, 결과적으로 인터넷 콘텐츠 사업자들의 편을 들어주었다.

투명성, 차단 금지, 이유 없는 차별 금지라는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의 망 중립성 원칙에 대해 미국 최대 이동통신사업자 버라이즌은 지난 9월, “광대역 네트워크와 서비스, 인터넷 자체에 대해 포괄적이면서 불필요한 규제이며 월권”이라고 주장하면서, 시장 자유주의에 입각하여 법원에 항소했다.

마샤 블랙번(Marsha Blackburn)과 같은 공화당 의원들 역시 “본 원칙은 과도한 규제로서 산업 내 경쟁을 제한하고 일자리를 줄이는 효과를 낼 것”이라며 원칙의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소비자 ‘공공 지식(Public Knowledge)’과 같은 망 중립성 옹호론자들은 이 원칙이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다고 지적하면서도, 망 중립성에 관한 법적 단초로서의 의미를 부여하며 FCC를 지지하고 있기도 하다. 이 처럼 미국은 아직 양자의 입장이 정리되지 않은 채 원칙이 발효되어 향후 심각한 혼선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망 중립성으로 통신요금 오른다

한편 망 중립성이 보호 법안으로 이미 통과된 네덜란드에서는 지난 6월 실제 법 시행 이후 이동통신사들의 요금제도 현실화 요구를 반영하기 위해 전체 요금이 올라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당초 네덜란드에서의 망 중립성 법안은 스카이프나 왓츠앱과 같은 무선 웹 기반 무료 통화나 메시징 서비스 사업자가 이동통신사들의 수익을 잠식함에 따라 서비스를 차단하거나 추가 요금을 요청하면서 촉발되었다.

네덜란드 의회는 이러한 이동통신사들의 움직임에 대해 망 중립성 법안을 마련하여 인터넷 콘텐츠와 앱 사업자를 보호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스카이프와 왓츠앱 등에 의해 매출이 8%까지 감소함을 경험한 KPN과 같은 이동통신사들은 데이터 요금제를 현실화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또한 네덜란드에서 이동통신 사업을 벌이고 있는 T모바일과 보다폰도 데이터 요금을 인상하거나 기준 데이터를 줄이는 요금 안을 내놓게 되었다. 결국 콘텐츠와 앱 서비스 사업자들을 보호하는 법안의 발효가 일반 소비자 전체에게 악영향을 끼친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망 중립성 규제의 역효과를 관망하던 유럽 여러 나라들은, 당초에는 2010년까지는 망 중립성이 완전히 보장돼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그 수위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즉 어느 정도 콘텐츠 사업자들에 대한 과금 등의 방안은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미국과 네덜란드의 망중립성 결정은 충분한 검토결과 내린 것이었겠지만, 인터넷이 완전한 성숙시장에 접어들어 이제는 시장의 패러다임에 변화하고 있다는 새로운 시각에서의 접근이 부족하지 않았는가 하는 아쉬움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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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 중립성과 관련한 각계 입장을 좀 더 심사숙고해서 결정해야 할 필요성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네덜란드에서 보이고 있는 부작용과 역기능을 반면교사로 삼아, 새로운 관점에서 충분한 검토를 거쳐 우리의 실정에 맞는 현실성 있는 망 중립성 해법을 마련해야 하겠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설정선 IT컬럼니스트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 상근부회장, 고려대 정보경영공학 박사, 방송통신위원회 방송통신융합정책실장, 지식경제부 성장동력실장, 정보통신부 정보통신정책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