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과 삼성전자는 지난 8일 ‘아이폰4’, ‘갤럭시S’ 등 차세대 스마트폰을 각각 내놓으며 전면전에 돌입했다. 애플 아이폰4 발표에 맞춰 날을 잡은 삼성전자의 맞불 작전이다. 그만큼 애플이 강적이라는 뜻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세계 휴대폰 점유율 2위에 오르는 등 파죽지세를 이어왔다. 미국에서는 1위 노키아도 밀어내버렸다. 휴대폰 제조 최강은 이미 삼성전자라는 소리도 나왔었다. 하지만 삼성전자도 아이폰 쇼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아니, 아이폰 쇼크의 최대 피해(?)자라는 분석도 존재한다.
애플이 내세운 아이폰은 소프트웨어와 플랫폼을 중심으로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었다. 삼성전자의 주특기인 하드웨어를 무대 밖으로 밀어낸 것이다.
이제 삼성전자는 뛰어난 하드웨어는 기본으로 가져가고, 소프트웨어를 확 키워 애플과 승부하려 한다. 구글과 연합해 운영체제 ‘안드로이드’도 도입했다. 주도권 쟁탈을 위한 카드들을 쏟아내는 모습이다. 좌담회 참석자들에게 애플을 상대로한 국내 업체들의 경쟁력에 대해 물었다. 사회: 아이폰 국내 출시와 함께 삼성전자, SK텔레콤 등에 대한 불만이 터졌다. 이 불만들이 아이폰 열풍으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상당하다. 이 같은 불만의 실체는 무엇인가.
한상기 : 우리나라 휴대폰 업계가 오로지 ‘타도 노키아’만 생각한 것이 문제다. 당장의 점유율 확보를 위한 ‘가격경쟁’과 ‘보급형 제품 강화’ 등에만 집중하니 스마트폰 트랜드롤 놓쳤다. 올 초만 해도 스마트폰 얘기를 꺼내면 ‘국내서는 아직 이르다’라는 기업도 있었다.
노상범 : 기본적으로 동일 제품을 외국에서 싸게 팔거나, 국내서는 사양을 낮춰 나오는 행태가 이어지면서 이용자 원성이 커졌다. 토종 기업의 실책을 논할 때 결코 뺄 수 없는 부분이다.
김지현 : 개발자 육성책 부족도 문제다. 뛰어난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소스를 가져야 하지만 삼성전자와 SK텔레콤은 이를 못 해줬다. API(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를 비롯한 모든 것이 부족했다. 재료 없이 맛있는 요리를 만들라는 것과 다름없다. 국내 개발자들의 작품이 적었던 이유다.
고현진 : 애플은 미국 애플리케이션 시장 주도권을 잡았다. 현지 이통사보다 큰 힘을 발휘한다. 수익 확대를 위해 애플리케이션 유통망 주도권을 노린 국내 이통사들이 ‘애플 상륙’을 경계한 이유다. 국내 제조사들은 애플이 미국에서 한 것처럼 ‘새 길’을 열지 못했다. 애플을 보며 반성할 부분이다.
노상범 : 트위터 실적과 애플 신드롬 크기가 비례한다는 분석이 있다. 그만큼 애플이 온라인 입소문 지원을 받았다는 뜻이다. 충성도 높은 애플 팬들은 세계적으로 넘쳐나고, 경쟁사 입지는 그만큼 줄어들었다. 애플이 이용자 중심 제품으로 새로운 문화를 만든 것이다. 일시적인 마케팅 행사와는 차원이 다르다.
사회: 삼성전자가 아이폰4 대항마로 갤럭시S를 출시했다. 기기를 분석해 본다면?
김지현 : 갤럭시S를 직접 써보니 잘 만든 제품임에는 이견이 없을 듯하다. 특히 다른 안드로이드폰과 비교해 UX(사용자 경험)가 뛰어나다. 국내서 판매량 100만대는 무난히 넘을 듯하다.
노상범 : 갤럭시S와 견줄만한 모델은 세계적으로 2~3개에 불과하다. 삼성전자의 역량에 새삼 놀랐고, 옴니아2를 내놓은지 반년만에 이룬 결과라는 것이 더 주목된다. 옴니아2의 열악함을 감안하면 굉장히 빠른 발전 속도다.
한상기 : 안드로이드 진영 최고 작품이다. 삼성전자가 정말 고민을 많이 했다. 아이폰 이후 국내 사용자들이 삼성전자에 따가운 소리를 쏟아냈는데 적잖이 반영된 듯하다.
사회: 하지만 스마트폰 시장서 하드웨어 성능이 성공 보증수표가 아님은 이미 증명됐다. 삼성전자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김지현 : 옴니아2를 보자. 국내서 60만대 이상 팔리며 아이폰과 비슷한 성적을 냈다. 하지만 이용자들의 인터넷 활용도는 아이폰 대비 턱없이 부족하다. 그만큼 ‘할 거리’가 없다는 뜻이다. 갤럭시S도 같은 한계를 지녔다. 최근 애플 앱스토어는 애플리케이션 등록 건수 20만개를 넘겼는데 안드로이드 진영은 5만개 수준이다. 이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 삼성전자의 당면 과제다.
한상기 : 중요한 지적이다. 삼성전자가 애플리케이션 생태계 확대의지를 가졌는지 의문이다. 애플과 삼성전자의 발표 행사를 보면 차이가 극명하다. 애플은 아이폰4 발표 후 3박4일동안 개발자들에게 자세한 교육을 실시했지만, 삼성전자는 제품 공개 ‘쇼’만 하고 끝이다. 제품 변화에 따른 개발자 교육, 지원 얘기를 꺼냈어야 했다. 심지어 아마존이나 이베이 등 인터넷 기업들도 개발자 컨퍼런스를 연다. 삼성전자는 아직 시장을 리드 할 준비가 덜 됐다.
노상범 : 옴니아2는 아이폰과 비교 받으며 확실히 고전했다. 거의 조롱 수준인 비판이 얼리어답터들에게서 쏟아졌다. 이용자와 소통하려는 삼성전자 움직임이 더 필요했다. 갤럭시S 출시를 기점으로 의미 있는 변화를 기대해본다.
고현진 : 스마트폰의 주요 전략지는 플랫폼이다. 이를 장악하는 기업이 주도권을 쥘 것이 분명하다. 안타깝게도 토종 기업들의 플랫폼 장악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결국 안드로이드와 같은 공개 플랫폼을 도입해야 하는데, 이 부분에서의 역량차이가 실적으로 이어질 것이다.
김지현 : 시장서 가격 결정권을 애플이 쥐었다는 것도 관전 포인트다. 애플은 아이폰4 가격을 당당히 공개했지만 삼성전자는 그러지 못했다. 아이폰4와의 경쟁을 의식, 가격 수위 조절에 고심하는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가 애플로부터 시장 주도권을 뺏지 못하는 이상 계속 걱정해야 할 문제다.
■무엇이 한국판 스티브 잡스 탄생을 막는가?
애플을 얘기하면서 스티브 잡스를 빼놓을 수 없다. 스티브 잡스와 애플은 사실상 동격으로 통한다. 잡스의 열정이 애플의 성공으로 불러왔다. 그래서일까? 한국에서도 스티브 잡스같은 인재를 키워야 한다는 알듯말듯한 구호가 힘을 얻고 있다. 정부 차원의 지원도 본격화됐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 같은 인재는 뚝딱 만들어질리 없다. 그렇다면 그건 기적이라는 지적도 많다. 스티브 잡스 육성론에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사회: 애플 쇼크가 한국에도 몰아쳤다. 토종 기업들에게는 자성의 기회가 된 것으로 보인다. 정부에서는 한국판 스티브 잡스를 키운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김지현: 비즈니스 인재가 돈만 들인다고 뚝딱 나오는 것이면 얼마나 좋겠나.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연예인 키우듯이 데려다가 열성으로 교육시킨다고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사회가 인식해야 한다.
한상기: 가수 서태지를 보라. 이런 친구들이 기업가로 나왔다면 비즈니스 스타가 됐을 것이다. 많은 인재들의 관심사에서 기업이 빗겨나서 걱정이다. 사실 학생 수만명이 연예인이 되겠다고 학업을 중단하는 나라에서 스타 기업인이 나오는 것이 가능할까. 우리는 연예인이 롤모델인 사회에 살고 있다.
노상범: 외국 기업을 분석하는 국가적 시각도 부족하다. 그들이 국내외서 펼치는 활동에 어린 인재들이 보이는 관심은 적다. 중간의 연결 고리가 없기 때문이다. 외국에 나가야만 외국 기업을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안타깝다.
사회: 그렇다면 정부의 인재 육성 지원이 아예 필요가 없다는 뜻인가.
고현진: 아니다. 정부 지원은 필요하다. 아직 시장 규모와 기업 역량이 적은 우리나라에서 정부 지원을 포기할 수 없다. 다만 적면전인 기술 개발 투자와는 달리, 인재 육성은 정부가 우회적 형태를 보여야 한다.
김지현: 지원 초점을 제대로 맞춰야 한다. 특정 몇 명에 대해 교육을 집중 지원하는 인물 중심 투자는 의미가 없다. 주입식 속성 교육으로 어떻게 잡스가 탄생하겠나. 구시대적인 발상이다. 인물이 아닌 환경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토양을 만들자는 것이다.
한상기: 맞는 말이다. 특히 무엇이든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잡스를 보라. 즐길 줄 아는 이가 시장 요구를 제대로 파악, 제품에 녹여낸다. 우리는 즐길 준비가 안됐다. 훌륭한 학자라면 몰라도 감각 있는 비즈니스맨은 키우기 어려운 환경이다.
고현진: 국내 시장은 위대한 기업이 나오기에는 규모가 적다. 단, 새로운 기술을 시험하기에는 대만이나 홍콩보다 유리한 곳이다. 앵글을 돌려 생각해보면 실험적인 개발자를 원하는 기업이 생각보다 많다는 뜻이다. 이를 인재 육성과 연계시킬 수 있다.
한상기: 미국 인구 3억명 중 잡스 급 천재는 3명 나오기도 힘들다. 현재로서는 마크 주커버그 페이스북 CEO 정도가 젊은 천재로 분류되겠다. 미국도 이러한데 인구 5천만인 우리나라에서 천재가 쏟아지길 바라는 것은 과욕이다. 게다가 급진적인 주입식 인물 투자 하에서라면 더욱 그렇다. 어렵지만 방법은 하나다. 앞서 밝혔듯 천재가 크기 좋은 환경을 만들며 기다려야 한다.
노상범: 스타 비즈니스맨을 사회적으로 조망하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성공한 사람이 대접을 받아야 인재들이 롤모델로 삼을 것이 아닌가.
사회: '경영자 스티브 잡스'를 평가한다면.
한상기: 소비자를 자기편으로 만드는 경영철학은 어느 분야에서도 통한다. 잡스는 소비자들 애플 마케터로 만들었다. 이제 잡스가 나서지 않아도 소비자들이 애플을 알아서 홍보한다. ‘잡스 교주’의 ‘애플 신도’라고 하지 않는가.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는 잡스의 소비자 요구를 제품에 녹이려는 잡스의 노력 엄청났음을 명심해야 한다. 잡스는 제품으로 소비자와 소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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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IT와 문화의 코드 융합이 갈수록 거세다. 잡스는 일찍이 이를 알았고, 딱딱한 IT 제품에 문화 코드를 적용했다. 결과는 알다시피 대 성공이었다. 앞으로 IT를 제대로 하려면 콘텐츠 이해도가 높아야 한다. 콘텐츠를 지배하는 이가 IT 강자인 세상이다. 오로지 연구실에서 두꺼운 기술서적에만 매달리는 형태로는 성공이 힘들다는 뜻이다.
노상범: 잡스는 검색 시장에 대해서는 욕심을 버렸다. 애플은 아직 하드웨어 회사고 인터넷 서비스 투자 경험이 없기 때문에 구글과 검색으로 붙으면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다.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한다. 경영자로서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구분하는 능력을 귀감으로 삼을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