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펍(EPUB)3.0은 출판사와 유통사들이 아마존에 대항할 가장 좋은 무기다. 아마존은 자체 단말기에 고유 DRM까지 걸고 시장을 장악하고 싶어 하는데, 여기에 맞서려면 표준화 도구가 필요하다.
오는 8월 확정될 새 전자출판 규격 '이펍3.0'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동영상이 실행되고 SNS로 연결되는 '멀티미디어북'은 텍스트 기반인 이펍2.0으론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출판사와 유통사들이 제각기 다른 솔루션으로 전자책을 변환하는 것도 비용과 사용 편의성 문제를 야기한다. 이펍3.0이 이같은 상황을 타개할 열쇠가 될 수 있을까?
빌 맥코이 국제디지털출판포럼(IDPF) 사무총장을 4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콘티넨털에서 만났다. 그는 이날 지식경제부 기술표준원이 주최한 '전자출판물 표준화 워크숍' 발제자로 나서 이펍3.0의 특징과 한국 전자출판 시장에 대한 의견을 허심탄회하게 터놨다.
■HTML5가 '고기'라면, 이펍3.0은 '햄버거'
이펍(EPUB)3.0은 전자출판 표준화 규격이다. '전자책'이 아닌 '전자출판'을 위한 표준화 규격인 것은, 이펍3.0의 정체성이 '멀티미디어'에 있어서다.
빌 맥코이 사무총장은 이펍 3.0은 잡지처럼 멀티미디어 콘텐츠에 특화된 솔루션이라며 고비용 앱북과는 달리 웹과 근접한 이펍 3.0을 통해 출판사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전자출판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미 시장을 비롯, 전세계적으로 전자출판에 대한 저변이 확대되는 지금이, 이펍3.0을 위한 최적의 시기라는 설명도 했다.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같은 모바일 기기가 늘어나면서, 멀티미디어 콘텐츠에 대한 수요도 증가했다. 전자책이 대중화되면, 누구나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하므로 시각장애인 등을 위한 음성 지원도 이펍3.0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기존 전자책이 소설 같은 단행본 위주로 성장했다면, 이젠 잡지 같은 다양한 영역의 콘텐츠를 누구나 쉽게 감상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이펍3.0의 킬러 콘텐츠는 멀티미디어 잡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이펍3.0이 웹과 가까우면서 오프라인서도 활용할 수 있는 규격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웹에서 전자 출판물을 읽도록 콘텐츠 표현을 가능하게 한 HTML5 기술이 햄버거 재료인 고기(패티)라면, 이펍3.0은 콘텐츠는 물론 사용자환경(UI), 목차 등 독서에 필요한 모든 재료를 한번에 그러모은 햄버거라는 설명이다.
맥코이 사무총장은 이펍3.0이 웹표준을 반영한 표준 규격이다보니, 제조사별 단말기에 제한받지 않고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어 추가 비용이 안든다며 비용대비 생산성이나 추후 콘텐츠 관리를 생각한다면 표준화 도구 채택이 훨씬 유리한 선택이라고 덧붙였다.
■이펍3.0 논의에 한국 크게 뒤쳐져
이펍3.0에 대한 관심은 커지지만 정작 국내선 표준화 규격 대응은 늦은 편이다. 1년 전 국내서도 전자출판물 표준화 포럼(ODPF)이 발족됐지만,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선 걸음마에 불과하다는 평이다.
예컨대 일본 독서 환경을 반영, 세로쓰기나 페이지 역방향 등은 이미 이펍 3.0의 규격으로 작업 중이다. 일본이 이펍3.0 규격을 만들 때 자국 독서 환경을 반영하기 위해 인적, 물적 투자를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그러나 이펍3.0에서 한국 독서 문화가 반영된 부분은 극히 적다. 한글 최적화도 되지 않은 상태다. 국내 관계자들은 이같은 상황에 대해 정보가 늦었다기 보다는 한국이 제대로 요구를 하지 못한 것이 실책이라고 지적한다.
기여도가 없다보니 한글을 잘 표현하기 위한 방안도 이펍3.0에 반영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글특성을 살릴 방안을 항목을 정해 건의해야 하는데 그런 요구사항 자체가 없었다는 지적은 뼈아프다.
빌 맥코이 사무총장이 바라본 국내 전자책 시장 역시 아직은 걸음마다. 그는 전자책 활성화와 이펍3.0 표준화를 위해 한중일 협력이 필요하다면서 이중 가장 늦은 것이 한국이지만 그만큼 가능성은 큰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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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전자책 시장 활성화를 위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기 위해선 출판사와 유통사들이 먼저 마케팅에 대한 다양한 고찰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어권이 아니면서, 전자책 시장 활성화를 이뤄낸 이탈리아의 사례를 벤치마킹하라는 이야기다.
이탈리아에서도 전자책이 몇년간 도입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많은 이탈리아인들이 영어를 잘해서 전자책을 사는 상황이 왔다. 이탈리아 출판사들도 시장을 영어 콘텐츠에 빼앗길까봐 고심했다. 콘텐츠를 디지털로 만들어서, 적극적으로 제공하게 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