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홈쇼핑 왕희진MD "여자라는 편견을 버려"

일반입력 :2010/03/19 14:09    수정: 2010/03/22 09:46

이장혁 기자

신입사원들이 저에게 묻더라고요. 선배는 결혼도 하고 애기도 낳았는데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냐고요.

롯데홈쇼핑 가전담당 왕희진MD는 최근 신입사원 2명을 받았다고 한다. 물론 그와 같이 '여성'으로 말이다. 신입사원을 뽑은 지는 한참이나 지났다고 하는데 실제로 얘기를 나눠본 것은 그동안 몇 번 없다고 했다. 같은 팀이라도 자기들 업무가 바빠서 서로 챙겨주기가 힘들다는데.

뭐랄까요. 이쪽 일이 워낙 바쁘고 빡빡하다보니 여자라서 좀 힘든 구석이 많은게 사실이죠. 농담반 진담반으로 '여자MD'는 결혼은 생각도 하지마라라는 말도 돌아요. 그만큼 이 길로 들어서는건 그렇게 만만하게 생각하면 안된다는 뜻이겠죠.

그래서일까. '결혼과 육아' 여기에 MD라는 직업까지 억척스럽게 해내는 그의 모습에는 피곤함보다는 좀 더 전투적인, 열정적인 모습이 느껴졌다.

사실 여자MD들이 기피하는 분야 가운데 '가전'도 들어가있어요. 선호하지 않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우선 분위기 자체가 좀 딱딱하다고나 할까요. 거기에 한번 '가전'으로 시작하면 다른 카테고리로 갈 수 있는 확률이 낮아요. 예를들어 패션쪽을 한다면 나중에 잡화나 뷰티, 리빙 등으로 옮겨도 그렇게 크게 달라지는 건 없거든요. 하지만 가전은 다르죠.

왕MD는 사실 '가전'과는 그나마 친한 친구사이였다. 과거 모 대기업 유통판매채널에서 PC를 3년동안 접했던것이 계기가 됐다. 일할 당시에도 PC를 좋아서 했다기 보다는 온라인쪽 담당으로 옮기다보니 거의 백지상태에서 PC쪽을 맡게 되었던 것.

돌이켜보면 당시 사수를 잘 만났던것 같아요. 그때 기억나는게 입사를 했는데 (사수가) 일은 안시키고 삼성, LG, 대우, 만도 등 가전업체 카달로그를 전부 외우라는 지시만 있었죠. 2주에 걸쳐서 달달달 외우고 나서야 일 얘기를 할 수 있었어요. 말도 안되는 주입식 교육을 직장에서도 받았던 거죠.

하지만 그는 이런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모습이 될 수 있었다고 곰곰히 생각했다. 어렵다는 공부를 마치고서야 느낄 수 있는 일종의 희열이랄까. 지금은 누구보다도 '가전'이라면 누구에게도 지고싶은 생각이 없다고 한다.

현재 맡고 있는 카테고리는 대형가전과 주방가전이에요. TV나 냉장고, 세탁기, 에어콘 등이 대표적인 대형가전이고 믹서기, 토스터기, 전기그릴 등 주방에서 전기꽂는 제품들을 전부 주방가전이라고 합니다. 사실 저도 여자지만 대형가전보다는 주방가전이 좀 더 친숙하기도 하고 재미도 있는 것이 사실이에요. 물론 대형가전도 일하는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재미를 주죠.

그는 대형가전과 주방가전의 차이를 한 마디로 이렇게 말했다.

대형가전쪽은 한번 터지면 (매출이) '빵빵' 터지는데 반해 주방가전은 100대를 팔아도 사실 객단가가 작기 때문에 아무래도 좀 조용하다고 할까요. 예전에 LED TV 처음 나왔을때 700만원 짜리 TV가 1대 팔릴때 마다 담당자가 소리를 지르는데 그날 목이 다 쉬었던 적이 있었죠.

그러나 대형가전쪽은 아무래도 경쟁이 심해서 큰 이익을 보는 것은 더 어렵다고 한다. 이에 반해 주방가전쪽은 가격정책도 좋게 갈 수 있고 마진도 일정이상되서 이익률은 대형쪽보다 좀 더 높은 편이라고.

꼭 가전 카테고리뿐 아니라 다른쪽도 비슷할텐데 MD의 일상은 초단위로 움직일 정도로 빡빡해요. 저 사실 결혼하고 아이까지 있지만 결혼식 하루 전날까지 풀근무를 하고 다음날 메이크업을 받는데 담당하시는 분이 피부상태가 왜 이러냐고 했는데 괜히 눈물이 나더라고요.

특히 가전쪽은 유독 남성문화가 자리잡고 있어서 군대식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좋은 점은 (여자라고 빠지지 않고) 단결이 잘된다며 그는 웃음을 보였다.

그래도 참 매력있는 일이에요. 제가 출산휴가 내고 3개월동안 하루 종일 집에만 있었는데 이러다 너무 뒤쳐지는게 아닐까 하고 고민이 많았죠. 남들은 하루라도 더 쉬고 싶었다는데 전 복귀날짜 딱 맞춰서 한시간전에 미리 출근했어요. 아무래도 일이 더 좋은가봐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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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MD는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에피소드를 재미있게 던졌다.

동계올림픽 기간인데요. 김연아 선수가 경기하는 시간에 동료가 청소기를 팔았어요. 근데 청소기 구매자 대상으로 경품을 추첨해야하는데 경품 추첨이 어려울 정도로 주문량이 급감했었죠. 그때 생각하면 다들 아찔하다고들 해요. 아무래도 주목받는 경기가 있으면 다들 그 전후 시간대에 방송이 잡히길 바라죠. 김연아 경기라서 봐주는 것도 없었어요. 어떤 경우에도 매출을 올려야하는 MD의 숙명이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