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구코너]텔스타, 최초의 통신위성

1962년 7월 10일=美-유럽 간 실시간 위성방송시대를 열다

일반입력 :2010/07/08 17:35    수정: 2011/04/30 23:09

이재구 기자

■“양쪽 세계의 메시지를 전달할 만큼 높이 떠 있는 위성”

“나는 오늘의 이 기자회견의 일부가 텔스타 통신위성을 통해 대서양을 건너 유럽까지 연결된다는 것을 알고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특별한 세상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 위성은 세계 양쪽의 메시지를 전달할 만큼 높이 (떠)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평화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핵심입니다. 나는 이 더 빠른 통신이 필연적으로 가져오게 될 이해가 모든 사람의 복지와 보안을 더욱더 증강시켜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여기 대서양을 넘는 것이 그것입니다. 따라서 민간기업이 개발하고 정부가 발사한 이 협력활동에 참여합시다.“

1962년 7월23일 동부표준시 오후 3시를 약간 넘긴 시간의 미 국무부. 존 F 케네디대통령은 방송카메라 앞에서 기자회견에 앞서 통신위성의 의미를 설명했다. 그는 특유의 목소리로 문장을 띄엄띄엄 끊어 내뱉듯이 연설하면서 ‘냉전과 인류평화’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그의 말 그대로 통신위성에 연결돼 ‘실시간으로’ 대서양을 건너 유럽에서 방송됐다. ‘세계 최초의 위성통신을 통한 TV중계 방송’이었다. 국무부가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전세계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 기자가 케네디대통령에게 ‘달러를 평가절하할 것이라는 유럽내의 루머’에 대해 물었다. 이는 유럽의 금값을 뒤흔들 이슈였다. 유럽의 금시장은 널뛰기 장세를 형성하고 있었다.

“(금에 대해) 달러를 평가절하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케네디가 30초 남짓한 금과 달러 정책에 대한 의견을 내놓자 이 내용을 동시에 TV로 지켜본 지켜 본 유럽인들은 즉각 반응을 보였다. 시장은 달러 강세로 전환했다.

월터 크롱카이트는 이에 대해 “(위성통신이 대서양 건너로 전송되는)18분이 대통령의 금과 달러에 대한 생각을 잡아냈다”고 회고했다. 통신위성이 순식간에 경제에 영향을 미친 순간이었다.

■진공관연구로 이룬 ‘통신위성의 아버지’의 명성

“우주에 대한 강연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1954년 프린스턴대 무선공학회가 벨랩의 잘 나가던 진공관 연구원 존 피어스에게 우주에 대한 이야기를 요청했다. 그가 SF작가이기도 했기에 이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피어스는 이 요청이 공상적인 얘기보다는 실질적인 얘기를 해달라는 것으로 들렸다.

지상에서 쏘아보낸 마이크로파를 받아 증폭시킨 후 되돌려주는 통신위성이 필요합니다.“강연에서 캘테크 출신의 존 피어스는 이렇게 말했다.

이후 책으로 펴낸 그의 생각은 신기하게도 SF의 거장 아서 클라크가 1945년 와이어리스 월드라는 잡지에 기고했던 ‘외계에서의 연계(Extra-terrastrial Relay)’를 실현할 아이디어가 된다. 피어스는 세계최초의 TV통신위성 텔스타와 기지국을 건설을 지휘한다.

당시 지상에서 가장 큰 통신회사 AT&T의 자회사인 벨랩이었고 이제 세상의 최대 관심사는 단연 트랜지스터인 듯 보였다. 저 유명한 쇼클리,브래튼,바딘 등 이른 바 ‘벨랩 3총사’가 개발한 트랜지스터는 기존의 모든 진공관 연구를 한물 간 것처럼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피어스는 지구궤도로 눈을 돌렸다. 지구 궤도에 쏘아올린 정지위성을 통해 지상에서 보낸 전파를 받고, 이를 수십억배로 증폭시켜 지상기지국으로 전송시키는 개념을 떠올렸다. 이를 통하면 멀리 떨어져서도 음성,텔렉스는 물론 TV화면까지 보다 경제적으로 받아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여행파 진공관 안에 전자파가 머물고 있고 전자빔이 빛과 같은 속도로 전자를 쏘아준다면 신호를 증폭할 수 있다.”

그의 설계에 따른 통신위성용 신호증폭기는 진공관증폭기로서, 텔스타에서 유일하게 진공관부품이었다.

짐 피스크 신임사장은 통신위성의 효용성에 눈을 뜨고 5천만달러를 투자하며 사업을 적극 밀었다. 최초의 음성위성통신프로젝트인 에코 위성이 성공하자 이제 대서양을 횡단하는 TV통신위성을 쏘기로 했다. 텔스타였다.

피어스가 설계한 텔스타는 지상 4천800km에 있었고 지상에서 조종할 수도 없었지만 대양 건너쪽 TV방송을 보게 해 준 최초의 위성이었다.

■텔스타, 방송사의 새로운 획을 긋다.

······10,9,8,7,6,5,4,3,2,1.발사!1962년 7월10일. 이륙추진 중량이 400톤이 안되는 델타로켓이 케이프 커내버럴 우주발사대를 박차고 하늘로 올랐다.

안녕하십니까, 제럴드 콜링우드입니다. 인류는 오늘 통신위성 텔스타가 가져다 주는 약속으로 거보를 내디뎠습니다. 오늘아침 발사된 텔스타는 완벽하게 궤도에 진입했습니다.

이날 저녁 방송에서 CBS앵커 찰스 콜링우드는 감격스럽게 선언했다.

발사 다음날 미 동북부 메인주 앤도버 지상기지국.

텔스타통신위성의 증폭 신호를 받은 프랑스 플르무르 바두 기지국으로 미국의 TV화면이 전송돼 생생한 화면을 제공했다. 텔스타가 유럽에 전한 최초의 TV화면은 앤도버 기지국의 돔형 안테나와 성조기였다.

하지만 극적인 순간은 그 정도가 아니었다.

약 2주 후 케네디 대통령이 워싱턴 국무부에서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연단에 나오기 전에 텔스타의 ‘하늘의 창문’이 열리면서 대양을 둘러싼 감격적인 순간을 확인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케네디 대통령의 입장이 늦어지자 CBS카메라는 마침 시카고에서 열리는 있는 시카고 컵스와 필라델피아 필리스간의 메이저리그 경기장으로 잠시 화면을 연결시켰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방금 이 경기가 게임이 텔스타와 연결돼 유럽으로 전송된다는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유럽의 야구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아나운서는 흥분된 목소리로 소리쳤다.그 소리는 껌으로 유명한 리글리사가 후원한 리글리 구장 관객들의 함성소리와 함께 생생한 현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타자 토니 테일러가 공을 우익수 조지 앨트먼쪽으로 쳐내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바로 화면은 곧바로 케네디대통령의 기자회견장으로 옮아져 갔다.

하지만 이날의 18분 동안 텔스타가 열어놓은 ‘하늘의 창’은 시카고 리글리구장에서 워싱턴을 오가면서 미국,캐나다와 유럽의 시청자들에게 첨단 기술의 위력을 여과없이 과시했다.

텔스타는 이 역사적인 하루 중 단 18분 만에 이날의 스포츠, 정치,경제를 아우르면서 대서양 양안의 미국과 캐나다 유럽인들에게 통신위성과 첨단기술의 성과를 각인시켰다.

■텔스타, 미소 냉전과 핵무기실험의 희생양 되다.

“텔스타 위성의 서비스가 안됩니다.”

1962년 12월 앤도버기지의 엔지니어가 텔스타 위성으로 통신서비스가 안된다는 긴급 보고를 올렸다.

영국 콘월주 군힐리 다운스와 프랑스 북부해안 플르무르 바두에 있는 두 기지국도 상황은 같았다.

1958년 발사된 스코어(SCORE)위성은 테이프녹음기에 아이젠하워대통령의 크리스마스인사를 실어 전세계에 전달하는데 사용됐지만 12일만에 사라졌다. 또 1960년 발사된 에코 위성은 단순히 전파를 반사시키는데 금속 풍선에 불과했다.

텔스타1은 지구에서 1000~6000km상공에서 타원궤도로 도는 위성이었다. 2시간36분 만에 한번씩 지구를 돌지만 지상수신국과의 동기화 시스템은 없었다. 따라서 텔스타가 한번 지구를 돌 때마다 18분 정도만 지상관제국과 통신할 수 있었다. 지금같은 정지궤도 통신위성이 아니었다.

대서양상에 텔스타가 돌아와서 교신할 수 있는 18분은 마치 ‘하늘에 열린 창문’같은 황금같은 시간대였다. 그것은 케네디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양쪽세계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높은 곳에 위치한” 위성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텔스타는 미소 냉전에 따른 핵군비 경쟁 당사자 양측의 직격탄을 맞는 희생양이 된다.

전후 사정은 이랬다.

과학자들은 텔스타가 발사되기 하루 전인 7월9일 미국이, 이 해 10월 소련이 고공에서 핵폭탄 실험을 한 것이 텔스타 가동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방사능이 반 앨런대에 영향을 미쳐 반도체의 성능을 저하시켰다”는 게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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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게 77kg,지름 87.6cm인 이 통신위성은 2년 이상의 수명을 채우지 못하고 반년 만인 이듬해 2월 21일 이 5천만달러짜리 인공위성은 기능을 멈춘다. 그리고 발사비 300만달러짜리 후속 텔스타2가 뒤를 잇는다.

최초의 통신위성인 텔스타의 흔적은 뮤직그룹,텔스타 축구공, 그리고 무엇보다도 텔스타18호로 여전히 지구궤도를 도는 위성에 그 이름을 남기면서 최초의 통신위성이 가져다 준 의미와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