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 재송신 분쟁 “명분 얻었지만”…대가 산정은

일반입력 :2010/10/14 18:54    수정: 2010/10/15 08:54

김태진, 정현정 기자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의외였습니다. 항상 을이라는 입장 때문에….”

‘지상파 방송광고송출 중단’을 이틀 앞둔 시점, 한 케이블업계 관계자는 사실상 방송통신위원회가 제시한 중재안을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며 이같이 푸념했다.

이 관계자의 예상처럼 지상파 방송광고송출 중단이란 극단으로 치닫던 지상파-케이블 간 분쟁이 송출중단을 17시간 남겨놓은 채 극적으로 합의했다.

방통위의 적극적인 중재로 지상파-케이블 양측이 지상파 재송신 문제를 대화와 협상으로 풀기로 했기 때문이다.

재송신 관련 협상은 방통위의 중재 하에 재개하고 연말까지 매듭짓는 걸로 진행된다.

방통위는 14일 오후 긴급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15일로 잠정 연기한 지상파 방송광고송출 중단이란 방송계 초유의 사태는 일어나지 않게 됐다”며 그 의미를 강조했다.

■형사고소 ‘취하’ 민사는 ‘보류’

일단 케이블측이 요구한 협상의 전제조건이었던 민·형사상 소송 취하 문제는 잠정 합의 됐다.

지상파와 케이블은 합의에 따른 신뢰회복을 위한 상징적 조치로 재송신 문제와 관련해 지상파 방송사가 현대HCN와 CJ헬로비전을 상대로 각각 진행중인 형사고소와 가처분 즉시 항고 및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취하키로 했다.

다만, 지상파 방송3사가 5개 MSO를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인 '저작권 등 침해정지 및 예방청구의 소'는 의 경우 재송신 관련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소송이 보류될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선에서 합의가 이뤄졌다.

지상파측은 케이블TV가 허가 없이 지상파를 재송신한 것은 저작권법 위반이라는 주장이다. 지난 9월 재판부는 케이블TV의 지상파 방송 재송신은 불법이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결국, 케이블은 어떤 방식이든 지상파에 재송신에 따른 대가를 지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케이블측은 ‘지상파 방송프로그램의 케이블 재송신은 유료’라는 전제 없이 원점에서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이었기 때문에, 케이블 측이 대가 지불에 대한 부분을 얼마나 수용할 지 여부가 협상의 속도를 결정지을 전망이다.

■남은 쟁점은 뭐

시청자들의 여론도 변수다.

당초 케이블측은 ‘지상파 방송은 무료 보편적 서비스’라는 입장을 고수하며 시청자들의 전반적인 인식을 그 근거로 들어왔다.

우리나라 국민의 약 80%가 케이블TV에 가입하고 있고 그 동안 지상파 실시간 방송을 무료로 봐왔기 때문에 무료 보편적 서비스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케이블TV협회가 전국 가입자 1천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해 지난 27일 발표한 결과에 따름녀 응답자의 91.5%가 '지상파 방송 서비스는 보편적으로 제공돼야 한다'고 대답했고 76.4%는 '디지털 지상파 방송을 보기 위해 추가 비용을 지불할 의사가 없다'고 답했다.

케이블 측에서는 방통위 측에서 필요하다면 시청자를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시청자들의 여론은 어떻게든 자신들에게 유리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물가 인상 문제와 KBS 수신료 인상이라는 문제가 걸려 있는 시점에서 지상파와 방통위 측에 시청자들의 여론은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케이블 측이 지상파에 지불하는 저작권료가 시청자들에게 직접적인 부담으로 돌아간다면 국민들로부터 거센 반대 여론에 부딪힐 수 있기 때문이다.

■송출료 인정받을까

당초 케이블업계는 지상파 재송신 목적이 난시청 해소, 보편적 서비스 제공, 지상파방송 수신확장 측면에서 제공돼 온 만큼 저작권 적용의 예외로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케이블업계가 저작권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만큼, 이번 분쟁이 케이블에 가져다 준 것은 지상파가 보편적 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인프라를 상당부분 케이블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 확인 정도에 그쳤다.

추가 의미를 부여하자면 방송법상 모호했던 보편적 서비스, 그리고 의무재송신에 대한 제도적 보완을 방통위로부터 이끌어냈다는 점이 케이블업계가 얻어낸 성과다.

케이블업계가 향후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은 지상파 재송신에 대한 저작권 비용은 지불하되, 현실적으로 보편적 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인프라를 케이블에 의존하고 있는 것을 확인한 만큼 이에 대한 송출 비용을 지상파로부터 받아내는 일이다.

반면, 케이블이 재송신 대가를 지불키로 한 만큼 그동안 주장해 온 KBS1, EBS로 한정된 의무재송신 제공 대상을 MBC와 SBS로 확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방통위가 내년 1월까지 운영할 ‘제도개선 전담반’에서 케이블업계가 송출료에 대해 어느 정도의 성과를 얻어낼 지가 주목된다.

특히, 방통위가 전담반에서 보편적 시청권의 보장을 위해 의무재송신 제도 개선 등 재송신 제도 개선에 나서겠다고 밝힌 만큼, 그동안 업계서 논의돼 온 의무재송신(Must Carry)이나의무제공(Must-Offer) 등을 어떻게 반영시켜 나갈 지도 최대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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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의 결과에 따라, 지상파 재송신 대가 산정이 결정되는 만큼 케이블업계에서는 이를 이번 분쟁의 최대 승부처로 여길 공산이 크다.

방통위가 언급한 ‘한국식 방송 환경에 맞는 재송신 제도’에 방송업계의 이목이 집중돼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