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빡이 학습기 열풍에 중견기업 '속앓이'

일반입력 :2009/11/27 09:36

류준영 기자

‘46살 늦은 나이에 희망 생겨’

신문의 광고문구와 사연은 말 그대로 구구절절 했다. 하지만 몇 차례 명퇴 위기를 버티고, 영어 때문에 늘 스트레스 받던 직장인 유씨에겐 한가닥 실낱같은 희망의 제품처럼 여겨졌다.

그의 눈에 우연히 띈 신문광고, ‘왕초보도 10분에 200 단어를 외울 수 있다’는 광고 헤드카피에 혹한다.

바로 아래 ‘하루 30분 투자로 외국명문대가 보인다’는 포장된 문구에 유씨의 눈은 더욱 더 휘둥그래졌다.

“정말일까?”란 궁금증과 함께 ‘깜빡이 영어’ 학습기에 관심이 일순간 쏠린다.

깜빡이 어학학습기란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 단어를 디스플레이에 반복적으로 나타나게 함으로써 단어를 쉽게 암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휴대용 모바일 기기다.

큰 기술력 없이 적은 비용만으로도 제작 가능한 깜빡이 어학학습기가 근래 중소 규모의 제조사들 사이에서 새로운 황금어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이 시장에 뛰어들어 인터넷 오픈마켓에서 가장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제품인 ‘하프스터디 터치(DOTE-100)’는 2개월간 TV홈쇼핑을 통해 무려 11억원이란 매출기록을 달성했다.

아울러 올해 5~6개 신생 업체가 이 시장에 본격 가세했으며, 전체 시장의 규모도 2~3배 정도 확대됐다.

인터넷 오픈마켓 11번가 가전 제품 담당 최중권 매니저는 “깜빡이 학습기는 올해 3월부터 본격 판매가 시작돼 매달 40% 이상의 매출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다”라며 “특히 학생들이 시험과 방학을 앞둔 6월엔 최고 매출액을 기록했으며, 겨울방학에 접어들면서 최근 이 시장 경쟁도 이전보다 더욱 치열해지는 양상”이라고 설명했다.

또 “단어암기학습 효과에 대한 의문이 아직 있긴 하나 가격대가 좀더 낮게 책정되면서 최근엔 학생들뿐만 아니라 직장인들도 많이 찾고 있다”고 덧붙였다.

G마켓이 제공한 디지털어학기 판매추이 자료에 따르면 올해 2월부터 5월까지 두 자릿수의 꾸준한 판매증가세를 보이다 학생들의 방학기간인 7월엔 128%의 판매건수로 가장 큰 증가세를 보였다. 이후 8월엔 17% 증가세로 돌아서며 약세를 지속, 지난달에 -27%대로 떨어졌다. 하지만 이도 겨울방학기간에 접어들면서 다시 오름세로 돌아서고 있다.

이렇다 보니 수익성 면에서 눈 여겨 볼만한 이 시장을 두고 중견기업들의 속앓이가 심하다.

본격적으로 뛰어들자니 지금까지의 제품 콘셉트와 기술적 격차가 워낙 커 브랜드 정체성에 금이 갈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넋 놓고 앉아 있자니 눈 앞에 돈이 아른거린다.

코원(대표 박남규)은 “올해 초 제품 개발을 고려해 본 적은 있으나 지금까지 개발됐던 제품들과는 기술적 갭(차이)가 큰 제품”이라며 “단순 기능보단 기술력이 집약된 멀티미디어 제품이 코원 팬들에게 어필할 수 다고 판단, 깜빡이 어학 학습기 생산 계획은 아직 없다”고 말했다.

아이리버(대표 김군호)는 “깜빡이 어학 학습기를 따로 제작할 계획은 없으나 추후에 나올 전자사전이나 PMP 등 모바일 단말기에 깜빡이 어학 학습 기능을 추가할 계획은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이런 경쟁사들과 정반대로 이노디자인(대표 김영세)은 내달 디자인력을 갖춘 ‘워드홀릭’이란 신개념 어학학습기를 필두로 이 시장에 본격 참여키로 했다.

김영세 대표는 “알록달록한 MP3 디자인에 영어, 중국어 등 총 4개 언어를 학습할 수 있도록 해 소비자들에게 접근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차별화된 솔루션으로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에도 서서히 불이 붙고 있다.

교육콘텐츠 개발 전문회사 유이비씨(대표 이후락)가 출시한 '워킹메모리(WM)'는 음절 단위 표시기능이 탑재됐다. 영어단어가 음절단위로 나뉘어 표기돼 사용자가 스펠링 이미지를 보면서 원어민 발음을 청취할 수 있도록 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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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관계자는 ‘WM은 '속성영상기억법’을 적용해 스펠링과 뜻을 한 화면에 표기하지 않고 스펠링과 뜻을 연달아 다른 화면에 표기한다”라며 “뇌가 먼저 스펠링으로 뜻을 유추하고자 노력하게 한 후 다음 화면에서 뜻을 확인하게 만들어 마치 사진을 찍듯 뇌에 단어 의미를 새길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또다른 회사인 위버스마인드는 영어단어를 '그림'으로 암기할 수 있는 휴대용 어학학습기 '워드스케치'를 선보였다.

이 제품은 음성 또는 텍스트를 반복 노출에 의존한 학습기를 넘어서 단어의 뜻을 묘사한 그림으로 암기하도록 만든 어학 학습기. 위버스마인드 정성은 대표는 “텍스트와 이미지, 음성의 유기적인 결합을 통해 암기력을 높일 수 있는 3세대 어학 학습기라고 말했다.