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스테이션(PS) 등장(1994년 12월3일): 기적의 게임 비즈니스 소니를 깨우다
■오가 노리오의 결단이 서막을 열다
1992년 6월 24일. 소니의 한 과장이 ‘어전회의’로 불리는 경영회의에서 게임기를 독자개발해 게임산업에 진출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었다.
“필요로 하는 LSI의 집적도는 게이트어레이로 말해서 약 100만개입니다.”
“당신은 꿈을 꾸고 있는 거야! 그건 불가능해. 기껏해야 2만~3만개, 잘해야 10만개에 불과해.” 오가 사장이
말했다.
“결코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할 수 없다면 3D컴퓨터그래픽은 만들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가씨, 세계의 소니 대표이사 사장이나 되는 분이 닌텐도에게 그정도의 대접을 받고도 아무렇지도 않습니까? 겨우 종업원 800명인 회사에 세계의 소니가 어린애 취급을 당하고도 아무 말 않고 계실 생각이십니까?
닌텐도가 소니와의 게임기 공동개발 합의문서를 휴지처럼 내버리고 필립스와 제휴한 지 1년 째 되는 해였다. 소니의 게임기 사업 진출 여부를 최종 결정하는 자리였다.
“시카고 가전쇼에서 모두들 지켜보는 가운데 당한 겁니다. 이대로 물러서게 되면 소니는 세계의 웃음거리가 됩니다. 오가 사장님, 하게 해주십시오. 부탁합니다.” 그의 말엔 자신감이 배어 있었다.
“그렇게까지 말할 정도면 해보게. 하는 거야, 두잇!” 오가 노리오 사장이 결단을 내렸다.
그렇게 플레이스테이션은 시작됐다. 닌텐도 배신의 충격은 그로부터 2년 후 세상을 놀라게 하는 혁신적인 3D그래픽의 플레이스테이션(PS:Play Station)이란 결실로 나타난다.
■ 놀이를 위한 컴퓨터는 플레이스테이션
과장의 이름은 구타라기 겐. 후일 ‘플레이스테이션의 아버지’로 통하게 된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화의 왕국이자 게임의 왕국인 일본에서 2D그래픽이 게임왕국을 주름잡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80년대를 관류하며 청소년을 열광케 한 것은 동키콩,팩맨, 갤럭시안,제비우스,마리오브라더스 등이 실린 아케이드게임과 롬팩 방식의 패미컴이었다. 게임업체들은 2D만으로도 청소년들을 게임왕국에 잡아둘 수 있다는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구타라기의 뇌리에는 2D보다 훨씬 멋진 그 어떤 것이 자리잡고 있었다 .84년 소니 아쓰기 공장에서 본 간단한 조작만으로도 얼굴모양을 바꿀 수 있는 컴퓨터그래픽시스템이 여전히 남아 있었고 이는 PS라는 거대 프로젝트의 실마리가 된다.
89년 가을. 구타라기는 세차례나 게임기 관련 아이디어와 전략보고서를 올린다.
그는 “우리는 플레이스테이션(PS)을 개발 중”이라고 밝히고 이어 “플레이스테이션은 미래의 주요 디지털제품으로 한걸음 더 나아가 가정의 컴퓨터로 자리잡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구타라기는 후일 “일을 위한 컴퓨터가 워크스테이션(Work-Station)이라 한다면 놀이를 위한 컴퓨터는 플레이스테이션(Play-Station) 이다. 그러나 당시 소니사람들은 아무도 그개념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개발자들을 경악시킨 대작
93년 10월27일. 소니와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는 다음달 16일 있을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기술(SCEI: Sony Computer Entertainment Incorporated) 공동설립을 발표한다. 바로 그 다음날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을 위한 시연을 개최한다.
시연될 칩의 그래픽 프로토타입으로 구축된 시스템은 티라노사우루스 공룡이 포효하는 3D컴퓨터그래픽이었다. 손에 땀을 쥐게하는 생생한 장면이었다.
발표장을 메운 엔지니어들 앞에서 6대의 PS기기 스위치가 켜졌다. 콘트롤러로 조종되는 3D그래픽 공룡 티라노사우루스는 마치 살아있는 듯 포효하며 관객들을 압도했다. 마침내 시연이 끝났다. 관중들이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진짜 움직이는 것을 보여주었는데도 왜 반응이 없는 거야?” 구타라기가 말했다.
사실 그들은 이 생생한 광경에 놀라 발걸음을 뗄 수 없을 정도였던 것이다. 그들은 초 고가 실리콘그래픽스 이래 그런 인상적인 그래픽을 구경한 적이 없었다.
그런 것은 비행 시뮬레이션용 초고가 그래픽에서나 찾아 볼 수 있었다. 수만달러의 비용을 들어 그런 것을 게임에 적용하려는 업체는 없었다.
엔지니어 출신인 구타라기가 10년 전 본 그래픽시스템G를 기반으로 만든 야심작의 성공을 예고하는 순간이었다.
■플레이스테이션(PS)-기적의 게임 비즈니스
플레이스테이션의 시판일은 1994년 12월 3일 토요일이었다.
오전 10시. 이미 방송된 티저광고 CM송이기도 했던 ‘1,2’3!‘의 노래에 맞춰 일본 전국에서 일제히 제품이 팔리기 시작했다.대당 399달러. 출시 당일 예정된 초도물량의 3분의 1인 10만대가 모두 팔려나갔고 6개월 만에 100만대가 나갔다. 이어 2002년까지 1억200만대가 팔린 사상 유례없는 베스트셀러 게임기가 됐다.
92~94년 적자에 빠져있던 소니를 불황에서 건져내는 효자품목이 탄생하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그리고 닌텐도, MS 등이 다시금 그들의 비즈니스를 되돌아 보고 혁신적 제품 개발의지를 자극하면서 전세계 게임산업을 더욱 풍요롭게 만든 분수령이 된 날이기도 했다.
“두 잇!”하고 고함치듯 명령했던 오가노리오 사장의 한마디는 연간 7천억엔의 거대 게임기사업을 가져다 주며 불황의 소니를 건져낸다. 그리고 이 흐름은 이후 등장한 디지털키드 이데이 노부유키 회장의 디지털소니 시대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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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가을, 하워드 스트링어 소니회장은 부진한 소니를 살리기 위해 ‘디지털’에 기대는 새로운 서비스 계획을 밝혔다. 그가 밝힌 SOS(Sony Online Service)의 청사진은 TV와 플레이스테이션 등 하드웨어에서 애플의 아이튠스같은 온라인서비스를 실시하겠다는 것.
이제 전세계는 구타라기 겐이 최근 미국에서 새로 시작했다는 사업의 향방과 함께 그가 토대를 쌓은 디지털정신이 소니를 어떻게 풍요롭게 만들지를 지켜 볼 차례가 된 것 같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