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지상파방송 3사와 케이블TV 업계가 방통위의 중재에 따라 지상파 재송신 문제를 해결하기로 합의하면서 재송신 제도가 어떻게 정비될 지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이 협상 결과가 IPTV 등 또 다른 유료방송 플랫폼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IPTV가 최대 수혜자?
지상파와 케이블 간 협상 결과를 가장 예의주시 하고 있는 것은 IPTV 업계다.
지상파 3사와 IPTV 3사는 2008년 10월 재송신 협상을 이뤘다. 지상파와 IPTV 업체는 가입자당 월 사용대가(CPS)로 300원 수준에, 케이블 측에도 재송신 대가로 가입자 당 300원 정도를 수신료에서 지불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케이블 측은 재송신료를 지불하지 못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런 케이블 업계의 입장을 반영해 케이블 측에 유리하도록 제도개선이 이뤄진다면, 현재 지상파에 가입자당 재송신 대가를 납부하는 위성방송과 IPTV 사업자들이 ‘동일대우’를 이유로 반발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지상파 측은 재송신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IPTV 등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케이블 측의 저작권료 지불은 당연하다는 것이 근거를 내세운다.
실제, 지난해 7월 KT 등 IPTV 측은 지상파방송에 지불할 재송신 대가 지불을 유예하고 소송 결과가 나온 뒤 지불하겠다고 버티기도 했다. 만약 케이블방송이 협상을 통해 IPTV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CPS를 지불한다면 IPTV 측에서는 형평성을 내세워 CPS 조정 요구를 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지상파와 케이블 간 분쟁이 IPTV를 제공중인 통신3사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지상파와 케이블 간 분쟁이 IPTV의 경쟁력을 부각시키는 계기로 작용해 가입자를 늘리고 지상파와의 협상에서 목소리를 키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란 분석이다.
케이블TV업체들의 지상파 재송신 비용 지불이 케이블TV의 요금 상승을 불러올 가능성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IPTV의 경우 결합상품 할인이나 가족할인 요금제 등으로 가격경쟁력이 높아지고 있다. 9월 250만 가입자를 넘긴 IPTV사업자들은 확대된 가입자를 기반으로 지상파와 협상력 제고는 물론 채널 경쟁력 확보에도 도움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어떤 방식으로든 지상파 콘텐츠에 대한 저작권이 인정된다면, 이 협상 결과를 바탕으로 지상파에 대한 콘텐츠 종속성이 더 심각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한 IPTV 업체 관계자는 “결국 재송신 이슈는 지상파의 콘텐츠 지배력 문제에서부터 출발한다”며 “의무재송신에 대한 범위를 확대하거나 지상파 콘텐츠 의존도를 줄여나가는 것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스마트TV-태블릿PC, 차세대 플랫폼에 미칠 영향은?
최근 벌어진 케이블과 지상파 간 재송신 논란은 뉴미디어 플랫폼에도 중요하다. 차세대 플랫폼으로 주목받는 스마트TV와 태블릿PC, 웹TV 등도 지상파 서비스를 준비 중이기 때문이다.
곧 출시되는 갤럭시탭에는 지상파DMB 기능이 탑재된다. 올 6월에는 CJ헬로비전이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 방송채널과 VOD 서비스를 제공하는 웹TV 서비스 ‘티빙(Tving)’을 오픈했다. 아직 실시간 지상파 채널은 서비스 되고 있지 않지만 향후 서비스 확대를 위해서는 지상파 채널 확보가 필수적이어서 이를 추진 중이다.
스마트TV는 방송업계에서 가장 주목하고 있는 플랫폼이다. 지상파방송사와 주요 유료방송PP 등 양질의 콘텐츠를 가진 제작자들은 스마트TV를 새 유통경로이자 콘텐츠 확산의 윈도우로 여긴다.
최근 유튜브와 훌루(Hulu) 등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가 무료 광고기반 사업모델에서 프리미엄 콘텐츠 확보를 통한 유료모델로 변화하는 것도 양질의 콘텐츠의 중요성을 시사한다.
유튜브는 소니 픽쳐스, CBS, 라이온 게이트 엔터테인먼트, MGM과 제휴해 대형 영화 및 인기 TV 프로그램 등 프리미엄 콘텐츠 확보 전략을 짜고 있다. 미국 지상파 방송을 무료로 제공했던 훌루 또한 인기 프로그램에 대한 유료서비스와 아이패드용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고 월 10달러를 부과하는 ‘훌루 플러스'를 개시했다.
태블릿PC 출시 이후 국내 지상파채널들도 훌루와 같이 유료서비스를 제공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케이블과 지상파 간 협상 결과는 스마트TV 등 뉴미디어 플랫폼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최성진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매체공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케이블과 위성방송 등 매체들이 지상파 콘텐츠가 확산되는데 윈도우 역할을 해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며 “그런데 현재 그 매체들이 누적적자를 면치 못하는 등 상황이 좋지 않다”고 운을 뗐다.
최 교수는 이어 “이런 구조 하에서 현재 가구당 300원 정도의 지상파 콘텐츠 이용료는 너무 과하다”며 “이런 상황에서는 새로 등장할 뉴미디어 플랫폼이 성장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결국 윈도우가 살아야 콘텐츠도 살 수 있으며 이를 위해 지상파와 케이블 그리고 뉴미디어 플랫폼 간에 상생방안 마련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깊어가는 지상파의 고민
지상파는 과거 일방향 콘텐츠로 수익을 광고에 의존했지만, 매체와 플랫폼이 다양화하면서 원소스 멀티유즈를 통한 콘텐츠 판매로 수익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지상파가 케이블 재송신 문제를 법정까지 끌고 간 이유도 디지털 시대에 대가를 받겠다는 의미다. IPTV와 위성방송에는 이미 콘텐츠 대가를 받고 있으니 케이블에게도 동일한 잣대를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만약, 지상파 방송사가 콘텐츠에 대한 배타적 저작권을 완벽하게 인정받으면 뉴미디어와 콘텐츠 공급 협상 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지상파가 새 제도를 근간으로 만들어질 케이블TV 계약을 IPTV, 위성방송, 인터넷 포털 등 뉴미디어에 적용해 협상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지상파방송사가 재송신 대가를 요구한 배경에도 케이블TV의 무료 사용을 방치할 경우, 새로 등장할 플랫폼 사업자들도 지상파방송을 무료로 제공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길지 모른다는 우려가 컸다.
스마트TV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지상파 측이 케이블과의 분쟁이 향후 차세대 플랫폼의 주도권 경쟁에서 열위에 놓일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마트TV의 경우 애플, 구글, 삼성, LG 등 굵직한 기업들에 앞서 향후 주도권 경쟁에서 어떻게든 우위를 점하려는 사전 포석작업의 성격이 짙다.
스마트TV든, 웹TV 등 성공하려면 지상파 실시간 채널을 내보내는 것이 우선이다. 지상파 만한 킬러콘텐츠가 없다는 점에서 주도권을 가진 쪽은 지상파가 될 전망이다.
때문에 시장을 선도하는 위치에 있는 지상파 측은 가전업체와 인터넷이 플랫폼을 장악하려 하는 상황에서 섣불리 시장을 앞서가기보다 신중하게 접근하려 하고 있다.
■제도적 보완책 마련 시급
당장 필요한 것은 제도적 보완책이다. 올 연말까지 지상파 재송신과 보편적 시청권에 대한 제도 보완이 예정됐다.
더불어 현행 국내 방송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방송, 방송사업, 방송사업자 득의 법적개념에 대한 재정비가 필요하다. 전통적인 방송의 개념에 근거한 현재의 방송법으로는 새롭게 등장하는 방송통신융합형 단말기, 서비스, 콘텐츠를 규율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차세대 플랫폼으로 주목받는 스마트TV를 예로 들면, 인터넷TV의 범주에 넣을 것인지 아니면 유료 방송 범주에 넣을 것인지 기존 방송법상에 구분이 없다.
따라서 스마트TV를 국내 방송법 또는 통신법상에서 어떠한 사업자의 지위를 부여하며, 어떠한 규제원칙을 적용하는가에 대한 문제가 중요해졌다.
최근 등장하는 모바일 기기에 대한 부분도 마찬가지다.
태블릿PC는 물론이고, 스마트TV 모바일 버전, 더 나아가 모바일IPTV에 이르기까지 이를 어느 범주에 넣어야 하는지에 대한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현재 방통위가 추진 중인 ‘방송통신발전기본법’ 제정이 시급하다.
방송통신발전기본법은 기존 방송법, 전기통신사업법, 정보화촉진 기본법 등에 분산돼 있던 방송통신의 기본적 사항들을 통합 재구성한 법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7월 입법예고한 방송통신발전기본법 시행령안은 문화체육관광부, 지식경제부 등 관계부처와 협의를 거쳐 당초 지난달 23일부터 본격 시행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방송콘텐츠 업무 분장 등을 둘러싸고 부처 간 갈등을 빚어 시행령의 시행이 결국 연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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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방송은 단순히 방송이 아니다. 방송에 통신이 결합하고 더불어 IT의 개념까지 접목되면서 진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방송을 융합산업으로 보는 제도적 고민이 필요하다.
지상파와 케이블 간 벌어진 콘텐츠 재송신 논란이 단순히 지상파와 케이블의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향후 뉴미디어 플랫폼과의 콘텐츠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방송통신, 그리고 인터넷업계에 중요한 의미가 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