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구를 발명한 에디슨의 고민
왜 전구 안쪽이 까맣게 될까?”
1883년 3월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의 뉴저지주 멘로파크 실험실. 그와 연구팀은 전구의 내부에서 뭔가 이상한 일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아챘다.
텅스텐 필라멘트가 등장하기 이전. 에디슨은 탄소필라멘트를 이용해 전구 성능 개량을 위한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나타나자 당황스러웠다.
이들은 전류가 직접 통하는 필라멘트가 타버리지 않도록 이미 전구내부를 진공상태로 만들어 놓은 터였다.
그럼에도 맑은 유리로 만들어진 전구 안쪽 유리벽은 금세 그을음이 생겼고, 연구진의 속도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목표인 전구의 상업화를 위해서는 이 난관을 넘어서야 했다.
공동연구자인 업톤은 그을음을 없애기 위해 내부에 금속접시를 넣어보았다. 필라멘트와 금속 접시 사이에 전혀 아무런 연결도 시키지 않은 채였다.
이 조치가 문제를 해결하진 못했지만 놀랍게도 전류가 금속접시 안으로 흘르는 현상이 발견됐다.
전류는 필라멘트를 통해서만 공급됐다. 하지만 필라멘트를 따라 흐르는 전류량을 늘리니 접시에서 흐르는 전류도 같은 비율로 늘어났다. 이는 분명 필라멘트의 전류가 진공상태를 가로질러 금속접시로 흐르고 있다는 증거였다.
“진공상태에서 뭔가가 흐르다니!” 정말 이상한 현상이었다. 당시까지 알려진 과학계의 정설은 ‘진공상태에서는 전류가 흐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에디슨 팀은 뜻하지 않게 진공상태에서 전자의 흐름(전류)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는 후일 전자산업의 시작을 알리는 진공관 다이오드·증폭기·오디콘·비디콘으로 이어지는 개발의 시작이었다.
■라디오신호를 소리로 바꿔줄 열쇠
진공상태에서 전류가 흐르는 이 현상은 이후 수년간 대서양 건너 유럽의 전자박람회에서 ‘에디슨 효과’로 불리며 주목을 받았다. 에디슨이 좀 더 이를 지켜 봤더라면 현대전자산업의 물꼬를 튼 라디오용 핵심 전자부품인 진공관을 발명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축음기,마이크,백열전구 등 잇따른 발명과 이의 개선, 뒤이은 특허소송 등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그는 이 현상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에디슨효과전구는 보물섬처럼 발견되기만을 기다리는 또 하나의 비밀스런 현상을 간직한 채로였다.
이 현상은 훗날 라디오 안테나로 수신된 교류전파신호를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직류음성신호로 바꾸는 데 그대로 적용될 것이었다.
이 유용한 현상을 실용화하는 영예는 1882년 이래 에디슨전등회사의 고문을 맡았던 존 앰브로즈 플레밍 교수의 몫이었다.
노팅엄대에서 온 플레밍은 1884년 런던칼리지대 교수로 복귀했지만 여러 개의 에디슨효과전구를 주문해 실험에 열중했다.
그 해 겨울 플레밍은 초당 120회정도 방향을 바꾸는 교류(120Hz)를 발생시키는 발전기에 전구 필라멘트를 연결했다.
이 과정에서 교류로 공급된 필라멘트전류가 금속접시를 향해 흐르면서 이상한 현상을 보였다.
플레밍은 깜짝 놀랐다. “전구가 교류를 직류로 바꾸다니!”
하지만 그 누구도 ‘들리지 않는 라디오 전파’를 ‘소리’로 변환해 줄 저 깊숙이 자리잡은 비밀을 알지 못했다. 플레밍도 20년 후에야 교류를 직류로 바꿔 진공관 라디오시대를 열어줄 '밸브'를 개발한다.
■금속박을 투과한 입자의 정체는? 많은 사람들이 이 신비한 현상 너머의 궁극적 원인을 규명하고자 매달리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사람이 에디슨보다 몇 살 아래인 캐빈디시의 조지프 톰슨이었다.
과학자들은 벤자민 프랭클린이 빗속에서 연을 날리며 행한 번개실험 같은 경험을 실험실에서 재현하고자 했다. 실험실에 설치된 진공관 속에 가해지는 고전압은 번개와 같은 것이었다.
가이슬러관, 크룩스관처럼 발명자의 이름이 붙은 유리관의 한쪽 음극선 끝에 전압을 가하면 반대쪽 유리에 아름다운 색이 퍼졌다. 이는 전자총을 쏘아서 화면에 상을 맺게 하는 브라운관 TV의 원형이었다.
톰슨은 음극선 진공관을 이용해 이를 통과하는 전자빔의 모든 것을 밝혀내리라 결심했다.
그는 에디슨효과전구를 확대한 모양의 실험용 관을 그럭저럭 만들어 냈다.
음극선은 가끔 불완전한 진공관 주변의 가스원자와 충돌해 광채를 잃을 때까지 화려하게 빛나기도 했다. 유리관 주위에 자석을 놓자 음극선은 완벽하게 나선으로 회전했다. 음극선 빔이 입자임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전자빔이 구멍도 남기지 않고 고체인 얇은 금속판막을 통과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톰슨은 이 모순된 결과를 해결하기 위해 정교한 수학적 계산에 매달렸다.
그는 전자빔이 초당 3만2천km 속도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당시 발견된 그 어느 물체보다도 빨랐다. 그는 또 전자빔이 입자라는 가정하에 질량을 계산한 결과 이 미립자의 질량이 ‘수소원자의 1천분의 1도 안된다'는 것을 계산해 냈다.
하지만 당시 과학자들에게 ‘모든 물질 가운데 가장 작고 더 이상 쪼개질 수 없는 것’으로 여겨왔던 원자가 쪼개진다는 것에 놀랐다. 더욱이 원자 가운데 가장 작은 수소원자가 쪼개진다는 것은 충격이었다.
■톰슨이 발견한 전자와 에디슨효과의 파급
에디슨전구 안쪽에 그을음이 생기는 현상이 발견된 지 14년이 지난 1897년 4월 30일 저녁. 걸출한 케임브리지의 물리학자 톰슨은 런던 로열유니버시티 강연장에 섰다.
“나는 최근 흥미로운 실험을 했습니다.”
톰슨은 그 때까지 알려진 과학적 지식과 배치되는 연설을 시작했다.
그는 이때까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최소단위로 알려진 원자를 관찰해 그 안에서 찾아낸 새로운 입자인 ‘미립자’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또 이 입자가 어떤 원자보다도 작아서 금속 원자안의 얇은 금속판 막조차도 흔적도 없이 통과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톰슨은 금속조각에 전기나 열을 가열하면 많은 수의 전자가 분리되어 나와 흐르는데 이 전자의 흐름을 ‘전류’라고 결론지었다.
원자가 더 작은 많은 입자로 이뤄졌다는 톰슨의 충격적 결론에 좌중은 저항과 반대의견으로 들끓었다. 하지만 이 이론을 받아 들이자 이전에는 입증할 수 없었던 원자구조와 전기에 대한 모든 것이 풀렸다.
에디슨효과에 따라 전류가 한쪽으로만 흐르는 원리가 밝혀진 몇 년 후. 플레밍교수는 문득 20년전 실험이 떠올랐다. “왜 전구를 사용해서 시도하지 않았지?”
그는 필라멘트에서 금속접시로 흐르는 전류는 어떤 기계스위치보다 빠른 초당 수백만번의 속도로 켜졌다(on), 꺼졌다(off)를 반복할 수 있다는 특성을 알아냈다.
마치 수도꼭지처럼 전류를 보냈다 막았다 할 수 있는 진공관을 개발한 플레밍은 이를 ‘밸브(valve)'라고 불렀다. 이는 교류전파신호를 직류신호로 전환해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해주는 기능을 했다. 2년후 미국의 리 드 포레스트는 여기에 금속 하나를 더해 음성 증폭기인 오디온(Audion)을 만들었다.
이로써 라디오로 수신해 음성을 만드는 것에 더해 그 소리를 증폭해 들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인류는 에디슨효과를 관찰해 전자의 흐름과 조절 능력을 을 깨우치면서 새로운 전자문명을 일궈가기 시작했다.
192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본격적인 라디오시대, 39년말 RCA주도의 전자 TV시대의 개막을 가져다 줬다.
30년대에는 지상 및 비행기 레이더용으로 진공관이 사용됐다.
하지만 기계식 컴퓨터 스위치에 진공관이 사용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30년대 중반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때까지는 기계식 컴퓨터로 만족해야만 했다.
이같은 진공관을 이용한 전자의 조절과 진공관문명은 1948년 최초의 반도체가 발명된 이후로도 25년이상 왕성하게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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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빈디시대학은 톰슨의 전자 발견을 기리기 위해 연구소 건물벽에 기념명판을 걸었다.
거기에는 “1897년 여기 오래된 실험실에서 톰슨이 전자를 발견하다. 이것은 물리학의 초소구성요소이고 후에 화학전자공학,그리고 컴퓨터 공학의 토대가 되었다”고 쓰여있다.<목요연재>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