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의 시대, 공동체를 꿈꾸는 게임 개발사

일반입력 :2011/06/16 10:30    수정: 2011/06/21 08:56

전하나 기자

거센 바다를 항해하기 위해선 유능한 리더가 필요하다. 격동하는 모바일 시장에 뛰어든 오렌지크루호의 함장, 박영목 대표를 만났다.

그의 말대로 “아직 완성되지도 증명되지도 않은” 모바일 시장은 칠흑 같은 바다와도 같다. 때문에 그는 “먼 항해를 떠난다는 생각으로 한게임을 뜻하는 오렌지색에 크루(crew)라는 단어를 덧붙였다”고 설명했다. 2시간 남짓 오렌지크루의 철학을 인터뷰했다.

■NHN은 오렌지크루 성공을 위한 최적의 파트너

오렌지크루는 그간 대형 온라인게임 퍼블리싱에 주력했던 NHN 한게임이 신대륙 개척을 목표로 200억원을 투자해 닻을 올린 모바일 게임 개발 자회사다.

올 초 이 같은 계획이 가시화될 당시만 해도 오렌지크루가 모바일 시장의 또 다른 ‘공룡’이 될 것이라는 시선이 있었다.

하지만 지난 4월 미디어 간담회를 통해 박 대표는 “NHN의 안정된 문화를 떠나 새로운 방향성 가진 개발자들이 모여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스튜디오를 꾸려 창의적이고 개성 강한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이 오렌지크루의 설립 취지”라고 선언해 이러한 의혹(?)을 단번에 불식시켰다.

그는 인터뷰에서 “오렌지크루를 만들기 위해서 NHN이 필요했다”면서 이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제가 구상한 회사는 자율적인 경영을 담보한 개발자 중심의 조직이었습니다. 파트너로서 NHN은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었죠. 자금력면에서는 물론 스타트업 히스토리까지 있으니까요. 인터넷·게임 분야에서 성공한 경험도 있고 퍼블리싱, 플랫폼 노하우까지 갖췄으니 오렌지크루의 다양성이 접목되면 분명 시너지를 낼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오렌지크루, 정글에서 공동체를 꿈꾸다

지난 4월 박 대표가 “성과에 대한 수익 분배 제도인 ‘독립채산제’를 채택해 게임별 순이익을 회사와 개별 스튜디오가 직접 배분해 갖겠다”고 발표한 이후, 다소 이색적인 이 경영 방침은 시장에서 한동안 화제였다.

“개발자들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늘 꿈꾸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에는 ‘성공했을 때 적절한 보상을 받고 싶다’는 실질적 고민이 담겨있다고 생각합니다. 독립채산제는 곧 보상체제인 셈이죠.”

그러나 보상은 결코 책임을 떠날 수 없는 문제다. 따라서 독립채산제는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책임은 확실히 묻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보상의 양면을 볼 필요가 있죠. 낙관할 일이든 비관해야할 일이든 양쪽 모두 ‘적절한’ 보상이 주어져야 합니다. 오렌지크루의 모든 개발 스튜디오가 출중하다고 생각하지만, 만약 어느 하나라도 실패한다면 결과에 대한 책임을 당연히 져야 하겠죠. 여기는 프로의 세계니까요. 하지만 이런 환경이 모티베이션을 자극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박 대표는 이어 “분명한 것은 오렌지크루 밖의 현실은 더 냉혹하다”고 말했다. 때문에 오렌지크루가 추구하는 것은 상생의 가치라고 강조했다. 현재 오렌지크루는 8개의 스튜디오로 구성돼 있다. 연말께 이 공동체들은 12개까지 불어날 예정이다.

■‘나홀로 성공’이 아닌 ‘더불어 성장’이 지향점

오렌지크루 조직모델에 대해 박 대표는 “바깥에서도 반기는 시선이 많다”고 했다. 그렇다면 왜 이제껏 이 같은 시도가 없었던 것일까.

“그동안 시장에서 성공한 회사들은 개발주기가 길고 투입비용이 높은 대형 MMORPG 장르에 주력했죠. 이에 반해 모바일 비즈니스에선 제작 단위의 조직이 작아지고 시장이 빨리 변하다보니 유연성을 필요로 하게 된 겁니다. 저로선 시작을 했으니 깔끔하게 랜딩시키는 일에 집중할 겁니다. 그래야 업계에서 또 다른 도전이 나올테니까요.”

그는 인터뷰 내내 오렌지크루만의 성공이 아닌 업계 전반의 성장에 대해 이야기했다. 온네트와 함께 기획해 현재 진행 중인 스마트폰 게임 공모전은 이 같은 고민에서 비롯됐다. “비즈니스적인 의도보다는 학생들의 개발 환경을 응원하자는 차원에서 후원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 공모전은 다른 대다수의 공모전과 달리 출품작의 저작권이 개발자에게 돌아간다.

박 대표는 본지가 주최·주관하고 있는 게임엔진 컨퍼런스 ‘게임테크’와도 인연이 깊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개발자들이 다른 회사 개발자를 만난다거나 관련 지식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GDC와 같은 국제 행사가 있지만, 개인 개발자들이 비용을 들여서 가기는 쉽지 않았죠. 게임테크 시작 당시 제가 크라이텍이라는 엔진개발사에서 일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뜻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업계가 성장하기 위해선 개발자들이 커뮤니케이션하는 환경을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스마트폰 게임은 라이프 스타일…“강남역에서 배워라”

박 대표는 개발자들에게 어떻게 동기부여하면 좋을까 온종일 고민한다. 그는 자신이 비록 개발자 출신은 아니지만 “게임 1세대로서의 역할이 있다”고 자부했다. 박 대표는 마이크로소프트·엔씨소프트·블리자드·크라이텍 등 국내외에서 온라인·콘솔 게임 분야를 모두 경험한 전문 경영인이다.

“MS에 있을때 초창기 네트워크 플레이 게임으로 유명했던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를 성공시켰고, 블리자드에선 MMORPG로 퀘스트, 커뮤니티, 포럼 등을 최초 시도한 ‘와우’를 맡는 등 어느 곳에서든 늘 새로운 것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성취감이 일에 있어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죠.”

특히 “스마트폰 환경은 개발자, 사업자, 사용자 모두에게 새로운 경험”이라며 “이에 도전하는 것은 큰 성취감을 안겨다줄 것”이라고 자신했다.

“사실 일부 온라인 게임 개발자들이 피처폰 게임 개발자들을 홀대하던 시절이 있었고, 대형 MMORPG를 개발해야 실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뽐내던 때도 있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바뀔 겁니다. 스마트폰은 그 자체로 라이프 스타일이자 글로벌 인프라입니다. 이에 밀착한 게임을 만든다는 것이야 말로 너무나도 매력적인 일 아닌가요.”

그래서 그는 개발자들이 유행에 민감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스마트폰에서는 생명주기가 짧은 만큼 ‘게임이 재밌어야 한다’는 것이 더욱 엄격한 생존논리가 됐다는 이유에서다. 오렌지크루 위치를 강남역 부근에 정한 것도 “개발자들이 출퇴근하면서 시시각각 변하는 트렌드를 놓치지 않고 관찰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고 귀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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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말미 회사의 목표를 묻는 질문에 그는 “자신을 믿고 따라오는, 또 자신이 선택한 개발자들이 재밌는 게임을 만들면서 행복했으면 한다”고 담담히 고백했다.

“행복한 회사가 되기 위해서 제 역할은 개발자들이 창작 의욕이나 성취감을 잃지 않도록 ‘몸빵’하면 된다는 생각입니다. 목표는 월요일 아침에 눈뜨면 가고 싶은 회사를 만드는 것입니다. 어려운 숙제겠죠. 행복은 사람에게서 완성된다는 것을 잊지 않으면 언젠가 이룰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