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구코너]빌 게이츠의 MS 위기일발!

1998년 5월 18일=미 법무부와 20개주 역사적 반독점 소송

일반입력 :2010/05/13 16:29    수정: 2010/05/24 17:47

이재구 기자

법무부-20개 주, MS의 끼워팔기 관행에 불만 폭발

연방정부가 소송을 미룬다면 윈도98의 판매를 연기할 수 있습니다. 기꺼이 조금 양보할 수도 있습니다.

1998년 5월 초 워싱턴.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 게이츠 회장과 빌 뉴컴 수석자문위원은 자신만만했다.

미 법무부 반독점국 관리 및 주정부 대표들과 반독점소송을 앞둔 사전 조정 협상자리였다.

하지만 며칠 후인 18일. 조엘 클라인 미 법무부차관보는 MS에 대해 반독점 소송의 포문을 열었다.

주제는 로터스,워드퍼펙트, 그리고 MS에 골탕먹은 많은 SW회사들이 공감하던 것이었다. 소장에는 MS가 윈도 운영체제(OS)에 IE를 포함시킨 것은 물론, 윈도에 업무용 프로그램을 불법적으로 포함시킨 것까지 포함됐다.

연방거래위원회(FTC)와 법무부가 공식 착수하길 기대해 왔던 이 역사적 소송에 법무부 외에도 미국 20개 주의 소장이 쇄도했다.

법원은 이 SW공룡에 대한 기소장을 파일로 정리했다. 소장은 MS 내부문서와 회사경영자들이 작성한 파일들로 빼곡했다.

열거된 증거는 매우 정확한 것이었다. 법원은 빌 게이츠의 전략과 의도가 명백하다고 보았다. 법원은 MS가 자신의 흔적을 지우고 본심을 감추려 했음을 지적했다.

사실 이번 건 처럼 속셈을 감추거나 상대방을 속이는 것은 MS에게 처음은 아니었다. DR-DOS를 시장에서 내몰 때 노벨의 레이 누어다 회장에게도 썼고 IBM의 OS/2를 배제할 때 짐 캐너비노에게도 사용한 방법이었다.

MS의 수석자문위원은 “그 파일들이 하급직원들 것 정도”라며 “중요하지 않다”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는 빌 게이츠의 이메일도 포함돼 있었다.

소송이 있기 몇 주 전 사교모임에서 빌 게이츠는 친구에게 “연방정부가 업무용프로그램을 윈도에 통합시킨 것을 기반으로 하여 사건을 추적하는 것이 신경쓰인다”고 말했다.

그 예감은 적중했다. 18일 워싱턴에서는 장거리전화시장 독점에 대한 판결결과 AT&T가 분할된 1984년 이후 최대 반독점소송이 시작됐다. 그 실마리는 인터넷이었다.

■넷스케이프를 타도하라“인터넷은 우리 생활 깊숙이 퍼져있습니다. 윈도에 있어서 그것은 매우 간단합니다. 우리는 최고의 인터넷접속 시스템이 되길 원합니다......이를 위한 주요한 방법은 통합입니다.”

1995년 12월 7일. 빌게이츠는 기자들이 참석한 인터넷전략 워크숍에서 인터넷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각과 역할변화를 강조하고 있었다.

이 연설 있은 후 라이벌인 넷스케이프커뮤니케이션의 주식은 17%나 떨어졌다. 그리고 회복될 줄 몰랐다.

눈치빠른 빌 게이츠가 인터넷의 신성으로 떠오른 넷스케이프를 노리고 있다는 증표였다. 이 주가 곡선은 인터넷브라우저 세계가 곧 빌 게이츠의 수중에 떨어지리란 걸 온 세상사람들이 알아챘다는 것을 반영한 것이었다.

그랬다. 빌 게이츠는 점점 인터넷에 대해 점점 더 많이 알아가고 있었다.

6개월 전인 5월 26일. 빌이 핵심간부에게 남긴 메모에는 자사가 언론에 누설되고 있다고 적혀 있었다.

‘인터넷 물결(The Internet Tidal Wave)’이라는 제목의 메모에는 ‘인터넷’에 대해 ‘1981년 IBM의 PC가 도입된 이래 가장 중요한 발전’이라고 쓰여 있었다.

빌 게이츠는 “인터넷은 넷스케이프라는 새로운 경쟁자를 만들어 냈다. 그들은 브라우저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다. 넷스케이프는 멀티 플랫폼(윈도,매킨토시,유닉스 등에서 가동하는 다중 플랫폼)전략을 추구하고 있으며 이 전략을 통해 윈도에 종속되지 않는 브라우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경각심을 촉구했다.

넷스케이프가 윈도 운영체제(OS)를 중심으로 성장해 온 MS를 잠식할 것이란 우려는 정확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경영진들에게도 공감을 얻고 있었다.

1년 후인 96년 6월22일 매니저 앤드류 라이트는 보고서는 다음과 같았다.

“인터넷등장은 HTTP(Hyper Text Transfer Protocol)같은 인터넷 프로토콜을 사용하는 많은 플랫폼을 만들었으며 특히 넷스케이프가 윈도API를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MS사를 공격하고 있다.....다른 벤처들이 넷스케이프 제품을 이용해 응용SW를 개발한다면 이는 머지않은 장래에 MS를 심각한 위험에 빠뜨릴 것이다.”

■익스플로러냐, 내비게이터냐?

1996년 초 컴팩컴퓨터의 첼리스트 던 고객SW책임자는 MS로부터 한통의 협박편지를 받았다.

“만약 OS의 일부분으로 MS네트워크와 인터넷익스플로러(IE)의 탑재를 거부하면 컴팩사와의 윈도95 계약을 취소할 것입니다.”

그것은 누가 봐도 OS에 종속되지 않는 넷스케이프내비게이터가 MS의 윈도시장을 잠식할 가능성에 대비한 조치였다.

이 해 10월 이 문제로 자주 다투던 컴팩은 MS의 OEM영업부서장에게 전화를 걸어 문제 해결을 시도했다.

당장 그날로 MS의 편지 답장이 날아 왔다.

“MS는 컴팩사가 MS네트워크와 IE아이콘을 윈도95 바탕화면에 원래대로 돌려놓을 것과 함께 MS네트워크와 IE아이콘,인터넷설정마법사 아이콘을 원래자리인 윈도 95의 시작 버튼속에 들어가 있게 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1년 후. MS의 윈도와 IE끼워팔기에 대한 반독점혐의를 조사 중인 미법무부 검사들이 컴팩을 방문했다.

“왜 컴팩사는 IE의 경쟁상품으로 넷스케이프를 고려하지 못했습니까?”

컴팩은 “그렇게 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브라우저가 MS사의 운영체제(OS) 일부분으로서 함께 실행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랬다. MS는 당시 IE4.0이 윈도95의 일부분으로 만들어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컴퓨터 제조사들에게는 마치 그것이 윈도와 떨어질 수 없는 것처럼 해서 팔도록 요구한 것이었다.

검사는 이어 “왜 그당시 컴팩사는 IE를 없애고 싶어했느냐고 했습니까?”라고 물었다.

“넷스케이프사는 우리의 실질적 인터넷 브라우저 파트너였던 만큼 이 회사에 컴팩 프리자리오 컴퓨터용 브라우저의 지위를 주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라는 게 컴팩의 답변이었다.

■OS끼워팔기,무료제공으로 족쇄를 채우다

1998년 2월. 짐 박스데일 넷스케이프 최고경영자(CEO)는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MS의 인터넷익스플로러(IE)의 시장점유율은 96년 초 5%에서 이제 60%를 넘어서고 있었다. 95년 90%였던 내비게이터의 시장점유율은 모두 MS에게로 갔다.

95년 8월출시된 IE 는 3개월 후부터 윈도95와 함께 무상 제공됐다. 하지만 사실상 그 가격은 윈도95에 매겨진 셈이었다.

넷스케이프의 시장가치는 계속 떨어졌다.

마크 앤드리센과 동료가 ‘모자이크’로 불리는 웹브라우저를 들고 넷스케이프를 창업한 것이 3년 전. 짐 박스데일은 매코셀룰러/AT&T와이어리스 최고경영책임자(CEO)와 페덱스 최고운영책임자(COO)를 거쳐 이 회사의 대표로 합류했다.

95년 8월 9일 하늘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기업공개(IPO) 당시를 생각하면 상상도 못할 추락이었다. 개장 첫날 주당 14달러로 시작해서 폐장을 몇분 앞두고 75달러까지 수직 상승한 것이 엊그제 같았다.

넷스케이프의 브라우저인 내비게이터는 어느 컴퓨터에서나 인터페이스가 되는 제품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SW시장의 최상위 포식자이자 IT업계의 공포의 대상인 MS의 사냥감으로 희생되어야 할 이유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비게이터는 MS의 핵심 제품인 윈도95 OS와 무관한 만큼 소비자들로 하여금 다른 OS를 선택하게 할 가능성이 충분했다. 아직 빌 게이츠는 OS경쟁자인 노벨,선 등 반대진영을 완전히 제압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MS에게 넷스케이프의 존재는 눈엣가시였다. 그것은 MS의 윈도95 OS매출을 저해할 화근이었지만 해결책은 OS에 있었다.

97년 MS 내부에서 “IE의 장점만 갖고 브라우저시장 점유율을 높이긴 어렵다. 사람들이 넷스케이프 대신 IE를 쓰게 하려면 OS의 강점을 이용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일 것이다”라는 말이 나왔다.

MS의 공세는 무서웠다. IE 1.0버전을 내면서 윈도95의 일부로서 플러스팩 SW로 무료 제공하는 전략이었다. MS가 윈도95에 IE를 끼워파는 공격에 나서자 넷스케이프는 족쇄가 채워진 듯 손을 쓸 수가 없었다.

■논란 속의 판결···빌 게이츠의 승리

1999년 11월 5일 토머스 펜필드 잭슨판사는 “MS는 x86프로세서 계열 PC의 OS지배력을 독점하고 있으며 이 위협을 없앨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MS는 2000년 4월3일까지 회사를 둘로 쪼개 하나는 OS를, 또다른 하나는 응용프로그램을 생산토록 하라”고 판결했다.

판결 근거는 독점이나 계략 형태를 띠며 거래를 제한하는 모든 계약(셔먼법 1절), 불법 끼워팔기를 통한 시장 제한, 배타적 거래 (2절)등이었다.하지만 2001년 1월21일부터 업무에 들어간 부시행정부는 이를 뒤집어 버렸다. MS에 대한 반독점 소송은 내용은 명확했지만 정치적 색채가 짙은 것이었다.

법무부는 “MS를 2개로 분리하지 않을 것이며 MS가 윈도95와 98에 불법으로 브라우저를 탑재하려 했는지에 대한 조사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코드 교체’나 ‘미래의 MS제품에 끼워팔기를 제한하는 내용 등도 없어졌다.

신문과 방송은 ‘빌 게이츠의 승리’로 제목을 달아 보도했다.

2004년 6월 30일 이어진 소송 8년 만의 항소심은 이의를 기각했고, MS는 불복한 2개 주에 배상금으로 합의하고 이 역사적 사건을 종결지었다.

비즈니스위크는 이미 재판 초기 여론 조사 결과를 통해 빌 게이츠에게 ‘흠짐이 안생긴다’는 의미의 ‘테플론 빌(Teflon Bill)’이란 별명을 붙였다.

이제 윈도95의 날개를 얻었다. 토머스 프리드먼은 이듬해 출간된 저서 ‘세계를 평평하다’에서 글로벌화의 일등공신으로 윈도95를 꼽았을 정도였다.

관련기사

일각에서는 ‘테플론 빌’이 가능했던 원인에 대해 80~90년대에 전자대국으로 급부상한 일본의 발흥 속에서도 성공을 과시하며 미국 첨단산업의 위상을 높여준 그의 공로를 거론하기도 한다.

역사적 반독점소송의 실마리를 제공하며 한때 90%이상의 시장점유율을 보였던 IE는 2010년 3월 현재 59%대의 점유율로 추락중이다. 역사적 반독점 소송에서도 상처입지 않았던 ‘테플론 빌'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자선사업가로 변신했다. MS는 브라우저와 OS 등 모든 전선에서 다양한 형태의 제품으로 도전받으며 시장을 잠식당하고 있다. <목요연재>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